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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운4구역’ 논란이 드러낸 도시계획의 민낯…지자체장 재량권은 어디까지인가[정준호의 부동산과 사회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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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운4구역’ 논란이 드러낸 도시계획의 민낯…지자체장 재량권은 어디까지인가[정준호의 부동산과 사회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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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묘 맞은편 세운재정비촉진지구 4구역을 둘러싸고 초고층 개발 논란이 격화되고 있다. 서울시는 이곳에 최대 약 142m 높이의 건축을 허용하는 재개발안을 제시했고, 이에 대해 종묘 경관 훼손과 세운상가 일대 산업·상업 생태계 붕괴를 우려하는 반론이 거세다. 이 논쟁은 단순한 개발 찬성과 반대를 넘어, 서울 도심에서 건축 높이와 용적률이 어떤 기준으로 결정됐는지를 다시 묻게 한다.

세운4구역의 고도 제한은 서울시장 교체에 따라 크게 변화해 왔다. 이명박 시장과 오세훈 1기 시정 시기에 종묘 인근에 최대 122.3m의 고층 개발이 추진됐으나 경관 훼손 우려로 무산됐다. 참고로 세운상가의 높이는 55m이고, 그 당시 종묘 인근 부지의 고도 제한은 90m였다. 박원순 시장 시기에는 최고 높이를 약 72m로 제한한 계획이 2014년에 확정되어 재개발 인허가가 진행됐다. 그러나 오세훈 시장의 재취임 후 ‘녹지생태도심 재창조’ 구상에 따라 그 계획은 다시 수정돼 현재는 약 142m에 이르는 초고층 개발안이 제시된 상태다.

이 같은 변화는 세운4구역만의 문제가 아니다. 서울 사대문 안 도심의 고도 제한은 2000년 90m에서 110m로 상향됐다가 2015년 다시 90m로 낮아진 뒤, 2023년 ‘서울도심 기본계획’을 통해 110m+‘α’로 상향 조정됐다. 여기서 ‘+α’는 더 예외가 아니라 협상을 전제로 한 기준선에 가깝다. 가령, 개방형 녹지 조성, 도심 내 주거용도 도입, 저층부 개방, 도시경제 활성화 용도 등 다양한 공공기여 인센티브가 적용되면, 600%에서 출발한 도심 일반상업지역의 용적률이 1500%까지, 90m에서 시작한 높이는 200m까지 확대될 수도 있다. 또한, 사대문 안 도시정비형 재개발의 용적률 상한은 2025년 9월 조례 개정을 통해 800%에서 880%로 올라가 있다. 이처럼, 과거에는 넘기 어려운 상한이었던 90m와 600~800%의 높이와 용적률이, 이제는 110m+α와 880%로 조정되며 협상을 전제로 한 출발선으로 성격이 달라졌다.

특히 종묘 일대처럼 역사적 공간에서는, 일반 기준을 넘어서는 밀도 완화가 허용되기 위해 그에 상응하는 더욱 엄격하고 명시적인 판단 기준이 전제돼야 한다. 그러나 ‘상징성’ ‘미래 성장’ ‘녹지축 조성’과 같은 수사적 표현만 반복되고, 왜 이러한 높이와 용적률이 이 입지에서만 정당화되는지에 대한 설명이 충분히 제시되지 않는다면, 이는 특수성을 반영한 재량으로 보기 어렵다. 재량권은 명확한 기준과 이유 제시를 전제로 한 선택의 자유이지만, 그 기준과 설명이 사라진 결정은 자의적 판단에 가깝다.

사실상 110m+α와 용적률 880%가 출발점처럼 작동해 공공기여나 기부채납의 규모와 효과가 투명하게 제시되지 않은 채 추가적인 밀도 상향이 허용되면, 용적률과 높이는 도시계획의 기준이 아니라 협상의 결과로 인식될 위험이 커진다. 재량이 기준 없이 누적되면 예외는 관행이 되고, 관행이 된 자의는 도시계획의 규칙 자체를 잠식할 수 있다. 이처럼 종묘와 세운상가 일대 재개발을 둘러싼 논란은 재량이 계획의 틀 안에서 작동하던 방식에서 점차 자의적 판단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하나의 징후로 읽힌다.

현재처럼 용적률과 높이가 국지적인 필지 단위 협상에 맡겨지고, 도시 전체의 인프라 수용 능력이나 광역적 밀도 관리와 충분히 연동되지 않는 구조에서는 자의성이 개입될 여지가 커질 수밖에 없다. 선의를 가진 지자체장이 있다면 일정 수준의 공공성이 확보될 가능성도 있지만, 그 반대의 상황 역시 배제할 수 없다. 이와 같이 도시계획이 개인의 판단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방식은 제도적으로도 지속 가능하지 않으며, 바람직하다고 보기도 어렵다.


종묘와 세운4구역을 둘러싼 논쟁은 특정 개발의 옳고 그름을 가르는 데에만 있지 않다. 그것은 재량이 어디까지 허용될 수 있는지, 그리고 그 재량이 언제부터 자의로 변질되는지를 묻는 시험대에 가깝다. 기준 없는 재량이 반복될수록, 개발의 공정성에 대한 신뢰는 흔들릴 수밖에 없다. 서울 도심 계획이 개별 협상의 산물이 아니라 공적 기준에 기초한 계획으로 남기 위해서는, 지금이 바로 재량의 경계를 다시 그어야 할 시점이다.

정준호 강원대 부동산학과 교수

정준호 강원대 부동산학과 교수

정준호 강원대 부동산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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