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25 1차대전 크리스마스의 낭만?
1914년 12월 24일 크리스마스이브, 1차대전 벨기에 이프르(Ypres) 인근 독일군 참호 곳곳에서 캐럴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이 흘러나왔다. 100m 안팎, 짧게는 수류탄 사정거리를 간신히 벗어난 거리를 두고 참호 속에서 대치하던 프랑스-영국군 일부가 그 합창에 동참했다. 그렇게 밤을 지새운 양측 군인들은 다음 날 아침 참호에서 나와 무인지대에서 만났고 담배와 술, 배지 등을 교환한 뒤 방치돼 있던 전우들의 시신을 수습했다. 일부 지역에서는 축구 시합을 벌였다는 기록도 있다. 프랑스-벨기에 전선에 배치돼 있던 양측 군인 10만여 명이, 지역별 양상은 다양했지만, 그 비공식 휴전에 동참했다.
저 유명한 1차대전 ‘크리스마스의 기적’은 전쟁 초기여서 가능한 일이었다. 기동전(슐리펜 작전)으로 벨기에와 프랑스를 단숨에 점령한 독일군이 9월 ‘마른 전투’로 예봉이 꺾이면서 소모적인 참호전으로 막 전환된 상황이었다. 1차대전 파일럿들이 공중에서 적기와 조우하면 서로 눈인사를 했다는 것도 전쟁 초기, 그러니까 항공기에 기관총이 장착되기 이전 이야기다. 정찰이 주 임무였던 당시의 파일럿들에겐 소위 기사도 정신과 스포츠맨 전통에 입각한 상호 존중의식이 있었다. 그 관행은 1915년 프랑스 조종사 롤랑 가로스(Roland Garros)의 기총 장착과 독일 안톤 포커(Anton Fokker)의 프로펠러 동조 기총 개발 이후 사라졌다.
낯선 땅 참호에서 추위를 견디며 비슷한 불안과 공포감에 사로잡혀 있던 서부전선 병사들에게도, 당시엔 인간적 동류의식을 압도할 만큼 강렬한 복수심과 적개심이 없었다. 교황 베네딕토 15세가 그해 12월 7일 교전 당사국에 크리스마스 휴전을 제안한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
1차대전 서부전선 '크리스마스 휴전'의 한 삽화로 알려진 저 사진은 한 해 뒤인 1915년 12월 25일 그리스 테살로니키 근처에서 촬영된 영국군들 모습이라고 한다. 위키피디아 |
1914년 12월 24일 크리스마스이브, 1차대전 벨기에 이프르(Ypres) 인근 독일군 참호 곳곳에서 캐럴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이 흘러나왔다. 100m 안팎, 짧게는 수류탄 사정거리를 간신히 벗어난 거리를 두고 참호 속에서 대치하던 프랑스-영국군 일부가 그 합창에 동참했다. 그렇게 밤을 지새운 양측 군인들은 다음 날 아침 참호에서 나와 무인지대에서 만났고 담배와 술, 배지 등을 교환한 뒤 방치돼 있던 전우들의 시신을 수습했다. 일부 지역에서는 축구 시합을 벌였다는 기록도 있다. 프랑스-벨기에 전선에 배치돼 있던 양측 군인 10만여 명이, 지역별 양상은 다양했지만, 그 비공식 휴전에 동참했다.
저 유명한 1차대전 ‘크리스마스의 기적’은 전쟁 초기여서 가능한 일이었다. 기동전(슐리펜 작전)으로 벨기에와 프랑스를 단숨에 점령한 독일군이 9월 ‘마른 전투’로 예봉이 꺾이면서 소모적인 참호전으로 막 전환된 상황이었다. 1차대전 파일럿들이 공중에서 적기와 조우하면 서로 눈인사를 했다는 것도 전쟁 초기, 그러니까 항공기에 기관총이 장착되기 이전 이야기다. 정찰이 주 임무였던 당시의 파일럿들에겐 소위 기사도 정신과 스포츠맨 전통에 입각한 상호 존중의식이 있었다. 그 관행은 1915년 프랑스 조종사 롤랑 가로스(Roland Garros)의 기총 장착과 독일 안톤 포커(Anton Fokker)의 프로펠러 동조 기총 개발 이후 사라졌다.
낯선 땅 참호에서 추위를 견디며 비슷한 불안과 공포감에 사로잡혀 있던 서부전선 병사들에게도, 당시엔 인간적 동류의식을 압도할 만큼 강렬한 복수심과 적개심이 없었다. 교황 베네딕토 15세가 그해 12월 7일 교전 당사국에 크리스마스 휴전을 제안한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
그 ‘낭만’ 역시 전장의 인류애에 위기감을 느낀 양측 군수뇌부의 엄격한 통제가 시작되면서, 또 1915년 4월 독일군의 화학무기(염소가스)가 등장하면서 끝이 났다.
최윤필 기자 proose@hankookilbo.com
최윤필 기자 proose@hankookilbo.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