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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와 '규제 FTA' 시도해야" "AI 예산 2~3개월 맞춰 수정"···국회 '미래통'의 제안

서울경제 진동영 기자,이승령 기자,사진=오승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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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와 '규제 FTA' 시도해야" "AI 예산 2~3개월 맞춰 수정"···국회 '미래통'의 제안

속보
'정보통신망법 개정안' 국회 본회의 통과
[일하는 국회 '프로셈블리']
'정치9단'보다 '정책1단' 국회로
<1>차지호·이준석 의원 미래 국회 제언
李-1년 짜리 예산책정으론 속도 못 따라가
일부라도 '쿼터 단위' 실험적 집행 필요
과학문해력 떨어지는 국회 수준 높여야
분야별 '규제기준 국가제' 도입 검토를
車-AI분야 석달이면 새 생태계 만들어져
빠르고 유연한 애자일 거버넌스 필요
국회에 '진짜 과기 전문가' 너무 적어
피어 리뷰 같은 전문성 검증제 도입을

국회 본회의 통과가 유력한 이른바 ‘닥터나우법(약사법 개정안)’을 두고 벤처 업계가 “혁신 기업의 시도를 막고 해외 기업들에 시장을 내주겠다는 것”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이 법은 비대면 진료 플랫폼 사업자의 의약품 도매업 운영을 금지하는 내용이다. 국회가 고도화된 신산업에 대한 지원 의지보다 기득권 단체의 주장에 힘을 실은 ‘안전한 길’을 택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다른 한편에서는 반도체 업계를 지원하겠다며 낸 반도체특별법이 업계의 핵심 요구였던 주52시간 근무제 예외 요청을 빼고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글로벌 경쟁 기업들이 밤낮없이 공장을 가동하고 있는데 우리만 현실을 고려 않은 규제에 밀려 도태되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하지만 정치권은 노동계 반발을 우려하면서 ‘반쪽짜리’ 지원 법안을 내놓고 생색에만 집중했다. 업계 관계자는 “새로운 시도가 국회에서 번번이 차단되면서 혁신 의지를 멈춰 세우고 있다”고 꼬집었다.
전 세계가 첨단 혁신 기술·산업의 주도권을 두고 경쟁하는 ‘대전환의 시대’에 산업 육성의 핵심 키를 쥔 국회가 ‘프로셈블리(Prossembly)’로 전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이유다. 프로셈블리는 전문가(Professional)와 국회(Assembly)의 조어다. 신년에 우리 경제의 회복과 도약을 뒷받침하기 위해 전문성을 가진 의원들이 전면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는다.
현재 국회는 정파적 이익과 연계된 정쟁에 함몰되면서 의원 개개인의 역량도 함량 미달이라는 쓴소리가 나온다. 한국인터넷기업협회의 백서에 따르면 21대 국회에 발의된 인터넷 산업 관련 입법 평가 점수는 평균 25.3점(100점 만점)에 그쳤다. 법안 하나하나가 업계나 개별 기업의 운명을 좌지우지할 파괴력을 갖췄지만 관련 산업·기술에 대한 이해도가 매우 낮다는 의미다. 입법안에 대해서도 각 기업들은 용어 정의 31.8점, 산업 기술·이해도 23.7점 등 낙제점을 매겼다.
이재묵 한국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시대 변화가 극심한 만큼 ‘정치 9단’보다는 ‘정책 1단’이 더 귀중하다”며 “정치인들의 인식 전환이 요구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민생은 구호가 아닌 실력에서 나온다”며 “새해에는 정당의 거수기가 아닌 특정 분야의 권위자가 일반 국민이 바라는 의원상이 아닐까 싶다”고 강조했다. 이에 서울경제신문은 ‘일하는 국회, 프로셈블리’ 연중 기획을 통해 정책적 역량을 갖춘 의원들의 목소리를 전한다.




