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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반적으로 상향 평준화… 개인적 체험 머물고 개성은 부족해" [한국일보 신춘문예 응모작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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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반적으로 상향 평준화… 개인적 체험 머물고 개성은 부족해" [한국일보 신춘문예 응모작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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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한국일보 신춘문예, 5개 부문 총 7832편 응모

손보미(왼쪽) 소설가와 조연정 문학평론가가 14일 서울 중구 한국일보에서 2026 신춘문예 소설 부문 응모작을 살펴보고 있다. 정다빈 기자

손보미(왼쪽) 소설가와 조연정 문학평론가가 14일 서울 중구 한국일보에서 2026 신춘문예 소설 부문 응모작을 살펴보고 있다. 정다빈 기자


'문학의 위기'에 더해 인공지능(AI)이라는 거센 파고가 닥쳐도, 어디선가 여전히 자신만의 글을 써 내려가는 사람들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었다. 지난 19일 심사가 마무리된 2026 한국일보 신춘문예에는 총 2,560명의 작가 지망생이 몰렸다. 시, 소설, 희곡, 동시, 동화 등 5개 부문에 응모한 이들로, 지난해(2,220명)보다 340명 늘어난 숫자다.

응모작 수는 총 7,832편(시와 동시는 1인 5편 투고 전제). 지난해 7,212편에서 620편 증가했다. 부문별로는 시(5,385편)와 소설(877편), 희곡(135편)에서 지난해보다 응모작이 고르게 늘었으며, 동시(1,205여 편)와 동화(230편)에서 소폭 줄었다.

작품의 완성도와 문장력은 "상향 평준화됐다"는 게 전 부문 심사위원단의 공통된 평가다. 다만 글쓴이 고유의 개성이나 끝까지 밀고 나가 보는 힘은 상대적으로 부족했고, 문제의식 역시 개인적 차원에 머무르며 타인과 사회로 확장하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두루 지적됐다.

정진새(왼쪽) 김명화 극작가 겸 연출가가 19일 서울 중구 한국일보에서 2026 한국일보 신춘문예 희곡 부문을 심사하며 의견을 나누고 있다. 임지훈 인턴기자

정진새(왼쪽) 김명화 극작가 겸 연출가가 19일 서울 중구 한국일보에서 2026 한국일보 신춘문예 희곡 부문을 심사하며 의견을 나누고 있다. 임지훈 인턴기자


투고작 가운데 AI 활용이 의심되는 원고가 얼마나 될지도 관심사였다. 본보는 이번 신춘문예 공고에 '생성형 AI를 활용한 사실이 확인되면 당선을 취소한다'고 명시한 바 있다. 심사위원들은 현재의 AI는 문체나 패턴을 모방하는 수준에 그칠 뿐 독창적인 창작을 하는 수준에는 이르지 못했다고 평가하면서, 당선작을 가리는 과정에서 AI 도움을 받았는지 심각하게 따져볼 일은 없었다고 했다.

시 부문을 맡은 손택수(시인) 심사위원은 "이렇게 많은 작품이 응모됐는데도 왜 이렇게 비슷비슷해 보일까를 두고 심사위원 간에 이야기가 오갔다"며 "정말 챗GPT가 썼나 싶을 만큼, 그러니까 개성을 추구하는 시대인데 작품에선 오히려 개성이 사라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오세란(아동청소년문학평론가) 동화 심사위원은 "설령 AI를 활용한 투고작이 있더라도, 본심에 오른 작품들은 지금의 AI로는 엄두를 내지 못할 만큼 장면 묘사가 굉장히 구체적이었다"고 했다. 다만 AI 시대 도래는 거스를 수 없는 만큼 앞으로 그 역할을 어디까지 인정할 것인지, 이를 심사 기준에 어떻게 반영할지는 여전히 숙제로 남아 있다.

시 부문에서는 작품이 길어지는 추세가 두드러졌다. 시가 한층 젊어졌다는 평가도 나왔다. 강성은(시인) 심사위원은 "어려운 시대를 통과하며 언어를 통해 세계를 내면화하고 육화하는 방식이 좀더 예각화한 '젊은 시'가 많이 늘었다는 인상을 받았다"며 "궁핍한 시대에 더 빛나는 게 시인 만큼 청년들이 시에 더욱 깊이 몰입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다"고 했다.


이서수 소설가가 14일 서울 중구 한국일보에서 2026 신춘문예 소설 부문 응모작을 심사하고 있다. 정다빈 기자

이서수 소설가가 14일 서울 중구 한국일보에서 2026 신춘문예 소설 부문 응모작을 심사하고 있다. 정다빈 기자


한편으로는 세계와의 접속면을 넓히기보다 내면의 독백에 머무는 경향도 포착됐다. 특히 소설 부문에서는 "지나치게 미시적인 서사가 많아서 너무 개인적인 세계로 침잠하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최민석 심사위원)가 나왔다. 양경언(문학평론가) 심사위원도 "당면한 어려움을 자신이 알고 있는 관계와 경험 안에서 어떻게든 해결하려는 움직임 자체는 고무적이지만, 바깥으로 나아가는 힘을 기를 필요는 있다"고 했다.

희곡 부문의 김명화(극작가 겸 연출가) 심사위원은 "절망적인 상황을 보다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그 안에서 인간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까지 나아갔으면 좋았을 텐데 그런 작품은 드물었다"며 "각자의 독자성과 야망을 더 보고 싶다"고 주문했다.

동시와 동화에서는 장르에 대한 통념을 깬 작품들이 좋은 평가를 받았다. 김민령(아동청소년문학평론가) 동화 심사위원은 "여전히 의인화 동화나 동식물·자연물을 다루면서 교훈을 주려는 작품이 많았지만 본심에 오를 정도로 잘 쓴 작품에서는 그런 경향이 두드러지지 않았다"고 했다. 김개미(시인) 동시 심사위원은 "파편적인 표현력을 포함해 문장이 세련돼졌다"면서도 "일상을 소재로 다룰 경우 그것으로만 그치거나 공감을 얻기보단 배설에 가까운 감정 과잉이 늘어난 지점은 걱정스럽다"고 했다.


2026 한국일보 신춘문예 당선작은 내년 1월 1일 지면에 발표된다.

권영은 기자 you@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