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로 건너뛰기
검색
중앙일보 언론사 이미지

첫달 180만원 더 주고 정년 보장…이곳 청년들 버스 운전대 잡은 이유

중앙일보 신진호
원문보기

첫달 180만원 더 주고 정년 보장…이곳 청년들 버스 운전대 잡은 이유

서울맑음 / -3.9 °
충남 천안의 시내버스 회사인 삼안여객에서 ‘123번 버스’를 운전하는 이정호(29)씨는 새내기 운전기사다. 입사 뒤 한 달간 실무교육을 받고 처음 시내버스를 배차를 받은 게 8월 중순쯤이니 이제 갓 넉 달이 넘었다. 대학 졸업 후 영상 분야에서 일하다 지난 5월 우연히 ‘청년 버스 운전자 양성 프로그램’ 모집 공고를 보고 시내버스 운전기사에 도전했다. 평소 자동차와 운전에 관심이 많던 이씨는 시내버스와의 만남을 ‘운명’이라고 했다.

충남 천안청년센터에서 버스운전자 양성교육 사업에 참여한 20~30대 청년들이 버스 운전기사가 갖춰야 할 인성을 교육받고 있다. [사진 천안시]

충남 천안청년센터에서 버스운전자 양성교육 사업에 참여한 20~30대 청년들이 버스 운전기사가 갖춰야 할 인성을 교육받고 있다. [사진 천안시]


이정호씨처럼 올해 천안지역 시내버스 회사에 운전기사로 취업한 20~30대 청년은 12명이다. 지난해 8명보다 50%나 늘어났다. 화물차와 트레일러 등 대형차를 몰다가 경력직으로 시내버스 회사에 입사한 경우도 있지만 20~30대 청년들은 모두 난생처음 버스운전에 도전했다. 1종 보통면허를 소지하고 있던 이씨는 천안시의 지원을 받아 1종 대형면허를 취득했다.



천안 거주 미취업 청년 대상 교육·지원



천안시가 20~30대의 안정적인 취업을 지원하기 위해 도입한 ‘청년 버스 운전자 양성 프로그램’이 청년층에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천안시는 지난해 청년에게는 안정적인 일자리 지원, 운수업계에는 전문 인력 공급이라는 두 가지 현안을 해결하기 위해 사업을 시작했다. 사업 첫해인 지난해 8명이 취업에 성공(현재 6명 재직)한 데 이어 올해는 12명이 ‘시내버스 운전기사’라는 새 직업을 얻었다. 모두 정년이 보장되는 정규직이다. 천안시는 내년에 사업 규모를 20명까지 늘릴 계획이다. 천안에서 버스운전을 원하는 청년과 시내버스 회사를 직접 연결해주는 기관은 청년센터가 유일하다.

사업은 천안시의 위탁을 받아 천안청년센터 이음(천안청년센터)이 운영한다. 상반기와 하반기 공고를 통해 시내버스 운전기사에 도전할 청년을 모집한다. 대상은 천안에 주소를 두고 있는 미취업 청년(천안시 조례 기준 18~39세)으로 1종 대형면허 소지자나 1종 보통면허 소지자에 한해 지원할 수 있다. 1종 대형면허가 없으면 청년센터 지원을 받아 대형면허 취득도 가능하다.

충남 천안청년센터에서 버스운전자 양성교육 사업에 참여한 20~30대 청년들이 시내버스 운전을 위한 현장 실무교육을 받고 있다. [사진 이정호씨]

충남 천안청년센터에서 버스운전자 양성교육 사업에 참여한 20~30대 청년들이 시내버스 운전을 위한 현장 실무교육을 받고 있다. [사진 이정호씨]


모집공고에 지원했더라도 모두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건 아니다. 시내버스 회사가 진행하는 사전 면접에 합격해야 청년센터가 운영하는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다.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청년들은 버스운전에 필요한 신규 채용자 교육, 인성 교육(청년센터), 실무교육(시내버스회사) 등을 거친 뒤 시내버스 운전 자격을 취득하게 된다. 지난해는 10명이 지원해 9명이 교육과정을 이수했다. 지난해 천안청년센터 교육을 통해 시내버스 회사에 취업한 청년 가운데 가장 막내는 24세였다. 시내버스 회사들도 사업을 크게 반기고 있다. 청년센터가 회사 대신 예비운전자들을 교육해 비용과 시간을 줄일 수 있고 ‘조기 이탈’에 대한 걱정도 덜 수 있기 때문이다.




시내버스 회사 "교육 시간·비용 줄일 수 있어"



천안청년센터 안서이음 최성찬 팀장은 “취업한 청년들의 만족도가 높아 내년에는 사업 규모를 확대할 예정”이라며 “각 버스회사와 협조해 인원을 더 늘리는 방안도 협의 중”이라고 말했다.

시내버스 회사에 입사한 새내기 운전기사들은 선배가 운전하는 버스에 올라 노선을 익히고 운전 노하우를 전수한다. 교육을 마치면 가장 먼저 마을버스(승합차)를 배차받는다. 이후 경력이 쌓이면서 소형버스, 중형버스, 대형버스로 옮겨간다. 버스 규모가 커지면 그만큼 급여도 올라간다. 보통 마을버스 3~4개월, 소형버스 7~8개월을 거치면 중형버스를 운전할 수 있다. 직산역(지하철 1호선)에서 마을을 오가는 마을버스를 운전하는 이정호씨는 내년 1월쯤 소형버스를 운전할 예정이다.


천안 삼안여객에서 123번 시내버스를 운전하고 있는 이정호씨의 실무교육 당시 모습. [사진 이정호씨]

천안 삼안여객에서 123번 시내버스를 운전하고 있는 이정호씨의 실무교육 당시 모습. [사진 이정호씨]


이정호씨는 “처음에는 운전이 낯설고 긴장한 탓에 정류장을 몇 미터 지나치는 실수가 있었지만, 오히려 승객들이 ‘괜찮다’며 격려해줘 무사히 넘기기도 했다”며 “승객들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받을 때마다 직업에 대한 자부심을 갖게 된다”고 말했다.



충남도, 첫 달 생계비 지원…사업규모 확대



충남도도 청년 버스 운전자 양성프로그램을 지원하고 나섰다. 시내버스 회사에 취업한 청년들이 첫 달 급여를 받을 때까지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판단, 1인당 180만원을 지원한다. 교통비와 밥값 등 기본적인 생활에 필요한 생계비 명목이다. 천안청년센터는 충남도는 물론 정부 차원의 지원이 늘어나면 버스 운전을 희망하는 청년들의 참여가 확대할 것으로 전망했다.


천안시 관계자는 “버스 운전분야에 청년들이 쉽게 진입할 수 있도록 체계적인 지원대책을 마련할 방침”이라며 “앞으로도 청년 친화적인 일자리를 계속 만들어 젊은 층이 천안에 머물고 성장하는 환경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천안=신진호 기자 shin.jinho@joongang.co.kr

중앙일보 / '페이스북' 친구추가

넌 뉴스를 찾아봐? 난 뉴스가 찾아와!

ⓒ중앙일보(https://www.joongang.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