국회의 대표적 ‘미래통’인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와 차지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신년 입법부가 환골탈태해야 한다”고 한목소리로 말했다. 두 의원은 이날 국회에서 진행한 대담에서 “전문성 부족 등으로 시대를 예측·준비하고 예산을 심의·확정하는 입법부의 역할 자체가 흔들리고 있다”면서 “시스템 변화를 모색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대표는 특히 “미래 대응 차원에서 과학기술 분야의 경우 3개월 단위의 예산 운영을 시도해보자”고 제안했다. 차 의원은 “국회 내 ‘진짜 전문가’ 그룹을 늘려야 한다”며 “‘피어 리뷰(같은 분야 전문가가 심층적으로 검증하는 절차)’를 통한 고강도 전문성 검증 제도를 두자”고 했다. 특히 신산업의 발목을 잡는 ‘킬러 규제’에 대해서는 과감히 메스를 들이대야 한다는 점에도 공통된 입장을 보였다. 사회=이상훈 정치부장

-인공지능(AI) 문명이 우리 사회를 덮쳤다. 국회 역할은.

△이=국회가 전체적으로 운영 방식을 바꿔야 한다.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같은 경우 방송·통신이 결합돼 있지만 산업적 측면에서 접근하지 못하고 방송 편향성 심의만 2년째 하고 있다. 칸막이를 없애려는 노력도 있어야 하지만 같이 있으면 안 되는 것들을 떼어놓는 움직임도 있어야 한다.

△차=산업혁명이 80년 정도의 사이클로 이뤄졌다면 AI로 인한 전환은 15년 정도에 이뤄질 것이다. 현재 입법부는 하나하나의 개선보다 전체 구조에 대한 새로운 시도를 해야 한다. 대전환기를 미리 예측해 준비해야 한다. 그런 기능들을 어떻게 담아낼지가 이번 국회의 시대적 과제다.

-정책 공학이 아니라 정치 공학의 국회라는 냉소가 적지 않다.△이=냉정하게 말하겠다. 지금 국회는 선거가 우선이 되다 보니 과학·산업 등 주제를 다룰 리터러시(문해력)가 부족한 분들이 많다. 인적 전환도 중요하지만 각 당에서 의원의 역량에 대한 기준을 높여야 한다.


△차=상대적으로 과학·기술 관련 전문성을 가진 그룹이 너무 적다. 국회를 둘러싼 전문가 그룹의 질이 높지 않은 것도 문제다. 국회 공청회 등에 참여하는 전문가 중 극히 일부만 전문가다. 그런 질 낮은 전문가들이 국회에 많아지는 건 피어 리뷰 시스템이 없는 탓이다. 입법을 할 때 기술이 어떤 식으로 사회를 전환시킬지에 대한 최소한의 예측을 가지고 움직여야 되는데 인사이트를 제공하는 그룹이 없다.



-신산업 규제를 없애면 한국이 우위로 올라설 수 있을까.

△이=국제적 분업 상황 속에서 규제 기준이 다르다는 것 자체가 새로운 도입의 장애가 되기도, 한편으로는 퍼스트 마켓을 유도하기도 한다. 미국에서 어떤 제품을 만들었지만 미국이 아닌 한국이 선제적인 시장이 될 수 있다. 그런 가능성을 잊으면 안 된다. 예를 들어 미국 보스턴에 있는 의료 스타트업 중에서는 한국의 임상 환경이 너무 잘돼 있다는 이유로 임상시험을 한국에서 하고 싶어 하는 기업이 굉장히 많다. 식품의약품안전처(MFDS·옛 KFDA)를 비롯한 국내 기관의 심사 결과가 미국에서는 통용되지 않아서 못하는 것일 뿐이다. 임상을 위한 환경은 한국이 더 좋다고 한다. 이런 점을 우리가 백분 활용하려면 먼저 규제의 문을 열어놓을 필요가 있다.


