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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선·난임 치료 "다 안돼" 의사는 반대, 정부는 방관…속타는 한의사들

머니투데이 박정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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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선·난임 치료 "다 안돼" 의사는 반대, 정부는 방관…속타는 한의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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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한의사협회 '8대 의료 현안' 의견 개진
난임 치료 국민 요구… 의료기기 사용도 필요
지역·필수 의료 분야에 한의사 역할 확대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국민건강수호 및 의료악법저지를 위한 '전국의사 대표자 궐기대회'에서 참석자들이 손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서울=뉴스1) 김성진 기자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국민건강수호 및 의료악법저지를 위한 '전국의사 대표자 궐기대회'에서 참석자들이 손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서울=뉴스1) 김성진 기자



의사 단체인 대한의사협회(의협)와 한의사 단체인 대한한의사협회(한의협)가 의료 현안을 둘러싸고 끊임없는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의정 갈등 상황에서 한의협이 의료 공백 해소에 '역할론'을 주장하며 외연 확장을 시도했고, 이어 우호적인 경찰·법원 판단과 정부 정책 등이 나오면서 한의사와 의사 간 경쟁 구도가 심화한 모습이다.

진료 영역을 '지키는 쪽'의 의협은 한의협의 움직임을 거의 모두 반대한다. 의협 한방대책특별위원회(이하 한특위) 명의로 "과학적 근거 없는 한방 난임 지원사업 당장 전면 폐기하라!" "한의협의 '피부미용 의료기기 사용 합법' 주장은 허위·왜곡" 등 다소 과격한 의견을 쏟아내고 있다. 지난달에는 의협 산하 단체에 한의사를 대상으로 X선·초음파 등 의료기기 사용 교육을 하지 말아 달라는 협조 공문을 보내기도 했다. 한의사 의료기기 사용의 명분이 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윤성찬 대한한의사협회장./사진=대한한의사협회

윤성찬 대한한의사협회장./사진=대한한의사협회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16일 보건복지부 업무보고에서 가장 먼저 '한방 난임 치료의 건강보험 적용 여부'를 질의하는 등 한의학에 관심을 보였다. 그러나 정은경 복지부 장관은 즉답을 피하며 난색을 보이는 모습이 연출됐다. 의협과 한의협이 맞서는 이슈는 한방 난임 치료 외에도 다양한데 정부는 갈등이 격해지는 상황에도 특별한 '의견'은 내지 않는 모습이다. 한의협은 답답하다는 입장이다. 이에 머니투데이는 지난 24일 한의협의 윤성찬 회장, 김석희 홍보이사 등 임원진과 한의사가 바라보는 의료 현안을 주제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아래 내용은 각 주제에 대한 한의협의 주장이다.


1. 한의 난임 치료 지원

모자보건법 개정으로 한의약 난임 치료의 법적 근거가 마련됐다. 2012년 복지부 국민건강증진기금으로 세명대가 수행한 연구 결과 한의약 난임 치료에 대한 정부 지원이 필요하다는 응답은 96.8%를 기록, 국민적 요구도 매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세계 최저 수준의 출산율을 기록하는 우리나라에서 난임 해결을 위해 국가적 차원의 전방위적 지원이 절실한 상황이다.


한의 난임 치료에 대한 법적 근거와 표준임상진료지침은 마련됐지만, 아직까지 정부 차원의 구체적인 사업 계획과 예산 수립은 전무하다. 한의약 난임 치료 지원은 지자체 조례와 재정에 의존하는 구조로 현재 14개 광역자치단체, 72개 기초자치단체에서만 관련 사업을 시행하고 있다. 난임 환자의 치료 불평등 문제가 불거진다. 대만은 한방 난임치료를 건강보험 급여로 지원하고 있다. 2017년 5억원 규모로 시작된 경기도의 한의 난임 치료 지원은 난임 부부에게 큰 호응을 얻으면서 2019년에는 8억, 올해 9억7200만원으로 사업 규모가 증가했다. 출산 위기 극복을 위해 정부 예산지원 및 제도화를 시급히 추진해야 할 때다.

한의표준임상진료지침 여성난임 표지./사진=보건복지부

한의표준임상진료지침 여성난임 표지./사진=보건복지부




2. 한의사 진단용 방사선기기 사용

지난 1월 수원지방법원은 한의사의 X선 골밀도측정기 사용 행위가 무죄라고 판결했다. 검사의 미상고로 같은 달 해당 판결이 확정됐다. 앞서 2022년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한의사의 초음파 진단기기 사용을 금지하는 취지의 규정은 존재하지 않고 △보건위생상 위해 우려도 통상적인 수준을 넘지 않는다고 판단하며 한의사의 진단용 의료기기 사용에 대한 '새로운 기준'을 제시했다.

그런데도 한의사의 방사선진단기기 사용을 위한 신고·접수는 여전히 제한된다. 설치·운영에 대한 행정절차(신고)를 준수할 수 없어서 법원 판단과 무관하게 관련 법령 위반으로 처벌받을 수 있는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환자들이 진단 자료를 확보하기 위해 이중으로 의료기관을 방문하며 불필요한 비용을 지출하는 만큼, 한의사의 진단용 방사선기기 사용을 위한 신고를 승인하도록 행정절차를 개선해야 한다.


