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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도할 사람 모여!" 이 글에 난리났다…공원 뛰쳐나간 MZ, 무슨일

중앙일보 이아미.한찬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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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도할 사람 모여!" 이 글에 난리났다…공원 뛰쳐나간 MZ, 무슨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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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오후 7시 용산구 효창공원에서 '경찰과 도둑' 참가자들이 한 곳에 모여 게임 규칙 설명을 듣고 있다. 한찬우 기자

24일 오후 7시 용산구 효창공원에서 '경찰과 도둑' 참가자들이 한 곳에 모여 게임 규칙 설명을 듣고 있다. 한찬우 기자



" 경찰은 산타 모자, 도둑은 루돌프 머리띠입니다. 지금부터 20분 진행합니다. 자, 도둑들은 도망 시작! "

크리스마스이브인 지난 24일 오후 7시 서울 용산구 효창공원에 모인 20·30대들은 마치 초등학생인 된 양 술래잡기 놀이인 ‘경찰과 도둑(경도)’을 시작했다. 대학생·직장인 등 다양한 배경을 가진 이들은 서울, 인천, 경기도 용인 등 사는 곳도 제각각이었다. 가방과 외투 등 각자 짐을 함께 두고 공원 한가운데 모이니 65명이 북적였다. 이들은 온라인에서 모여 약속 시각과 장소를 정해 이날 처음 만난 사람들이었다.

24일 오후 7시 '경찰과 도둑' 참가자들이 지참해온 산타와 루돌프 소품. 한찬우 기자

24일 오후 7시 '경찰과 도둑' 참가자들이 지참해온 산타와 루돌프 소품. 한찬우 기자



이날은 크리스마스를 맞아 ‘루돌프를 잡아라!’라는 테마까지 더해 놀이하고 있었다. “경찰은 산타 모자를 쓰거나 플래시를 켜고 돌아다니면 됩니다. 도둑은 루돌프 머리띠 착용하세요.” ‘관리자’ 역할을 자처한 3명의 남녀는 규칙을 설명하고 준비운동을 시작했다. “하나 둘 셋 넷, 둘 둘 셋 넷.” 참가자들은 원 모양으로 빙 둘러서서 10분간 몸을 풀었다.

“제가 다 잡을게요.” 경찰 역할을 맡은 한 남성의 으름장에 도둑들은 벤치·정자·계단 등 공원 곳곳으로 흩어졌다. 한 판에 약 20분, 영하 1도 한겨울 날씨에도 참가자들은 가벼운 차림으로 놀이를 즐겼다.

24일 오후 7시 용산구 효창공원에서 참가자들은 산타와 루돌프 소품을 하고 '경찰과 도둑'을 즐기고 있다. 한찬우 기자

24일 오후 7시 용산구 효창공원에서 참가자들은 산타와 루돌프 소품을 하고 '경찰과 도둑'을 즐기고 있다. 한찬우 기자



참가자 구소윤(23)씨는 “두 달 전 서울로 이사와 시간을 보낼 친구가 없어 외로웠다”며 “비슷한 연령대의 50~60명과 건전하게 어울릴 수 있어 좋고 동심으로 돌아간 마음”이라고 말했다. 조윤수(31)씨는 “지난주부터 홍대·강서 등 경도 모임에 예약을 해놨는데, 인기가 너무 많아서 이제야 참여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2000년대 어린이들이 주로 했던 술래잡기 놀이인 경도가 젊은 성인들 사이에서 최근 새로운 방식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경도는 놀이터나 공원 등 넓은 공간에서 술래인 경찰이 달아나는 도둑을 잡는 놀이다. 어릴 적 경도를 해본 적이 있는 20·30대들이 다 큰 성인이 돼서도 추억의 놀이를 다시 하기 시작한 것이다.


24일 오후 7시 용산구 효창공원에 '경찰과 도둑' 참가자들이 놀이 시작을 위해 모였다. 한찬우 기자

24일 오후 7시 용산구 효창공원에 '경찰과 도둑' 참가자들이 놀이 시작을 위해 모였다. 한찬우 기자



참가자를 모으는 방식도 독특하다. 카카오톡·당근 등 소셜미디어를 통해 시간과 장소를 올린 후 지원자를 받는다. 이 때문에 전혀 모르는 사람들끼리 처음 만나 술래잡기 놀이를 한다. 동네 중고 거래 애플리케이션(앱)인 당근에서도 사람을 모으는 게시물이 여럿이다. 서울 관악구 보라매공원에서 열리는 ‘보라매 경도’ 모집 채팅방은 2000명이나 들어가 있을 정도로 인기다. 모집 게시물은 서울숲·뚝섬·여의도 등 서울 지역뿐 아니라 경기도 김포, 강원도 춘천 등 각지에서도 올라오고 있었다.

24일 오후 7시 용산구 효창공원 '경찰과 도둑' 참가자를 모집하는 중고 거래 앱(당근) 화면. 당근마켓 캡처

24일 오후 7시 용산구 효창공원 '경찰과 도둑' 참가자를 모집하는 중고 거래 앱(당근) 화면. 당근마켓 캡처



전문가들은 ‘경도’가 온라인에서 다시 유행하는 것은 청년 세대가 유연하고 일시적인 사회적 관계를 선호하게 됐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최항섭 국민대 사회학과 교수는 “요즘 청년은 ‘유목민’과 같은 느슨한 관계를 맺고, 특정 순간의 감정적 공유와 융합을 중시한다”며 “최근의 ‘경도 모임’은 그동안 약화된 타인에 대한 신뢰를 다시 형성하는 계기를 제공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명예교수는 “청년 세대는 주로 옅은 유형의 관계를 형성하지만, 사회적 관계에 대한 갈증도 많다”며 “온라인을 통해 새로운 형태의 사회적 관계를 형성하는 모습”이라고 말했다.

한찬우·이아미 기자 han.chanw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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