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종훈 정책사회부 기자 |
이씨 같은 이들이 특별하지 않은 세상이 됐다. 전 세계가 온라인으로 이어진 초연결사회라지만, 오히려 오프라인의 고독은 깊어진다. 세계보건기구(WHO)가 외로움을 공중 보건 문제로 선언할 정도다.
관계빈곤의 동굴은 특히 한국인들이 더 깊이 팠다. ‘도움이 필요할 때 의지할 사람이 없다’는 비율이 20%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높다. 스스로 세상을 등지는 이들의 비율도 역시 1위다. 경제적 빈곤은 줄었지만, 마음의 빈곤은 커졌다는 의미다.
서울 집에 혼자 앉아있는 독거노인 김옥순씨. 가족이 없는 그는 안부 확인 같은 일상적 소통이 절실하다고 했다. 김종호 기자 |
관계빈곤 고위험층으로 ‘은퇴→이혼→관계단절’ 공식을 밟는 4060 남성, 대화 상대를 찾기 어려운 독거노인, 인공지능(AI)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청년 등이 꼽힌다. 이들은 “죽지 못해 산다”고 말할 정도다.
하지만 취재 과정서 만난 이들은 세대·계층을 떠나 ‘평범한’ 관계빈곤이 적지 않았다. 옆집 이웃과 인사조차 안 하거나 피하는 경우가 많다. 학원가에서 마주친 고교생은 평소 가족들끼리 대면으로 말하는 일이 거의 없다고 했다. 대신 카카오톡 단톡방을 활용한다. 관계빈곤 취재팀에도 “(기사 내용이) 남 일이 아니라 내 일 같다”는 반응이 여럿 돌아왔다.
이대로 외로움과 고립이 더 커지면 우울증 등 정신건강 문제로 이어지고, 사회적 재난이 될 수 있다. 정부가 자살과 사회적 고립 대응에 나섰지만, 속도는 느린 편이다. 지자체들도 최근에야 외로움·고독사 관련 사업에 기지개를 켜는 식이다. 전문가들은 ‘결과’인 고독사·자살 수치에 매달리기보다 전 단계인 관계빈곤에 놓인 ‘이유’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관계빈곤의 동굴에서 빠져나오는 건 사실 작은 관심에서 시작된다. 안부를 살펴주는 hy 프레시 매니저(방문판매원)를 만난 80대 독거노인은 “찾아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 감사하다”고 했다. 60대 김모씨는 사회적 고립 상태였지만, 사회복지관 프로그램을 접한 뒤 자연스레 사람들과 어울리게 됐다. 그는 “누군가 관심을 주고, 집 밖으로 나오게만 하면 고립 가구도 달라질 수 있다”고 강조한다.
세계 최초로 외로움부 장관을 임명한 영국은 외로운 이들에게 약 대신 합창단, 정원 가꾸기 모임 같은 관계망을 제시한다. 이른바 사회적 처방이다. 거창한 대책보다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일상적 대책이 더 효과적인 걸 보여준다. 한국도 사회적 처방을 더는 미룰 수 없다. 소소한 정책, 관심부터 시작할 때다.
정종훈 정책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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