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로 건너뛰기
검색
한국일보 언론사 이미지

종로구 '100년 중학교'도 폐교 위기… 교육청 지원은 '0곳'

한국일보
원문보기

종로구 '100년 중학교'도 폐교 위기… 교육청 지원은 '0곳'

서울맑음 / -3.9 °
학급·교원 축소로 학생 이탈 가속화
'서울형 작은학교' 지원 대상서 탈락
학생 우선 배정·공학 전환도 미봉책
특성화 지원·범정부 정책 기획 필요


25일 서울 종로구 계동 중앙중·고등학교 정문 앞으로 주민들이 지나가고 있다. 이재명 기자

25일 서울 종로구 계동 중앙중·고등학교 정문 앞으로 주민들이 지나가고 있다. 이재명 기자


"몇 년 전만 해도 '설마 폐교까지 되겠어?' 했는데 이제는 아닙니다. 학급 수가 감소하면 기본적인 교육 인프라를 유지할 수 없기 때문에 학생과 학부모가 입학을 꺼리게 돼요. 학교 운영이 불가능해지는 건 순식간이죠."

서울 종로구에서 15년간 살면서 아이 셋을 각각 제동초·중앙중·대신고에 보낸 학부모 이여원(중앙중 학교운영위원장)씨는 학교를 살리기 위해 수년간 학교 홍보활동까지 했지만, 이젠 지쳤다고 토로했다. 해마다 학교 규모가 쪼그드는데도 아무런 정책적 지원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출생률 감소로 서울에서도 폐교하는 학교가 나오고 있지만, 종로구는 대단지 아파트 같은 신규 주택 공급이 부족하고 도심 공동화 현상이 가속화하고 있어 문제가 심각하다. 올해 종로구 학령 인구는 1만5,898명으로 25개 자치구 가운데 중구(1만609명)에 이어 두 번째로 적다. 특히 중학교는 비교적 특성화가 용이하고 명문이 많은 고등학교와 달리, 학생을 끌어들일 요인이 부족해 더 큰 위기를 겪고 있다.

종로구 소재 중학교와 학생, 학부모들이 학교 붕괴 위기를 절감한 건 이달 초 서울시중부교육지원청이 관내 9개 중학교 중 4개 학교에 각각 1개 학급을 감축하겠다고 통보하면서다. 25일 서울시교육청과 종로구청에 따르면 내년부터 배화여중(개교 1898년)과 덕성여중(1920년)은 2학년에서, 서울사대부여중(1946년)과 중앙중(1908년)은 1학년에서 학급이 각각 1개씩 줄어든다. 배화여중과 덕성여중은 올해에 이어 2년 연속 감축이다.

대부분 역사가 100년을 넘긴 유서 깊은 학교들이라 파장이 크다. 교장들은 "도심지 백년 학교를 폐교 수순으로 몰아가는 조치"라며 강력히 반발했다.

'학년당 4개 학급' 마지노선도 붕괴


올해 위기감이 특별히 고조된 건, 교육당국이 정상적인 교사 수를 유지하기 위한 최소 조건으로 설정한 '학년당 4개 학급'을 처음으로 충족하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덕성여중과 중앙중은 감축안이 현실화하면 당장 내년부터 1, 2학년 학급 수가 4개 미만으로 내려간다.


학급 수 축소 예정인 종로구 중학교의 전체 학급 수. 그래픽=박종범 기자

학급 수 축소 예정인 종로구 중학교의 전체 학급 수. 그래픽=박종범 기자


학년당 3개 학급, 학급당 학생 수 18명 이하이면 교원 축소 우선 검토 대상이 된다. 예산과 행정을 효율화하기 위해서다. 교사가 줄어들면 교사 한 명이 여러 과목을 가르쳐야 한다. 이유선 덕성여중 교장은 "다른 교사가 부전공으로 가르칠 수 있는 사회·도덕 과목의 교사는 학교를 떠나야 한다"며 "교사당 업무가 크게 늘고 전문성도 저하되는 등 교육 환경이 불안정해지기 때문에 진학하려는 학생이 갈수록 감소하는 악순환에 접어들 것"이라고 우려했다.

서울시교육청은 학령인구 감소 대책으로 '서울형 작은학교' 사업을 시행 중이다. 240명 이하 초등학교, 300명 이하 중학교에 3년간 운영비, 교사 우선 배치, 컨설팅 등을 지원한다. 최근 사업을 신청한 50여 개 학교 중 17개교가 지원 대상으로 선정됐다. 하지만 종로구 소재 중학교는 단 한 곳도 포함되지 않았다. 교동초, 효제초 등 종로구의 초등학교가 선정돼, 자치구별 균형 차원에서 중학교는 밀린 것으로 알려졌다.

"폐교 위기 막자" 중학교 지원제 도입 검토



25일 서울 종로구 송현동 덕성여자중학교 정문 앞으로 '러닝족'이 달려가고 있다. 이재명 기자

25일 서울 종로구 송현동 덕성여자중학교 정문 앞으로 '러닝족'이 달려가고 있다. 이재명 기자


학교와 학부모는 학급 감축 중단과 근본 대책 마련을 요구하고 있다. 관내 다른 학교보다 학생을 우선 배정받거나, 서대문구와 마포구 등 인접한 다른 자치구에서 진학 희망자를 모집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다만 특혜로 비칠 소지가 있어 심도 있는 논의가 필요하다. 최용석 중앙중 교장은 "이관 배정으로 몇 년간 버틸 수는 있겠지만, 비슷한 처지의 주변 학교들과 학생을 뺏고 뺏기는 제 살 깎아먹기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여중은 남녀공학 전환도 거론되지만 사립 재단의 경우 쉽지 않은 결정이다.


서울시교육청은 2020년 추진했다가 무산된 '중학교 학교지원제' 도입을 검토 중이다. 서울의 경우 중학교 입학은 1996년 이후 초등학교처럼 학생 거주지 근거리 배정 원칙을 유지하고 있는데, 앞으로는 같은 학교군 내에서 원하는 중학교를 선택해 지원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내년 연구용역을 통해 2027년 재설계 방안을 도출하고 2029년 신입생부터 적용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양정호 성균관대 교육학과 교수는 "근본적으로 거점국립대 10개를 키워 지역소멸을 막는 정책처럼 도심 초중고를 살려야 도시도 살 수 있다"며 "교육과 함께 도시 정책도 장기적으로 동반 수립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공동화된 학군의 경우 멀리서도 올 수 있는 특성화 프로그램이 마련돼야 하지만, 현재 교육청들은 유권자가 많은 지역에만 관심이 있기 때문에 새로운 시도를 지원할 중앙 정부의 정책이 필요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재명 기자 nowlight@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