예산에 대한 거버넌스도 한번 짚어봐야 한다. 과방위에 2년 동안 있어 보니 1년 뒤의 미래를 예측해서 1년짜리 예산을 짜는 것 자체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국가의 일부 예산만이라도 실험적으로 쿼터 단위로 운영하는 방식을 시도할 필요가 있다. 기업이라면 그렇게 할 거다. 상당한 규모의 예비비를 두고 재빨리 대응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런 것을 비정기적인 추가경정예산에만 의존해서는 안 된다. 과학기술에 대한 대응에서는 이런 계획의 단계를 6개월 또는 3개월 단위로 일부 예산만이라도 운영해보는 게 나쁘지 않을 것이다. 첨단기술의 영역에서 어떻게 1년 뒤를 예측하겠나.

△차=예산 관련 거버넌스는 두 가지가 다 필요하다. 하나는 중장기 예측과 전략 기능, 예산 기능의 통합이다. AI·인구·기후 이런 우리 사회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문제들에 대해서는 중장기 예측들이 굉장히 중요하다.


우리 정부에서는 기획재정부가 둘로 나뉘면서 재정·경제 쪽과 기획·예산 쪽이 분리됐다. 기획·예산 안에 중장기적 예측과 기획 기능이 있는데 이게 보다 더 강화될 필요성이 있다. 중장기적인 예산 사이클을 갖고 그 안에서 올해 예산들이 어디에, 어느 파트에 집중돼야 할지를 결정하는 게 중요하다.

애자일(agile·빠르고 유연한) 거버넌스도 중요하다. 중장기적인 예측에 의해 매년 예산이 전략적으로 배치된다면 다른 한쪽으로는 1년 예산 안에서도 예산의 쓰임이 매달 달라질 수 있다. AI 분야는 약 2~3개월이면 다른 생태계가 형성되는데 이에 맞춰 예산 계획을 수정해나가야 한다.



-‘킬러 규제’를 딱 하나 없앤다면.

△이=규제를 확 열어주는 게 중요하다. 지난해로 돌아가 보면 그래픽처리장치(GPU)가 없다는 점이 국내 AI 모델들이 뒤처지는 이유로 지적됐다. 그래서 GPU 확보 경쟁에만 몰두했는데 GPU를 확보한 후에는 어떤 변명을 할 것인가. 차 의원이 지적한 전문가 집단에 대한 피어 리뷰와 검증 필요성에 공감한다. 미래를 바라본다면 투자 방향성도 달라져야 한다. AI 모델 역시 전혀 다른 지점에서 새로운 먹거리가 나올 수 있다는 인식이 필요하다. 지금은 그런 관점이 매우 부족하다.

△차=20세기와 비교했을 때 10년의 변화가 지금은 1년에 나타난다. 규제라는 것이 지난해와 올해 상황이 다르다.

어떤 시대든 공공 영역에서 규제는 필요하지만 문제는 이전에 만들어진 규제의 기능들이 현재는 효과가 없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올해 만든 규제가 내년에 힘을 잃을 가능성도 높다. 규제의 사이클에 대한 근본적 변화를 요구받는 시점에 놓여져 있다. 유연하고 빨라야 한다.

-신년에 ‘1호 법안’으로 발의하고 싶은 건.

△이=규제기준국가제가 필요하다. 분야별로 어떤 한 나라를 정하고 그 나라의 규제 현실에 맞추는 것이다. 실리콘밸리에서 할 수 있는 건 우리도 할 수 있게 하는 식이다. 우리의 상품이 바로 미국에 통용될 수 있느냐, 아니면 미국 서비스가 우리 서비스될 수 있느냐 하는 ‘규제 자유무역협정(FTA)’ 같은 것이다. 이를 통해 중복된 인증 비용이나 설계 차이로 인한 시차가 사라질 수 있다고 본다. ‘바이오 분야에서 일본이 할 수 있는 건 우리가 다 하겠다’ 또는 ‘자율주행은 중국에서 하는 정도의 규제는 우리가 똑같이 가져가겠다’ 이렇게 해야 업계가 명확히 알고 도전할 수 있다. 기업들이 정부에 ‘미국에는 이런 서비스 나왔더라, 우리도 규제를 개선해달라’고 요구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차=AI 기본사회를 위한 법안을 마련하고 있다. AI 자체에 대한 산업이나 기술 증진 관련 법이 아니라 AI가 우리 사회 전반의 전환을 가져왔을 때 필요한 기본법들을 설계해나가는 것이 시대적 요구다. 한국은 미래가 먼저 오는 나라다. 미래에 먼저 대응하는 법들이 만들어져야 된다. 한국에서 만들어진 법들이 일종의 레퍼런스 법이 될 가능성이 높다.

