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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배들이 날 뛰어넘게…‘눈에 보이는’ 선배가 되고 싶다”[여자, 언니, 선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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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배들이 날 뛰어넘게…‘눈에 보이는’ 선배가 되고 싶다”[여자, 언니, 선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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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심판 김유정
지난 16일 김유정 축구심판이 경기 고양시의 한 카페에서 경향신문 여성 서사 아카이브 플랫과 인터뷰하고 있다. 정효진 기자

지난 16일 김유정 축구심판이 경기 고양시의 한 카페에서 경향신문 여성 서사 아카이브 플랫과 인터뷰하고 있다. 정효진 기자


“월드컵이나 올림픽도 다녀온 ‘눈에 보이는’ 선배가 되고 싶어요. 후배들이 저를 뛰어넘을 수 있게 해주고 싶습니다.”

김유정 축구심판(36)은 올해 해외에서 무려 230일을 보냈다. 대부분 심판을 보는 일정이었다. 경향신문 여성 서사 아카이브 플랫은 지난 16일 경기 고양시에서 마침 한국에 들어와 있던 김유정 심판을 인터뷰했다.

그는 대학 시절 심판 자격을 얻은 후 2018년 국제축구연맹(FIFA) 소속 국제심판이 되었다. 2022년 한국 여자 심판 중 처음으로 알가르브컵 결승전 주심을 맡았고, 지난 4월 여자 심판 사상 처음으로 아시아축구연맹(AFC) 남자 17세 이하(U-17) 아시안컵 결승에 투입됐다. 알가르브컵은 매년 포르투갈 알가르브에서 열리는 국제여자축구대회로 ‘미니 월드컵’으로도 불린다. 내년 1월 열리는 AFC 남자 U-23 아시안컵에도 한국 여자 심판 최초이자 유일한 여성 심판으로 배정받았다. 2024 파리 올림픽 축구 종목 주심 21명 중 한 명으로 뽑히기도 했다.

김유정 심판은 학생 선수로 축구 인생을 시작했다. 초등학교 6학년, 평소처럼 방과 후 운동장에서 공을 차다가 제안을 받았다. ‘여자가 축구를 한다’는 그림이 잘 그려지지 않던 시절, 부모님의 반대는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김유정 심판. 대한축구협회 홈페이지

김유정 심판. 대한축구협회 홈페이지

김유정 심판은 “축구 시켜달라고 일주일 단식했다. 정말 하고 싶은데 못하게 하니까 밥맛이 없어지고 기운이 빠져서 시름시름 앓았다. 엄마가 ‘그렇게 좋으면 하라’ 하셨다”고 말했다. 하지만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이어진 크고 작은 부상이 발목을 잡았다. 결국 대학교 2학년 때 선수 생활을 그만뒀다. 부상은 그에게 심판이라는 직업을 고려하게 했다. 그는 “축구를 너무 하고 싶어서 선수랑 같이 뛰는 일이 뭐가 있을까 생각해보니 심판이 유니폼을 입고 뛰더라. 바로 강습을 찾아 심판 자격증을 땄다. 그만큼 운동장에서 뛰고 싶었다”고 말했다.

일주일 단식투쟁 끝 축구와 인연
부상에 시달리다 선수생활 마감
그라운드 누비고 싶어 심판의 길

2018년 좁은 관문 뚫고 국제심판
올해 해외에서 보낸 날만 230일

여자 월드컵·AFC 챔스리그 목표
선수들 잘 제어하려 늘 공부하죠

같은 경기를 뛰어도 선수와 심판의 입장은 극명하게 다르다. 김유정 심판 자신도 선수 출신이기 때문에 ‘선수에게도 관중에게도 욕먹는’ 심판의 처지를 누구보다 잘 알지만, 실제 심판이 되고 나서 선수에서 심판으로의 역할 변화를 체감했다. 그는 “WK리그에서 한번은 친한 (선수) 친구들과 마주쳐 경기 전에는 서로 반가워했는데 경기 끝나니 눈길도 안 주더라. ‘내가 심판이라 어쩔 수 없구나’ 싶었다”며 “여자 축구 발전을 위해 같이 뛰지만 서로 현역인 이상 이 선수들에게 어떠한 감정도 느끼지 말자고 다짐했다”고 말했다.


2018년 그는 좁은 관문을 뚫고 국제심판이 됐다. 여자 심판으로는 드물게 남자 경기까지 지평을 넓혔다.

올해 1월 남자 경기를 위한 국제 심판 체력 테스트를 통과했다. 그는 “남자 축구는 스피드가 빨라 체력적으로 더 많이 준비하려 한다. 남자 선수들보다는 키가 작으니 가까이 가지 않으면서도 단호히 제어하려고 정신무장을 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선수 시절엔 몰랐던 기술과 축구 트렌드, 전술 변화 등도 계속 공부한다. 그는 “선수보다 내 축구 수준이 더 높아야 하지 않나 싶다”고 했다.

그는 심판에게 ‘축구 이해(Football understanding)’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유정 심판은 “축구 자체에 대한 이해뿐만 아니라 선수와 팀에 관한 전략적인 이해가 필요하다”며 “예를 들어 손흥민 선수는 주력이 빠르니 빈 공간에 두세 발 먼저 가 있는 것, 특정 팀은 짧게 짧게 패스하니 패스에서 일어나는 사소한 부딪침을 잡아주는 것, 흥분하는 기질의 선수가 있으면 그가 폭발하지 않게끔 미리 자제시키는 것 등이 심판의 축구 이해”라고 말했다.


김유정 심판은 2022년 알가르브컵 결승전 주심과 2024년 파리 올림픽 예선 두 경기를 기억에 남는 경기로 꼽았다. ‘내가 여태까지 해왔던 게 틀리지 않았구나’란 자신감을 얻은 계기였기 때문이다. 다음 목표는 2027년 FIFA 브라질 여자 월드컵과 AFC 남자 클럽 챔피언스리그 및 AFC 남자 아시안컵이다. 그는 “후배들이 해외에 갔을 때 ‘한국의 유정 킴은 좋은 심판이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뿌듯해했으면 좋겠다. 내 경험을 나눠야 더 좋은 후배, 더 좋은 심판이 나올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으로 그는 축구를 더 발전시킬 방법을 고민한다. 여자 축구 관심이 커진 지금, 심판으로 유입된 이들을 계속 남게 하는 것도 그중 하나다. 인터뷰 내내 그의 말에선 축구를 향한 사랑이 묻어났다. 그의 말이다. “축구가 없었다면 내 인생이 뭐였을까 싶어요. 그러니 축구가 발전해야죠. 재미있잖아요.”

김서영 기자 westzer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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