3. 레이저·고주파 등 피부미용 의료기기 사용

2024년 2월 피부미용을 목적으로 일반의약품인 리도카인 성분의 국소마취제를 간호사에게 도포하도록 지시하고, 초음파·고주파·레이저로 미용 목적의 의료행위를 시행한 한의사가 보건범죄단속에관한특별조치법 위반(영리 목적, 한의사 면허 범위 의외의 의료행위) 혐의로 경찰에 고발당했다. 경찰은 이에 대해 의료법상 면허된 것 이외의 의료행위라고 볼 수 없고, 달리 이를 입증할 증거가 불충분하다며 지난 11월 불송치 결정을 내렸다.

윤성찬 대한한의사협회장./사진=대한한의사협회

윤성찬 대한한의사협회장./사진=대한한의사협회



한의사가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 적법하게 사용하는 초음파, 고주파, 레이저 방식의 의료기기 및 한의의료행위를 위해 보조적으로 사용하는 의약품(리도카인, 응급의약품 등)의 사용에 대해 의협은 지속해서 고발장을 접수하고 있다. "의과 영역 침탈 시도" "국민을 현혹하는 위험한 선동"이라며 폄훼한다. 보건당국이 한의사의 의료기기와 의약품 사용과 관련해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는 사이 한의사는 사법기관을 통해 사안별로 개별적인 판단을 받으며 지쳐가는 상황이다.

경찰의 불송치 결정은 한의사의 업무 범위를 정확하고 합당하게 판단한 것이다. 한의사가 한의 진료 시 환자의 통증을 줄이고, 응급상황에 대처하기 위한 보조적 수단으로 전문의약품인 리도카인, 에피네프린, 덱사메타손 등을 사용하는 것은 한의사의 업무 범위에 해당한다. 한의사가 피부미용 시술을 위해 사용하는 레이저, 고주파, 초음파 등 현대 의료기기의 활용은 더욱 확대되어야 한다. 고발, 민원 등 소모적인 분쟁은 더는 없어야 한다. 보건당국의 전향적인 해석이 필요한 시점이다.


4. 피부미용 의료에서 역할 확대

필수 의료 인력 부족이 심각한 가운데, 전문인력 이탈을 가속화 하는 의사의 미용 분야 쏠림 현상이 필수 의료 공백을 심화시키는 주원인이 되고 있다. 의협 추산 전체 의사 13만여명 중 3만여명이 피부미용 의사다. 최근 3년간(2022~2024년) 일반의가 개원 신고한 진료과목에서 피부과가 401개(23.7%)로 가장 많았다.

한의사는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보건의료인력 종합계획 및 중장기 수급체계 연구'에서 유일하게 공급이 원활한 직종으로 분석됐다. 전문 교육을 이수한 면허 의료인으로서, 안전성과 전문성을 갖춘 가장 현실적이고 합법적인 피부미용 의료 분야 대체 인력이다. 한의사의 역할 확대는 국민의 선택권을 확보하면서도 필수 의료 인력의 안정을 지원하는 방안이 될 수 있다.


5. 첩약 건강보험 시범사업

지난해 4월 복지부는 첩약 건강보험 적용 2단계 시범사업을 통해 건보 적용 대상 질환을 기존 3개에서 6개로, 대상 의료기관은 한의원에서 한방·종합병원으로 각각 확대했다. 이를 통해 환자는 연간 2가지 질환에 대해 각각 최대 20일씩 첩약 비용의 30%(한의원) 또는 40%(한방병원·병원), 50%(종합병원)를 내면 돼 비용 부담이 줄었다.

첩약 건강보험 적용 시범사업/그래픽=조수아

첩약 건강보험 적용 시범사업/그래픽=조수아



의협은 첩약 치료의 안전성, 유효성을 우려하며 '예산 낭비'라는 입장이다. 그러나 복지부는 1단계 시범사업 시 전향적 관찰연구, 후향적 레지스트리 연구 등을 통해 이미 첩약의 안전성·유효성을 검증한 바 있다. 해당 연구에 따르면 첩약 군의 이상 반응은 매우 드물고 대부분 설사, 오심 등 경미했다. 반면 대조군에 비해 첩약 군의 통증 지표(NRS, EQ-VAS 등)에서 유의하게 감소해 효과적인 것으로 파악됐다.

대상 질환 6개는 한의표준임상진료지침 상 첩약 치료 권고등급·근거수준이 '사용 고려'(Moderate) 이상인 질환 중에서 선정했다. 한약재는 식품의약품안전처 규격품 인증 시설에서 제조돼 안전성을 담보하고 있다. 애초 '한약은 간에 나쁘다'는 건 거짓말이다.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 등이 67만명이 넘는 대규모 환자군을 대상으로 연구한 바에 따르면 한약은 다른 약물보다 간 손상 위험이 오히려 낮았다.


