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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와우리] 줄어든 도발 뒤에 숨은 北의 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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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와우리] 줄어든 도발 뒤에 숨은 北의 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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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 동부에서 버스전복, 8명 사망 19명 부상
年 30여회서 10여회로 줄었지만
긴장 완화 아닌 전략 전환 신호
핵·실전 경험 통해 존재감 강화
변화 의미 읽는 분석·대책 시급
2025년 북한의 도발은 크게 줄었다. 매년 최소 30회가 넘던 미사일·대량살상무기 도발이 10여 차례로 줄었다. 그러나 북한 군사 활동을 도발의 횟수로만 평가한다면 본질을 놓치게 된다. 줄어든 도발은 긴장 완화의 신호가 아니라 핵 위협을 일상화하기 위한 전략적 전환의 징후이다. 2025년 해외파병에 주력하던 북한은 한반도 내에서는 자신의 군사력을 ‘확대’하기보다는 ‘재정의’해야만 했을 것이다. 북한은 군사력을 덜 사용하는 대신, 군사력이 만들어내는 정치적·전략적 효과를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전략을 전환했다.

북한은 핵과 미사일의 실전적 완성을 증명하기보다, 스스로를 기정사실상의 핵보유국이자 국제적 군사 행위자로 각인시키는 데 주력했다. 화성-20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전략원잠, 신형 구축함의 공개는 성능 검증보다 존재 자체를 과시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아직 불완전한 능력일지라도 상대의 판단을 흔들고 결심을 지연시키는 ‘인지의 무기’로 핵전력을 활용하려는 계산된 접근이다. 핵무기의 효용이 사용 가능성보다 위협의 인식에서 나오는 것이기에, 북한의 전략은 냉정한 계산의 산물이다.

양욱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

양욱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

올해 북한 군사 활동의 분기점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참전이었다. 북한군의 러·우 전쟁 참전은 단순한 파병이 아니라, 실전경험 축적과 국제적 위상 과시를 동시에 노린 전략적 선택이었다. 북한은 대규모 재래식 전쟁의 현실과 드론·정밀 타격 중심의 현대전을 직접 학습했고, 러시아와의 밀월관계를 바탕으로 북·중·러 권위주의 연대를 정치·군사적 구도까지 끌어올렸다. 북한은 더 이상 한반도에 국한된 행위자가 아니라, 국제분쟁에 개입할 수 있는 존재임을 과시했다.

이는 2026년 제9차 노동당대회를 겨냥한 명확한 포석이다. 북한은 9차 당대회에서 핵보유국 지위와 두 국가 관계론을 제도화하고, 핵과 재래전력을 결합한 새로운 군사노선을 공식화하려 할 것이다. 이는 한반도 억제를 넘어, 동북아와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중국·러시아와 전략적 공조를 통해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시도다. 미국 본토 타격이라는 상징적 목표보다, 지역 위기에서 실질적 지렛대를 확보하는 것이 북한에는 훨씬 현실적인 선택이 될 수 있다.

문제는 우리의 대응이다. 북한의 군사력은 여전히 구조적 한계를 안고 있다. 그러나 북한은 그 한계를 핵보유국의 외양과 북·중·러 권위주의 연대, 그리고 러·우전쟁의 실전 경험으로 보완하고 있다. 이를 과소평가해 안이하게 대응하는 것도 위험하지만, 과대평가해 과도한 공포와 군비 경쟁으로 흐르는 것 역시 경계해야 한다. 북한은 전략적 전환을 추구하지만, 우리의 대응은 여전히 과거의 틀에 갇혀 있다.

그간 우리 사회는 미국 정부의 성향에 따라 자강과 동맹 사이에서 시계추처럼 흔들리면 갈등을 반복했다.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고압적 태도나 조건부 안보공약에 대해 국민은 분노한다. 이에 대해 정치권은 한국형 3축 체계 강화, 전작권 전환 또는 원자력추진잠수함 도입 같은 자강론적인 대안을 만능 해법처럼 소비한다. 그러나 현실에서 억제력을 갖춘 대안은 여전히 동맹 속에 있다. 정치화된 안보정책은 전략적 대응 태세를 오히려 약화시킬 뿐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북한의 핵·재래 전력 통합과 역외 군사 행위를 전제로 한 전략의 재정렬이다. 한국은 독자적인 정찰·방어·타격 능력을 강화하되, 이를 한·미 확장억제와 한·미·일 안보협력 구조 속에 정교하게 결합해야 한다.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동맹의 자동 개입이 약화되는 환경에서, 자강과 동맹을 대립시키는 이분법은 해답이 아니다.

북한이 명목적 전력을 정치적·심리적 지렛대로 활용한다면, 우리는 냉정한 분석과 일관된 전략으로 그 효과를 제한해야 한다. 북한의 군사력이 강해졌는지를 묻기보다,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직시해야 한다. 그 변화를 정확히 읽어내는 능력이야말로, 북한의 과시를 관리 가능한 위험으로 묶어두는 출발점이다.

양욱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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