유가족과의 갈등·독립기구 전환 추진에 지연…내년 하반기 이후로 밀릴 듯
경찰, 조사 늦어지자 압수수색 등 수사 속도…블랙박스·엔진 분석 결과 확보
경찰, 조사 늦어지자 압수수색 등 수사 속도…블랙박스·엔진 분석 결과 확보
[※ 편집자 주 = 무안국제공항에서 발생한 '12·29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가 오는 29일로 1년을 맞습니다. 온 사회를 뒤흔든 충격은 시간이 흐르며 점차 옅어졌지만, 유가족의 슬픔과 의문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입니다. 정부는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항철위)를 중심으로 사고 원인 규명에 나섰고, 경찰 수사와 국회의 국정조사도 병행되고 있지만 최종 결론은 아직 나오지 않았습니다. 연합뉴스는 참사 1주기를 맞아 그간의 항공안전 제고 노력과 한계, 유가족의 아픔, 무안공항 폐쇄에 따른 지역사회의 어려움, 진상규명 현황과 과제 등을 4편의 기사로 점검합니다.]
(서울·광주=연합뉴스) 천정인 임성호 기자 = 12·29 무안국제공항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가 발생한 지 1년 가까이 지났지만 사고 원인을 밝히기 위한 당국의 조사는 여전히 갈 길이 멀다.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항철위)는 전체 조사 과정의 절반 정도 단계에 머물러 있고, 올해 내로 발표하려던 중간보고서는 유가족 반대에 더해 항철위 조직 개편 추진과 맞물려 공개 자체가 어려워진 상황이다. 항철위를 국토교통부 산하 조직에서 독립 조사기구로 분리하는 절차가 진행되면서 진상 규명 작업 마무리는 당초 계획보다 늦어질 공산이 크다.
지난 22일 제주항공 참사 1주기 합동분향소에서 헌화하는 유가족 |
(서울·광주=연합뉴스) 천정인 임성호 기자 = 12·29 무안국제공항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가 발생한 지 1년 가까이 지났지만 사고 원인을 밝히기 위한 당국의 조사는 여전히 갈 길이 멀다.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항철위)는 전체 조사 과정의 절반 정도 단계에 머물러 있고, 올해 내로 발표하려던 중간보고서는 유가족 반대에 더해 항철위 조직 개편 추진과 맞물려 공개 자체가 어려워진 상황이다. 항철위를 국토교통부 산하 조직에서 독립 조사기구로 분리하는 절차가 진행되면서 진상 규명 작업 마무리는 당초 계획보다 늦어질 공산이 크다.
항철위 조사와 별개로 사고의 법적 책임 소재를 가리기 위한 경찰 수사가 속도를 내고 있어 형사적 결론이 먼저 내려질 가능성도 있다.
◇ 조사 12단계 중 8단계서 막혀…"독립 이후에도 투명성 강화해야"
26일 항철위에 따르면 여객기 참사 원인을 조사 중인 항철위는 12단계로 나뉘는 항공사고 조사 가운데 6·7단계인 검사·분석·시험 및 사실조사 보고서 작성 단계를 6개월 넘게 진행하고 있다.
항공기 엔진은 제조사가 있는 프랑스 파리로 보내 정밀 분석을 마쳤고, 블랙박스에 기록이 남지 않은 사고 직전 4분 7초간의 상황도 관제 기록 등을 통해 재구성했다. 조류 충돌 경위와 무안공항의 콘크리트 소재 방위각 시설(로컬라이저) 둔덕이 사고에 미친 영향에 대해서도 연구용역을 마무리했다.
다만 항철위가 국토부 소속인 만큼 사고 직후부터 끊임없이 제기된 독립성·공정성 결여 지적과 이로 인한 유가족 및 관련 단체들의 비판이 심화하며 조사 결과 공표는 자꾸만 늦춰져 왔다.
사고 1주기 행사서 제주항공 진상 규명 촉구하는 유가족 |
특히 지난 7월 항철위가 '조종사가 심하게 손상된 오른쪽 엔진이 아닌 왼쪽 엔진을 껐다'는 초기 조사 내용을 유가족에게 공개한 것이 갈등에 불을 붙였다. 유가족은 항철위가 조종사에게 사고 책임을 전가하고 '콘크리트 둔덕'을 만든 국토부의 책임은 축소하려 한다며 거세게 반발했고, 항철위의 공정성 논란은 더욱 커졌다.
항철위는 이후 올해 말까지 조사 중간보고서를 공표하기로 하고 지난 4∼5일 중간 조사 결과를 발표하는 성격의 공청회 개최를 추진했으나 유가족의 강한 반대에 부닥쳐 잠정 연기했다. 조사 8단계에 해당하는 전문가 의견 청취 절차가 어려워지면서 조사 마무리 단계인 9단계(최종보고서 초안 작성)로는 나아가지 못하는 상황이다.
무너진 로컬라이저 |
항철위는 조류 충돌·운항·기체·공항 시설 등 크게 4개 분야에 대해 사실관계를 명확히 하면서도 유가족 등을 설득해 국민에게 결과를 공표해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됐다.