6. 추나요법 건강보험 급여

추나요법은 허리가 삐는 염좌나 허리디스크(추간판탈출증), 추간판협착증과 같은 근골격계 질환에 적용하는 한의 의료행위다. 통증 감소와 기능 회복에 효과를 인정받아 2019년부터 근골격계 질환을 대상으로 '단순 추나', '복잡 추나', '특수(탈구) 추나요법'에 대해 건강보험 급여가 적용됐다.

추나요법은 이제 막 관리급여에 편입된 도수치료와 달리 이전부터 본인부담률이 꽤 높다. 근골격계 질환의 본인부담률은 50%, 그 외는 80%다. 환자는 연간 20회, 한의사는 1인당 하루 18명 급여 적용 등 '제한적 급여기준'을 적용했다. 복지부가 2년간 모니터링을 거쳐 제도 보완을 추진하기로 했지만 6년이 지난 지금까지 한의협의 제안에도 묵묵부답이다. 내부적으로 환자의 만족도가 높은 만큼 치료 기회 보장을 위해 급여 제한 완화와 본인부담률 인하 등의 필요성이 크다고 판단한다.

자생한방병원 의료진이 해외 의료진 대상으로 침치료를 시연하며 설명하고 있다./사진=자생한방병원

자생한방병원 의료진이 해외 의료진 대상으로 침치료를 시연하며 설명하고 있다./사진=자생한방병원




7. 지역·필수 의료 역할 확대

이재명 정부는 의료진 부족으로 붕괴 위기에 놓인 지역·공공의료를 살리기 위해 '지역의사제'와 '공공의료 사관학교' 신설을 공약했다. 복지부에 따르면 2024년 8월 기준 전국 의료기관에 종사하는 외과, 신경외과, 심장혈관흉부외과 전문의는 인구 1000명당 각각 0.2명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소아청소년과와 산부인과 등 또 다른 필수 의료 분야 전문의 충원율 역시 미미하기만 하다.

한의계는 이처럼 부족한 지역·필수의료 의료인력의 신속하고 원활한 공급을 위해 공공의료 사관학교 신설 시 공공의료와 지역의료, 필수의료 분야에 투입을 전제로 한의사들을 위한 클래스를 개설·운영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한의사의 참여는 빠른 의료인력 충원으로 이어져 의료사각지대 문제 해결과 농어촌 지역주민들의 건강증진에 실질적인 도움이 될 것이다. 의과 공중보건의가 없는 보건지소에 한의과 공중보건의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방안도 필요하다. 지금도 전국 보건지소 중 의과 공중보건의가 미배치 된 곳이 절반에 육박한다. 한의과 공보의에게 일정 기간 교육 수료 후 일차의료에 필요한 경미한 의료행위를 할 수 있도록 조치해야 한다.


8. 한의약 일차의료 역할 강화

이재명 정부가 일차 의료에 힘을 실으면서 한의사의 역할을 확대할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복지부가 2021년과 2022년부터 시행 중인 '일차의료 한의 방문진료 수가 시범사업'과 '장기요양 재택의료센터 시범사업'(이하 재택의료센터)에 대한 국민의 관심이 높다. 정부 국정과제에 '한의계 강점 질환을 중심으로 어르신 한의 주치의 시범사업 신설'이 포함된 점도 한의학에 대한 인정과 더불어 국민적 치료 요구를 반영한 것이라 평가한다.

서울 동대문구 서울한방진흥센터를 찾은 외국인 관광객. /사진=(서울=뉴스1) 김진환 기자

서울 동대문구 서울한방진흥센터를 찾은 외국인 관광객. /사진=(서울=뉴스1) 김진환 기자



일차의료 한의 방문진료는 11월 기준 2565개 한의원을 포함해 총 2733개 기관이 참여하고 있다. 의과에 비해 2년 정도 늦게 시행됐지만 참여기관이 2배 정도 많고 현장의 호응이 좋다. 그러나 국민의 인지도가 여전히 낮고 대상자의 정보를 얻기도 힘들어 실제 활동 기관은 625개에 불과한 실정이다. 거동이 불편한 환자를 한의사가 직접 찾아가 침술·부항 술 등의 의료서비스를 원활히 제공할 수 있게 되길 바란다.

재택의료센터는 장기 요양 수급자 대상의 방문진료 서비스로 한의과와 의과 통합으로 운영되고 있다. 전체 113개 지자체에서 총 195개소가 참여하는데 이 중 한의 의료기관은 57개소(11월 기준)다. 의료접근성이 낮은 지역 환자에게 한의 처치를 해주는 것은 의미가 있다. 그러나 한의원만이 대상 기관이라 한의과가 설치된 지방의료원은 한의사에 대한 행위 수가(방문진료비)를 보상받지 못하고 현행 진료의뢰·회송제도의 '의원' 범주에는 한의원 포함 여부가 명시되지 않아 실질적으로 협력체계에서 제외된 상황이다. 또 일차의료가 다수를 차지하는 한의진료 특성상 의·한 협진 제도의 효과적인 운영을 위해 의원-한의원 간의 협진으로 사업 확대가 필요하다.

박정렬 기자 parkjr@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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