-한국이 ‘미래가 먼저 오는 나라’라고 했는데.

△차=해외에 있는 석학들과 주로 의논하면 그들이 가진 한국에 대한 기대가 그렇다. 사회적·정치적인 실험들이 한국에서 가장 먼저 만들어지고 다른 나라로 확산해야 하는 시기가 온 것 같다. 특히 미국이나 유럽 같은 선진 국가들이 예전만큼 국제적 리더십들을 확보하지 못한 상태에서 한국이 이런 부분들에 대해 먼저 레퍼런스 모델들을 만들어나가야 한다.



-이재명 정부에 정책 제안을 하다면.

△이=이재명 대통령이 ‘국뽕’ 마케팅에 취해 있다. AI 모델 측면에서도 이 대통령은 ‘소버린 AI(주권 AI)’에 경도돼 있다. 소버린 AI는 국제적으로 보편화된, 예를 들어 오픈 소스화된 AI 모델보다 나은 것을 만들어야 가치 있는 것이다. 어떤 모델을 사용할지는 누구나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거다. 과거 스마트폰을 소버린화(化)해서 제품을 만들려고 했던 시도를 보자. 삼성이 국제시장에 통용되는 수준까지 가기 위해선 결국 구글 안드로이드 플랫폼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자원 투자와 관련한 선택을 할 때는 국가적으로는 ‘되는가’ 그리고 ‘나머지와 속도를 맞출 수 있는가’가 중요하다. 이재명 정부의 성향으로 봤을 때는 ‘소버린’ ‘국산화’ 같은 쪽으로 갈 가능성이 높아 보이는데 이를 경계해야 한다. 이재명 정부는 아이폰 도입을 막으려 했을 때처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또 이 대통령이 최근 만기친람식으로 나서고 있는데 ‘전문가의 함정’을 조심해야 한다. 이 대통령이 지금 보여야 할 건 통찰력이다. 그런데 굉장히 구체적인 얘기를 하고 있다. 그 구체적인 내용들을 전부 자기 학습으로 얻지는 않았을 것이다. 보좌하는 사람들의 판단을 바탕으로 얘기하는 것일 텐데 그게 위험할 수 있다.

정부가 하기 어려운 것들을 조금씩 내려놓아야 한다. 지금은 대통령 임기 1년 차니까 향후 바뀔 수 있겠지만 지금처럼 ‘전지전능자’의 위치로 가면 AI 사회에서는 대응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가 있다.

△차=국경을 넘어선 글로벌 전략이 필요하다. 예전에는 현안들이 닥쳐온 뒤 거버넌스를 만들고 규제를 만들었다면 지금은 변화를 적어도 5년 정도는 중장기적으로 예측하고 향후 정책을 설계하는 ‘예측 기반의 거버넌스’가 필수다. 예전에 글로벌 위기나 인도주의 관련 활동할 때 가졌던 원칙 중 하나가 애디드 밸류(added value·추가적인 가치 부여)다. 내가 그 일을 함으로써 사회에 도움이 되는 것이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 등에서 교수로 일하면서 AI나 미래 등 영역에서 적어도 몇 년의 앞을 보게 됐다. 제가 본 미래는 굉장히 시급하고 전체적인, 근본적인 시스템 변화들을 예고하고 있다.



진동영 기자 jin@sedaily.com이승령 기자 yigija94@sedaily.com사진=오승현 기자 story@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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