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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에 타버린 역사..용두산 대화재 [그해 오늘]

이데일리 장영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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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에 타버린 역사..용두산 대화재 [그해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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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4년 12월 26일 부산 용두산 화재
'전쟁 피난' 국보급 유물 3500점 소실
[이데일리 장영락 기자] 71년 전인 1954년 12월 26일 부산 용두산에서 큰 화재가 발생했다. 이 불로 전쟁 당시 부산에 대피시켰던 국보급 문화재 3500여점이 소실됐다.
당시 화재로 일부 소실된 태조 어진. 국립고궁박물관.

당시 화재로 일부 소실된 태조 어진. 국립고궁박물관.


1953년 한국 전쟁이 끝나고 수도가 서울로 복귀했지만 부산은 피난 여파가 여전했다. 피난민들이 몰려 들어 가건물에서 모여 살다보니 화재에 취약한 환경이 됐고, 부산역 앞에서 실제로 큰 화재가 발생하기도 했다.

12월 10일에는 동광동 판자촌에서 화재가 나 집 1000호가 전소되는 큰 피해가 발생하기도 했다. 이 당시 관의 대응 능력도 턱없이 부족한데다 지형도 진화에 불리해 피해가 커졌다.

26일에는 광복동, 동광동에 걸쳐 있는 용두산에서 다시 화재가 발생했다. 16일 전 화재에서 살아남은 판자집도 모두 불에 탔으며 1명이 사망하고 1400명이 넘는 이재민이 발생했다.

이 화재는 한국 역사학계에도 치명적인 영향을 미쳤다. 전쟁 후 궁중유물을 이송시켜둔 부산국악원 창고에도 불이 나 3500점이 넘는 유물이 소실됐기 때문이다. 유물에는 조선왕조 어진 등 중요한 물품이 많았던 것으로 알려졌는데, 소실된 유물 목록조차 1960년 있었던 창덕궁 청사 방화 사건으로 소실돼 어떤 유물을 잃게 됐는지 알길조차 없어졌다.

이 사건에는 전쟁 속 한국 사회 혼란상이 그대로 담겨 있기도 하다. 일부러 부산으로 피신시킨 만큼 국가 문화 유산의 중요성을 당시 정부도 모르지는 않았다.

그러나 전쟁통에 그 관리까지 충실하게 할 수 있는 사회 시스템이 안착될 턱이 없었다. 10일 화재에서 이미 창고가 화재 위험에 노출돼 있었는데도 아무런 조치도 취해지지 않았고, 경찰이 인근에 형식적으로 배치됐지만 화재가 발생한 직후에는 창고 열쇠를 가진 이를 찾지 못해 유물을 대피시키는데도 실패했다.

애초에 서울로 다시 돌아가야했음에도 휴전 상황에서 다시 휴전선 부근 지역으로 유물을 옮기는 것을 망설인 것도 화근이 됐다. 심지어 이 화재로 수천점의 유물이 소실됐다는 구체적인 사실도 최근에야 대중적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