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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한국인 누구나 北노동신문 보나…李질타에 국정원 움직였다

중앙일보 윤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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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한국인 누구나 北노동신문 보나…李질타에 국정원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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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4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이재명 정부 첫 인사브리핑에서 이종석 신임 국가정보원장 후보자가 소개되고 있다. 뉴스1

지난 6월 4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이재명 정부 첫 인사브리핑에서 이종석 신임 국가정보원장 후보자가 소개되고 있다. 뉴스1


국가정보원이 조선노동당 기관지인 노동신문 등 북한 자료에 대한 ‘보안 빗장’을 풀기로 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19일 외교·통일부 업무보고에서 일반 국민이 노동신문에 접근할 수 없는 데 대해 “국민을 선전·선동에 넘어갈 존재로 취급하는 것 아니냐”고 비판하자 국정원이 곧바로 움직인 셈이다.

국정원은 24일 윤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국회 정보위원회 소속)에게 제출한 서면 답변서에서 “국민의 북한 자료 접근을 개선하기 위해 향후 관련 입법 절차에 적극 협조해 나갈 방침”이라며 “북한 사이트 접속도 전향적으로 검토해나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미 일정도 구체화하는 분위기다. 국정원은 오는 26일 통일부·문화체육관광부·교육부·과학기술정보통신부·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 등 관련 부처와 긴급회의를 열고 노동신문을 ‘특수자료’에서 ‘일반자료’로 재분류하는 방안을 결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지난 19일 이 대통령의 관련 언급 이후 1주일 만에 협의를 본격화하는 것이다. 이에 따라 정부 차원에서 관련 규정을 손보는 절차를 마무리하면 노동신문을 누구나 자유롭게 열람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현재 북한 자료는 국정원의 ‘특수자료 취급지침’에 따라 관리한다. 국정원은 국가보안법 7조(찬양·고무죄)에 따라 해당 지침을 1970년 마련했다. 북한 자료를 북한을 찬양·선전하거나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부정하는 내용의 ‘특수자료’와 그렇지 않은 ‘일반자료’로 분류하고, 노동신문을 비롯한 특수자료는 일반 국민에게 공개하지 않는 게 골자다.

문제는 전체 북한 자료 중 특수자료 비중이 거의 90%에 이른다는 점이다. 지침에 따르면 통일부 등의 요청이 있을 경우에 한해 특수자료를 공개할 수 있지만, 이런 경우에도 ‘디지털 콘텐트는 인터넷과 보조 기억매체 연결 차단 등의 보안 조치를 한 열람 전용 PC에서만 열람하게 한다’(지침 9조)는 규정이 적용된다. 북한 자료센터나 통일교육원 등을 방문하지 않는 한 자유로운 온라인 열람은 불가능한 구조다. 국내에서 일반 전자기기로 노동신문 등 북한 사이트 접속을 시도하면 ‘불법·유해 정보(사이트)에 대한 차단 안내’로 연결된다.

국정원은 또 해당 지침을 폐지하는 동시에 북한 자료 관리 주체를 통일부로 일원화하겠다는 방침도 정했다. 이미 민주당 이용선 의원(7월), 국민의힘 김기웅 의원(11월) 등이 각각 발의한 관련 법안이 국회에서 계류 중이다. 국정원은 “해당 법안 제정 관련 통일부와 긴밀 협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달 28일 국정원 현장 시찰 및 격려 방문한 사진을 대통령실이 공개했다. 사진은 방명록을 작성하고 있는 이 대통령과 그를 바라보는 이종석 국정원장. 대통령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달 28일 국정원 현장 시찰 및 격려 방문한 사진을 대통령실이 공개했다. 사진은 방명록을 작성하고 있는 이 대통령과 그를 바라보는 이종석 국정원장. 대통령실



국정원이 이날 밝힌 입장은 보안에 우선순위를 뒀던 기존에 비해 크게 달라진 것이다. 이와 관련, 이 대통령의 관련 지적에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통일부는 (이 대통령처럼 개방하자는) 같은 입장이지만, 국정원 등 다른 부처는 신중론을 갖고 있다”며 국정원을 사실상의 걸림돌로 꼽았다. 그러자 이 대통령은 “국정원은 이런 걸 봐도 안 넘어가는데 국민은 보면 홀딱 넘어갈 것이라고 걱정하는 것이냐. 이건 정말 문제”라고 질타했다.

앞서 윤석열 정부도 국정과제의 일환으로 북한 자료 접근권 확대를 검토한 적이 있다. 하지만 국민 여론과 남북 관계의 현실을 고려해야 한다는 이유로 결국 무산됐다.

이에 대해 윤건영 의원은 “북한의 각종 자료에 대한 서류상 접근권을 막는 것은 남북 간 대결과 갈등의 시대로 인한 묵은 상처 같은 후유증”이라며 “북한이라는 단어만 나와도 경색된 입장을 적용했던 구시대의 낡은 유물을 새롭게 정비하고 변화를 꾀하는 것은 진작 했어야 할 일”이라고 했다.

윤지원 기자 yoon.jiwon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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