항공기가 어떻게 조류와 충돌했는지와 이후 엔진이 파손된 상황에서 조종사가 비상 절차를 수행한 상세한 과정과 랜딩기어(바퀴 등 이착륙 장치)가 내려오지 않은 경위 등이 아직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블랙박스인 비행기록장치(FDR)와 음성기록장치(CVR)가 기록되지 않은 시간의 운항 정보와 무안공항 둔덕이 피해 규모에 미친 영향, 충돌 직후 발생한 폭발과 화재의 영향 등을 공개하는 것도 과제로 남았다.
항철위는 항공분과위원회 심의를 거쳐 공청회를 다시 열어 발표를 재추진할 계획이었으나, 항철위 독립 논의가 최근 급물살을 타면서 관련 법률 개정안이 국회 통과를 앞두고 있어 향후 조사와 결과 발표 계획을 전면 재조정해야 하는 상황이다.
항철위를 국토부 조직에서 국무총리 소속 독립 조사기구로 전환하는 항공철도사고조사법 일부개정법률안은 지난 18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문턱을 넘어 조만간 본회의에서 처리될 전망이다.
로컬라이저 바라보는 유가족 |
항철위 독립에 따라 조사 지연은 불가피하게 됐다. 개정안은 법 시행(공포 후 1개월) 즉시 현 항철위 위원의 임기를 종료한다는 내용이 있어 새 항철위를 꾸리면서 기존 조사를 이관하는 절차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조사 기간은 항철위가 올해 초 예상한 '최대 1년에서 1년 반'보다 길어져 빨라야 내년 하반기 이후에 마무리될 것으로 전망된다.
항철위 관계자는 "인수인계를 준비하는 한편 국회 여객기 참사 국정조사 특위에서 조사 자료를 요청할 경우 제공 가능 여부를 검토하는 등 진실을 규명하기 위한 후속 절차가 차질 없이 이뤄지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항철위가 독립 이후에도 조사의 투명성을 강화해 유가족과 국민의 신뢰를 얻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광일 신라대 항공운항학과 교수는 "유가족 전담 연락관을 두고, 공개할 수 있는 자료의 범위와 공개 형식을 사전에 합의하는 한편 정비, 관제 등 분야별로 외부 전문가 검증을 거쳐야 한다"며 "조사보고서 발표로 끝나지 않고 권고가 실제로 이행되는지 공개 점검하는 프로세스가 쌓여야 결과에 대한 신뢰를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제언했다.
12·29 제주항공 여객기참사 유가족협의회 촛불문화제 |
◇ 속도 내는 경찰 수사…직·간접 책임자 44명 입건
항철위 조사 결과를 기다리던 경찰은 항철위 개편 추진으로 조사 지연이 불가피해지자 수사 결과를 내기 위한 수순에 돌입했다.
전남경찰청 제주항공 여객기 사고 수사본부는 지난 16일 서울 김포국제공항 인근과 세종시에 위치한 항철위 사무실에 수사관을 보내 압수수색 영장을 집행했다. 이번 압수수색에서는 항공기 블랙박스 분석 결과와 엔진 분해 조사 결과 등 사고 원인을 조사·분석한 자료를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고 원인에 따라 형사 책임 경중도 달라지는 만큼 항철위 조사 자료는 수사 결론에 도달하기 위한 필수 자료라는 게 경찰의 설명이다.
경찰은 그동안 항철위 측에 관련 자료를 제출해달라고 여러 차례 요청했으나 항철위는 '조사 공정성이 훼손될 수 있다'며 번번이 거절했다. 그 사이 유가족들은 경찰의 수사가 지지부진하다며 강하게 규탄하기도 했다.
경찰은 항철위 조직이 국무총리실로 이관되는 법안이 국회 통과를 앞두면서 더는 공식 조사 결과를 기다릴 수 없다고 판단하고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6일 이뤄진 전남경찰청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 압수수색 |
경찰은 지금까지 제주항공 참사와 관련해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로 국토부 공무원 등 44명을 입건한 상태다.
이 가운데 방위각 시설(로컬라이저 둔덕)과 관련해 건설 관련 업무를 맡았거나 운영·허가하는 데 관여한 공무원과 건설업체 관계자 28명이 처벌 대상에 올랐다. 2007년 무안공항이 개항할 당시와 2023년 활주로 보수 당시 공사와 허가 업무를 맡았던 실무·책임자들이다.
또 조류의 움직임이나 이동 경로 등을 충분히 관찰하거나 기장에게 알리지 않은 관제사들과 조류 충돌 예방 업무를 제대로 하지 않은 조류 퇴치 담당자들도 입건됐다.
유가족이 고소한 사고 당시 국토부 장관과 제주항공 대표, 한국공항공사 대표 등에 대해서도 형사 책임을 물을 수 있을지 검토 중이다.
경찰은 사고 초기 무안공항 등에 대한 압수수색을 비롯해 지금까지 모두 4차례 압수수색 영장을 집행했다. 사고 당일 폐쇄회로(CC)TV와 공사 관련 서류 등 압수물 3천84점을 확보하고 문서 보존 기간이 넘은 건설 공사 자료는 국가기록원을 통해 확보했다.
이를 토대로 참고인과 피의자 등 70여명을 상대로 107회 조사를 진행했다. 수사 기록만 1만5천여쪽 분량인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확보한 압수물 분석과 피의자·참고인 진술 등을 종합해 혐의가 인정되면 송치한다는 계획이다.
iny@yna.co.kr, s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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