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대응체계 전환, 치료비·위자료 등 배상 항목 포함
법무부, 손해배상청구권 소멸시효 폐지 특례조항 추진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이 사고발생 시점과 무관하게 손해배상을 받을 수 있게 될 전망이다. 정부가 이 일과 관련한 손해배상청구권 소멸시효를 없애겠다고 밝히면서다. 다만 특별법 개정 등 입법절차가 남아 있어 실제 배상까지는 시일이 다소 소요될 가능성이 높다.
25일 법조계에 따르면 정부는 전날 김민석 국무총리 주재로 국가정책조정회의를 열고 가습기 살균제 사건을 참사로 규정했다. 또 대응체계를 단순 피해구제에서 국가 주도 배상으로 전환했다. 이같은 조치로 치료비와 일실이익, 위자료 등 손해 전반이 배상대상에 포함됐다.
이에 발맞춰 법무부는 피해자들의 손해배상청구권을 강화하기 위해 장기 소멸시효 문제를 해소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손보겠다는 입장을 보였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피해자들의 실질적인 피해회복이 보다 원활히 이뤄질 수 있도록 참사와 관련된 손해배상청구권의 소멸시효 제도를 전반적으로 개선해 나갈 예정"이라며 "지난해 6월 대법원 판결로 참사원인으로 국가책임이 인정됐음에도 정부의 미흡한 조치로 5942명 피해자의 아픔을 충분히 보듬지 못해온 현실을 바로잡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법무부가 소멸시효를 손보려는 것은 원인규명이 늦어지면 피해자가 소송을 내기도 전에 청구기한이 끝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소멸시효는 일정시간이 지나면 법적으로 돈을 달라고 요구할 수 없게 되는 유통기한 같은 개념이다. 민법 제766조에 따르면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은 피해자가 손해와 가해자를 안 날부터 3년간 행사하지 않으면 시효로 소멸한다. 불법행위가 있던 날부터 10년이 지나도 소멸한다.
김영수 국무조정실 국무1차장이 지난 24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국가정책조정회의에서 확정된 가습기 살균제 참사 피해자 종합지원대책을 발표하고 있다. /세종=뉴스1 |
가습기 살균제 사건은 1994년부터 발생했지만 2011년에 이르러서야 살균제와 폐손상 간의 인과관계가 밝혀졌다. 지난달말 기준 5942명이 정부로부터 피해를 인정받았고 대법원도 지난해 6월 가습기 살균제 참사에 국가도 일부 책임이 있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그사이 상당수 피해사례가 시효의 장벽에 부딪쳤다.
조만간 '가습기 살균제 피해구제를 위한 특별법'에 시효 배제·정지 등 특례조항을 신설하는 방안이 추진될 것이 유력하다. △관계부처(TF)에서 개정안 마련 △부처협의·입법예고 △법제처 심사 △차관회의·국무회의 의결 △정부안으로 국회 제출 △상임위원회·법제사법위원회 심사 및 본회의 의결 △공포·시행 등의 절차를 거칠 전망이다.
과거 대형 참사 피해자들에 대한 배상도 대부분 특별법을 통해 이뤄졌다. 5·18민주화운동 등 국가에 책임이 있는 사건의 경우 사건발생 수십 년 후에 별도 법률을 제정해 피해보상이 이뤄진 선례가 있다.
정 장관이 가습기 살균제 사건과 관련한 손해배상청구권 소멸시효 제도를 전반적으로 개선하겠다고 밝힌 만큼 민법 전반에 대한 개정을 검토할 가능성도 있다. 법조계에서는 국가의 과오 또는 은폐로 피해원인 규명이 지연된 경우에는 소멸시효가 진행되지 않도록 하는 규정을 두거나 인체에 대한 장기잠복 피해에 대해서는 시효기간을 대폭 연장하는 방안 등이 검토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양윤우 기자 moneysheep@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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