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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수진의시네마포커스] 부재 이후에 찾아오는 그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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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수진의시네마포커스] 부재 이후에 찾아오는 그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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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더 마더 시스터 브라더’는 올해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짐 자무쉬 감독의 영화이다. 제목에서 한 가족의 이야기를 연상하기 쉽지만, 이 영화는 동시대를 배경으로 미국 북동부, 아일랜드 더블린, 프랑스 파리라는 전혀 다른 공간에서 일어나는 각자 다른 가족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그러나 각 에피소드에는 공통된 요소들이 있다. 자녀들과 적당히 거리를 두는 부모, 그런 부모를 만나기 위해 차를 타고 부모의 집으로 오는 자녀들, 거리에서 만나는 스케이트보더들, 집 안에 설치된 스탠드 조명 등이 그것이다.


첫 번째 에피소드에서 남매는 아버지를 만나기 위해 뉴저지에 간다. 2년 만에 만나는 남매는 좁은 차 안에서 적당한 대화를 이어가지 못한다. 아버지의 집에서 어색함과 불편함은 더욱 커진다. 어떻게든 대화를 이어가려 애쓰지만 오랫동안 적당히 거리를 두고 살아온 가족의 대화는 어딘지 헛돌고 부자연스럽다. 어수선하고 남루한 집에서 아버지가 무슨 돈으로 사는지 걱정되기도 하지만 아버지 손목에서 발견한 롤렉스를 보며 남매는 시계가 진짜인지 가짜인지 궁금해하면서도 어쨌든 아버지가 그럭저럭 사는 것 같아 다행이라 생각하며 집을 나선다.

두 번째 에피소드에서 자매는 더블린에 살고 있는 어머니와 티 타임을 갖기 위해 어머니 집으로 향한다. 어머니와 같은 동네로 이사 왔지만, 그들은 일 년에 단 한 번 어머니가 준비하는 티 타임에서 만날 뿐이다. 격식과 품위를 중시하는 어머니의 잘 정돈된 집과 과하게 화려한 티 테이블. 의무와 책임감에 짓눌린 모범생 언니와 자유분방한 히피 스타일의 동생은 어머니의 완고하게 질서 잡힌 집에서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 이들은 의무방어전을 치르듯 차를 마시고 서둘러 집을 나선다.

두 에피소드에서 가족들은 서로에게 편안함을 느끼지 못한다. 우리가 기대하는 편안하고 화목한 가정의 이미지는 가공된 신화에 불과하다고 말하듯이 말이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가 이 영화를 통해서 비로소 깨닫게 된 진실은 아니다. 우리 대부분은 이미 오래전부터 경험을 통해 그 사실을 알고 있다. 영화 속 가족은 우리 대부분이 그렇듯이 반나절의 대화조차 부담스럽다.

영화는, 진정한 대화는 어쩌면 부모의 부재 이후에나 가능하다고 말하는지 모르겠다. 세 번째 에피소드에서 이란성 쌍둥이 남매는 사고로 급사한 부모를 추모하기 위해 파리의 부모 집을 방문한다. 아무 쓸모 없어진 잡동사니들을 모두 치워버린 텅 빈 공간에서 남매는 부모의 부재 이후에 비로소 깨닫는 그리움과 애틋함에 관해 이야기한다. 그것은 비단 이 가족뿐 아니라 동시대의 누구라도 공유하는 보편적 감정일 터. 자무쉬 감독은 그것을 사실과 몽환을 오가는 특유의 미니멀하고 시적인 스타일로 풀어놓는다. 불완전한 가족들의 초상을 통해 끊을 수 없는 가족의 유대감과 아름다움을 그려낸 영화. 단순하지만 곱씹을수록 아름답고 깊이 있는 달콤쌉싸름한 영화, ‘파더 마더 시스터 브라더’이다.

맹수진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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