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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하교 45분간 차 못 들어옵니다”… 런던 ‘스쿨존 차량 금지’ 실험

동아일보 런던=오승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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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하교 45분간 차 못 들어옵니다”… 런던 ‘스쿨존 차량 금지’ 실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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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명을 살리는 로드 히어로] 동아일보-채널A 2025 교통안전 캠페인

〈20·끝〉 스쿨존 차량 막는 영국

진입 원천 차단해 ‘보행자 천국’으로… 속도 제한 넘어 보행자 중심 재구성

식별 카메라로 장애인 차량 등은 허용… 런던 전역 수백 곳으로 확산
타일러 린턴 해크니구 교통국장이 차량 통행 제한 표지판을 가리키고 있다. 런던=오승준 기자 ohmygod@donga.com

타일러 린턴 해크니구 교통국장이 차량 통행 제한 표지판을 가리키고 있다. 런던=오승준 기자 ohmygod@donga.com


“지금부터 45분간 이 도로에 차량 진입은 불가능합니다.”

5일 오전(현지 시간) 영국 런던 해크니구 게이허스트 커뮤니티 초등학교 앞. 타일러 린턴 해크니구 교통국장이 학교 정문 앞 도로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가 가리킨 표지판에는 ‘보행자와 자전거만 출입 가능’이라는 문구와 함께, 평일 등교 시간(오전 8시 30분∼9시 15분)과 하교 시간(오후 3시 15분∼4시)을 명시하고 있었다. 린턴 국장은 “여긴 보행자와 자전거가 우선이고, 차는 손님(guest)이다”라고 말했다.

● 등하교 시간에는 차량 출입 통제

5일 오전(현지 시간) 영국 런던 해크니구 게이허스트 커뮤니티 초등학교 앞 도로가 등교하는 학생들로 붐빈다. 이 도로는 평일 등하교 시간에 차량을 전면 차단하는 ‘스쿨 스트리트’ 프로그램이 적용된다. 런던=오승준 기자 ohmygod@donga.com

5일 오전(현지 시간) 영국 런던 해크니구 게이허스트 커뮤니티 초등학교 앞 도로가 등교하는 학생들로 붐빈다. 이 도로는 평일 등하교 시간에 차량을 전면 차단하는 ‘스쿨 스트리트’ 프로그램이 적용된다. 런던=오승준 기자 ohmygod@donga.com


이곳은 런던 해크니구가 2020년부터 시작한 ‘스쿨 스트리트(School Streets)’ 프로그램이 적용되는 현장이다. 등하교 시간대에 한해서 학교 앞 도로에 차량 진입 자체를 제한하는 정책으로, 해크니구의 경우 스쿨 스트리트는 오전과 오후 각각 45분씩 적용된다.

오전 8시 30분이 되자 아이를 등교시키는 학부모들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약 30분간 수백 명의 학생과 학부모가 거리를 지나갔지만, 승용차는 단 한 대도 보이지 않았다. 학교 앞 도로를 향해 오던 차량 서너 대는 표지판을 지나기 전 정차한 뒤, 아이만 내려주고 곧바로 차를 돌렸다.

해당 프로그램 도입 후 학교 주변의 혼잡과 소음, 보행자와 차량 간 갈등이 크게 줄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린턴 국장은 “과거에는 학교 근처에서 차량이 인도를 침범하거나 무리하게 추월하는 일이 많이 발생했다”며 “차량 진입이 원천적으로 금지되기 때문에 지금은 그런 위험한 순간 자체가 사라졌다”고 말했다.

해크니구는 런던에서 스쿨 스트리트를 가장 먼저 도입한 자치구다. 해크니구는 2016년 이 프로그램을 처음 도입한 후, 관내 8개 학교에서만 시범 운영했다. 현재는 관내 초등학교의 80% 이상으로 확대됐다. 현재 중고교 3곳도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스쿨 스트리트 프로그램이 본격적으로 확산된 것은 2020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유행이 계기가 됐다. 팬데믹 당시 대중교통 기피로 인해 자가용 이용률이 크게 높아져, 학교 인근 혼잡도가 높아졌기 때문이다. 린턴 국장은 “아이들이 뛰어다니는 학교 인근에 차량이 더 늘어나면 위험할 수밖에 없다”며 “높아진 자가용 이용률이 등하교 안전에 영향을 주지 못하도록 하는 게 목적이었다”고 말했다.

이후 ‘해크니구 모델’은 런던 전역으로 확산됐다. 현재 런던 시내 수백 곳의 학교 앞 도로가 이 같은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해크니 사례는 런던시 차원의 정책 홍보 과정에서도 대표적 모델로 활용됐다.

● 카메라 통해 장애인 차량 등은 허용

정책의 실효성을 떠받치는 핵심 장치는 자동차량번호판식별(ANPR) 카메라다. 소방차와 구급차 등 긴급차량과 장애인용 차량 등은 예외적으로 통행을 허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접이식 차단봉이나 펜스 등은 긴급차량이나 장애인 이동까지 막는 한계가 있지만, ANPR은 예외 차량을 선별적으로 허용할 수 있다.


카메라는 주로 이동식으로 운영된다. 구에서 설치한 ANPR 카메라 수가 프로그램을 운영 중인 학교 수보다 적기 때문이다. 린턴 국장은 “사람들이 카메라가 ‘어디에나 있고, 동시에 어디에도 없는 것처럼’ 느끼게 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영국의 보험사 ‘처칠 모터 인슈런스’에 따르면 2022년 스쿨 스트리트 위반으로 적발된 건수는 총 39만8745건으로 집계됐다. 캠던구 등 6개 구에서는 각각 3만 건 이상이 적발됐지만, 같은 기간 해크니구는 5818건에 불과했다. 이는 초기에 정책을 도입한 만큼 주민들의 인식이 높아졌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위반 시 부과되는 과태료는 130파운드(약 26만 원)지만, 조기 납부 시 절반인 65파운드(약 13만 원)로 줄어든다.

