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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재의 사람사진] '발사진가'라 불리는 마동욱

중앙일보 권혁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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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재의 사람사진] '발사진가'라 불리는 마동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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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은 그냥 오지 않았다



권혁재의 사람 사진/ 마동욱 사진작가

권혁재의 사람 사진/ 마동욱 사진작가



“마동욱 사진가를 일컫는 말들은 무수합니다.

돈키호테, 오지랖쟁이, 사라지는 것을 기록하는 사람, 다큐멘터리 사진가,

마을 사진가, 발사진가, 사진하는 사람 등입니다.

개중 ‘발사진가’는 그의 친구인 박진화 화백이 붙인 최고의 찬사입니다.

일생 발로 뛰며 마을과 사람을 카메라에 담았기에 이리 칭찬하는 겁니다.


이렇듯 그의 카메라는 엄지발가락이 가리키는 대상을 향해있습니다.

그 대상들, 하나같이 그의 이웃이자 우리의 이웃입니다.

이웃의 삶은 스무 차례 이상 전시와 열일곱 권의 사진집에 담겼습니다.”


그간 마동욱 작가가 낸 책. 이 모두 마을과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긴 책이다.

그간 마동욱 작가가 낸 책. 이 모두 마을과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긴 책이다.



이는 마동욱 사진가를 사람 사진으로 추천한 이의 추천서 일부다.

1992년 장흥문화원에서 ‘내가 돌아본 고향 마을 사진전’,

1997년 사진집 『아! 물에 잠길 내 고향』으로 비롯된 마을 사진,


사실 스무 차례 전시와 열일곱 권 사진집을 낸 건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이웃 사람을 기록한 다큐멘터리 사진이 팔리는 일은 드물며,

책 또한 베스트셀러 되기가 하늘의 별 따기니 말이다.

사라지는 마을 또한 마 작가의 사진 속에 고스란히 남아 역사가 된다.

사라지는 마을 또한 마 작가의 사진 속에 고스란히 남아 역사가 된다.



그렇다면 이런 상황에서도 그는 왜 지금껏 줄기차게 마을을 찍을까?

“사실 마을 사진을 찍었던 가장 큰 동기는 우리 가정사에서 왔습니다.

큰 형님이 남부럽지 않던 우리 집안 살림을 다 말아먹었습니다.

그 바람에 빚도 지고 부모님이 얼굴을 못 들고 다닐 만큼 돼버린 거죠.

내가 소방 공무원을 하며 그 빚을 갚는데 어느 정도 보탰지만,

부모님이 고개를 못 들고 사는 한이 내게도 한이 되었습니다.

어쩌면 부모님 한풀이가 마을 사진이었습니다.

제 사진 덕에 부모님 한이 풀렸으니까요.”

부모님의 한, 그것이 그토록 그가 사진을 찍고, 나누고, 베푸는 이유였다.

그가 찍은 사진으로 더는 고개를 숙이지 않아도 되는 부모가 됐다.

그런데도 그는 최근 책을 냈고, 이내 또 책이 나올 것이라고 했다.

그가 '발사진가'라 불리는 이유는 걷고 또 걸어 이웃으로, 마을로 다가가기 때문이다.

그가 '발사진가'라 불리는 이유는 걷고 또 걸어 이웃으로, 마을로 다가가기 때문이다.



빚 갚음을 하고도 남았을 터인데도 그는 대체 왜 또 책을 준비할까?

“그 책 또한 기록입니다. 그 책을 안 내면 기록이 묻히니까요”가 이유였다.

결국 기록을 위해 사진가 마동욱의 발가락은 이웃 마을로 향해 있는 게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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