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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착같이 이자 장사?···"예금은 남의 돈, 이자 얹어 돌려줘야"

서울경제 심우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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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착같이 이자 장사?···"예금은 남의 돈, 이자 얹어 돌려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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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곡된 인식에 멍드는 금융]
韓은행의 특수성 '5가지'
②관치의 그늘···산업화 시대 역마진 구조에 성장 가로막혀
③IMF 후유증···좀비기업 늘고 안전한 부동산 대출에 집중
④건전성 규제···이익 못내면 위험자산 축소, 결국 대출 줄어
⑤투자자 압력···PBR 1배 안돼 수익개선 없인 자금조달 못해


이재명 대통령이 19일 금융위원회·금융감독원 업무보고에서 “금융에 공적 책임 의식이 충분한지 의문”이라며 “악착같이 하는 건 좋은데 그러다 보니 금융은 피도 눈물도 없는 자본주의의 최첨단 영역 같은 느낌을 준다”고 비판했다.

시장에서는 금융의 공적 기능이 필요하다고 보면서도 은행의 역할과 존재 이유를 부정하는 듯한 식의 접근은 맞지 않다는 얘기가 흘러나온다. 은행의 핵심 임무는 자금 중개다. 은행이 무너지면 한국 경제도 쓰러지게 된다. 은행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중요한 이유다. 은행 본연의 임무와 한국 은행만의 특수성 5가지를 알아본다.

국민에게 원리금 안전하게 돌려주는 게 의무

은행은 고객들로부터 예금을 받아 대출을 한다. 채권을 찍기도 하지만 조달의 66%(KB국민은행 3분기 기준)가 예수금이다. 돈이 남는 곳에서 이를 필요로 하는 곳에 대주는 자금 중개가 은행의 핵심 역할이다. 이 과정에서 예대마진으로 이익을 남긴다.

은행 입장에서 예금은 부채다. 정해진 만기에 원금과 이자를 더해 고객에게 돌려줘야 한다. 은행들이 대출이 나가자마자 건전성과 리스크 관리에 매달리는 이유다. 전직 금융지주 회장은 “대출로 나간 예금주의 돈을 잘 관리해서 되돌려 드려야 할 의무가 있다”며 “상대적으로 높은 금리로 고통받는 것도 국민이지만 예금주도 국민”이라고 지적했다.

내자 동원에 은행이 희생


1965년 9월 정부의 금리 현실화 조치로 시중은행의 1년 만기 정기예금 금리가 연 15%에서 30%로 무려 15%포인트 올랐다. 상업어음 할인을 통한 은행 대출금리는 14%에서 26%로 치솟았다. 급진적인 정책의 배경에는 내자 동원이 있다. 산업화에 필요한 투자 자금이 절실한데 저축이 부족하니 예금금리를 올려 돈을 끌어모으려고 했던 것이다. 실제로 1965년 저축성 예금은 306억 원에 불과했지만 1967년에는 1289억 원, 1972년에는 9115억 원까지 늘어난다.

이 과정에서 은행들은 역마진을 감수해야 했다. 한국은행이 지불 준비금에 3.5%의 이자를 주면서 어느 정도 보전을 해줬지만 국가 발전이라는 명분 아래 산업으로서의 발전 기회를 놓쳤다. 이 같은 관치금융은 1980~1990년대에도 강력하게 작동했다. 이용만 전 재무부 장관은 자신의 평전에서 "은행이 희생한 측면이 있다”고 회고했다.

외환위기·금융위기에 가계대출 확대


정부와 전문가들이 지적하는 부동산 대출 쏠림 현상은 외환위기를 떼 놓고 생각하기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당시 5대 은행이었던 ‘조·상·제·한·서’가 대기업 부실 여파로 합병하거나 매각됐다. 외환위기 이전만 해도 은행에서 가계대출을 받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였다.

우리은행의 전신인 한일은행과 상업은행만 해도 기업금융의 대표주자였다. 하지만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담보가 있고 안전한 부동산과 가계대출을 선호하게 됐다. 외환위기 직후인 1999년 6월 말 기준 우리은행(옛 한빛은행)의 부동산담보대출 잔액은 6조 5134억 원으로 전체의 30.3%였지만 올 6월 말에는 그 비중이 55.1%까지 상승했다. 최남진 원광대 경제금융학과 교수는 “1997년 외환위기와 2008년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정부가 건전성 주문을 굉장히 많이 했다”며 “그 결과 은행들이 안전한 주택담보대출에 집중하게 됐다”고 강조했다.

중요한 것은 신산업이 나오지 않고 기업 구조조정이 이뤄지지 않으면서 새롭게 대출할 곳조차 마땅치 않다는 점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국내 은행의 전체 신용공여액에서 한계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해 기준으로 15.1%에 달한다.


최소 명목성장률만큼 대출 늘어야

금융계에서는 은행의 수익이 줄어 건전성이 무너지면 실물경제에도 치명타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 많다. 경제에 계속 자금이 돌게 하고 성장률을 유지할 수 있게 하려면 대출이 최소한 명목 국내총생산(GDP) 성장률만큼은 늘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이 때 중요한 것이 자본비율이다. 전 세계적으로는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 비율이 통용된다. 당국은 보통주자본(CET1) 비율이 12%는 돼야 한다고 권고하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계속해서 은행이 이익을 내야 하고 성장해야만 한다. 은행권의 한 관계자는 “CET1 비율이 12% 선을 밑돌면 기본적으로 대출을 줄여 위험가중자산을 줄이는 쪽으로 대응한다”고 설명했다.

적정 수익 없인 증자 어려워져

지속적인 대출 확대를 위해서는 자본도 꾸준히 늘어야 한다. 하지만 은행의 수익이 낮으면 투자자들의 외면을 받을 수밖에 없다. 지금도 주요 국내 은행은 주가순자산비율(PBR)이 1배가 안 된다. 또 다른 전직 금융지주 회장은 “투자자들 입장에서 PBR이 낮고 수익도 적으면 빠져나가지 않겠느냐”며 “유상증자 같은 신규 자금 조달이 어려워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심우일 기자 vita@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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