● ‘규제’를 넘어 ‘공감’으로

초기에는 반대도 많았다. 인근 주민 카일 스완 씨는 “처음에 스쿨 스트리트가 적용된다고 했을 때에는 배달을 못 받거나 방문객이 불편을 겪을 수 있다는 걱정이 많았다”며 “이웃 중 일부는 등하교 시간에는 차량을 이용하지 못해 집에 갇히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많았다”고 말했다.


해크니구는 주민 설득에 오랜 공을 들였다. 실제로 학교와 교통안전 교육 등을 지속하며 학교와 신뢰를 쌓은 점이 큰 도움이 됐다. 올해 해크니구에서 진행한 주민 설문조사에서 스쿨 스트리트에 대한 찬성 비율은 60∼80% 수준으로 나타났다. 린턴 국장은 “스쿨 스트리트는 차량 전면 차단이 아닌 일시적 진입 제한이라는 점을 반복적으로 설득했다”며 “학교와 쌓은 신뢰를 바탕으로 학부모 등 지역 공동체와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우리나라에서도 어린이 교통사고를 줄이겠다는 취지로 1995년 어린이보호구역(스쿨존) 제도가 도입된 바 있다. 전국 모든 학교 앞에서는 차량의 최대 속도를 시속 30km 이내로 제한하고 있다. 다만 아직까지 제한속도·단속 중심에 머물러 있을 뿐 등하교 시간대 도로를 보행자 중심으로 재편하는 조치는 시도되지 않았다.

해크니구는 스쿨 스트리트에 대해 차량 제한 등 규제 위주의 정책으로 봐서는 안 된다고 조언한다. 차량 제한 같은 강력한 조치와 함께 자전거 교육, 보행 안전 교육, 이동 방식 전환을 돕는 ‘소프트한 정책’이 함께 가야 한다는 뜻이다. 린턴 국장은 “제한만 하면 누구든 반발할 수밖에 없다”며 “사람들이 왜 바꿔야 하는지 이해하고, 실제로 바꿀 수 있도록 도와야 정책이 지속된다”고 강조했다.

“운전자 실수가 사망으로 이어지지 않게”… 런던 ‘비전 제로’ 정책

시속 32㎞ 제한 넓히고 도로 폭은 좁혀
보행 사고 63% 줄이고도 차량 흐름 안정


영국 런던의 교통정책 ‘비전 제로(Vision Zero)’는 교통사고를 개인의 실수나 일탈로 보지 않는다. 사고는 언제든 발생할 수 있다는 전제 아래 사람이 실수를 하더라도 사망이나 중상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도시 구조와 교통 시스템을 바꾸는 것이 정책의 핵심이다.

런던교통청(TfL)은 2018년 비전 제로를 교통 정책으로 공식 채택했다. 목표는 교통사고 사망자와 중상자를 0명에 가깝게 줄이는 것이다. 이를 위해 단순한 단속 강화보다는 사고 발생 가능성과 충격의 치명도를 구조적으로 낮추는 데 집중하고 있다.

이 중 핵심 전략은 ‘속도 저감’이다. 런던은 주거지역과 보행 활동이 많은 구역을 중심으로 제한속도를 20마일(약 32km)로 낮췄다. TfL에 따르면 차량 속도가 시속 20마일일 경우, 시속 30마일(약 48km)로 충돌했을 때에 비해 보행자 사망률이 약 5분의 1 수준으로 낮아진다.

단순히 표지판 숫자만 바꾼 것이 아니다. 차로 폭을 좁히고, 코너의 회전 반경을 줄이며, 교차로 재설계를 병행해 운전자가 물리적으로 속도를 줄일 수밖에 없는 환경을 조성했다. 도로의 역할을 차량 통행을 위한 공간에서 보행자·자전거·대중교통이 공존하는 ‘공공 시설’로 재정의한 것이다.

실제로 런던에서 제한속도 20마일을 적용한 도로를 분석한 결과, 전체 교통사고는 도입 전보다 25% 감소했다. 사망·중상 사고 역시 25% 줄어드는 성과를 거뒀다. 특히 보행자와 자전거 이용자 관련 사고는 36% 감소했으며, 보행자 사고만 떼어 놓고 보면 감소 폭이 무려 63%에 달했다.

속도를 낮췄지만 도로 혼잡도에는 큰 차이가 없었다. 평균 주행 속도는 소폭 느려졌지만 통행 시간이나 차량 흐름에는 유의미한 악영향이 없었다. TfL 관계자는 “오히려 급가속·급정거가 줄어들며 차량 흐름이 더 안정됐다는 평가도 나온다”고 밝혔다.

현재 런던 도로의 절반 이상은 시속 20마일 제한속도를 적용받고 있다. TfL이 직접 관리하는 주요 도로 가운데에서도 264km 이상 구간이 이미 시속 20마일로 운영되고 있다. 자치구가 관리하는 도로에서도 속도 제한이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시속 20마일 제한 적용 비율은 2023년 53.2%에서 지난해 58.9%, 올해 60.9% 등으로 꾸준히 증가했으며 현재 런던 33개 자치구 중 21곳에서 시속 20마일 제한을 채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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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오승준 기자 ohmygo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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