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4일 김장하(81) 선생이 명신고 교가를 들으며 울음을 터트리는 모습. 김주완 전 경남도민일보 기자 페이스북 갈무리 |
“명신 명신~우리의 모교~명신의 교기 위에 영광 빛내리”
죽 늘어선 중년 남성들의 열창이 이어지자 이를 바라보던 한 노년 남성의 얼굴에 울음이 번졌다. 자신이 세운 명신고등학교를 국가에 헌납하는 등 경남 진주시에서 수십 년간 기부와 선행을 이어온 김장하(81) 선생이다.
지난 24일 김장하(81) 선생이 명신고 교가를 들으며 울음을 터트리는 모습. 유튜브 김주완TV 갈무리 |
김 선생 취재기 ‘줬으면 그만이지’(피플파워)를 쓴 김주완 전 경남도민일보 기자는 25일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전날 ‘진주 남성당 교육관’ 개관식 현장에서 있었던 사연을 소개했다.
진주 남성당 교육관은 김 선생이 50년간 운영하다 2022년 문을 닫은 ‘남성당 한약방’ 건물을 진주시가 매입해 조성한 시민 문화·교육 공간이다. 김 선생은 처음에는 자신을 기념하는 시설을 만들까 봐 거절했지만 건물 2~3층은 일제강점기 진주의 형평운동(백정 신분 해방운동)과 소년운동을 교육하는 공간, 1층은 한약방 역사를 보여주는 공간으로 조성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허락했다고 한다.
이날 개관식이 끝난 뒤 특별한 행사가 이어졌다. 명신고 출신 남성들이 김 선생 앞에서 명신고 교가를 부르기 시작한 것이다. 평소 과묵하고 담담한 태도로 유명한 김 선생은 이들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자 울먹이기 시작했다. 김 선생은 노래를 부르는 이들의 얼굴을 한 명씩 바라보며 눈물을 터트렸다.
김 기자는 관련 영상과 사진을 공유하고 “개관식 내내 무표정으로 일관하던 김장하 선생이 이들의 교가가 울려 퍼지는 순간 울먹이며 가늘게 교가를 따라 불렀다”며 “선생이 우는 모습을 본 것은 2021년 말 가을 문예 마지막 시상식 인사말 때 이후 처음”이라고 설명했다.
김 기자는 이어 명신고 교가에 얽힌 사연도 소개했다. 김 기자는 “1983년 (명신고) 개교를 앞두고 김장하 이사장은 특별히 진주 출신의 유명 작곡가 정민섭에게 교가 작곡을 부탁했다. 사례비로 100만원을 드렸다고 한다”며 “당시 대기업 초봉이 30만 원 정도였다고 하니 꽤 큰 돈이다”라고 말했다. 정민섭은 ‘대머리 총각’, ‘육군 김일병’ 등 당대 히트곡과 영화 ‘태권동자 마루치 아라치’ 주제가 등을 작곡했으며 진주에서는 지금도 ‘정민섭 음악제’가 해마다 개최되고 있다. 김 선생은 자신이 가난 때문에 고등학교에 진학하지 못했던 한을 풀기 위해 20년간 모은 돈으로 설립한 명신고에 특별한 교가를 선물했던 셈이다.
다큐멘터리 ‘어른 김장하’. 엠비시 경남 제공 |
1944년생인 김 선생은 진주시 중앙동에 위치한 이 자리에서 한약방을 운영하며, 1984년 진주에 세운 명신고를 1991년 국가에 헌납하고 1천명이 넘는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었다. 그 가운데 한 명이 윤석열 전 대통령에게 파면을 선고한 문형배 전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이다. 문 전 권한대행은 2019년 인사청문회 당시 “김장하 선생 덕분에 학업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고 사법시험에도 합격할 수 있었다”며 “제가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인사하러 간 자리에서 선생은 ‘내게 고마워할 필요는 없다. 나는 이 사회의 것을 너에게 주었으니 갚으려거든 내가 아닌 이 사회에 갚아라’ 하였고, 그 말씀을 한시도 잊은 적 없다”고 밝힌 바 있다.
지난 4월 헌재의 탄핵 심판 선고를 계기로 김 선생의 이야기가 재조명되면서 이른바 ‘김장하 신드롬’이 일기도 했다. 그의 삶을 다룬 다큐멘터리 ‘어른 김장하’가 넷플릭스에서 역주행하고, 씨지브이(CGV)에선 재개봉했다. 2022년 문화방송(MBC) 경남에서 제작한 ‘어른 김장하’는 2023년 4월 제59회 백상예술대상 티브이 부문에서 교양작품상 등을 수상했고, 그해 11월 다큐멘터리로는 드물게 영화관에서 개봉된 바 있다.
장현은 기자 mix@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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