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순영 AI미래포럼 공동의장·AWS 솔루션즈 아키텍트 매니저 |
지난 몇 년간 우리가 목격한 것이 기술의 진보였다면, 이제 시작되는 변화는 사회의 재설계다.
버너 보겔스 아마존 최고기술책임자(CTO)는 최근 AWS re:Invent 2025에서 "우리는 인공지능(AI)이 인간을 대체하는 시대로 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루프 안으로 들어온 AI의 시대로 이동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는 AI가 인간을 대신해 판단하는 존재가 아니라 인간의 판단과 책임 아래에서 작동하는 존재로 재정의되고 있음을 의미하며, 이 변화는 기술 경쟁의 문제를 넘어 우리가 어떤 사회와 산업 구조를 설계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진다. 우리는 흔히 이 흐름을 'AI가 인간을 대체하는 디스토피아'로 상상하지만 오히려 자율성, 공감, 그리고 개인의 전문성이 더 큰 가치를 갖는 방향으로 인간 중심의 역할 분담이 재정의되는 전환이 시작된다는 것이다.
가장 큰 변화는 AI의 역할 전환이다. 초고령사회에 접어든 한국에서 AI는 돌봄, 헬스케어, 홈 서비스 영역의 정서적·물리적 '동반자'가 될 것이다. 여기서 물리적 AI란 로봇이나 이동형 디바이스에 결합해 현실 공간에서 감지·이동·상호작용을 수행하는 AI를 뜻하며, 이러한 결합은 인간을 대체하는 방식이 아니라 인간이 감당할 수 있는 돌봄과 노동의 범위를 확장하는 인프라가 될 것이다.
산업과 조직 운영 방식 역시 근본적인 재편이 필요하다. 생성형 AI의 확산은 개발자와 지식노동자의 가치를 떨어뜨리지 않으며 오히려 '르네상스형 인재'의 중요성을 극대화한다. AI는 코드를 작성하고 자료를 요약할 수 있지만 무엇을 만들지, 어떤 품질과 안정성이 필요한지, 비용과 리스크를 어디까지 감내할지는 인간의 판단 영역이다. 즉 AI는 빠르게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지만 결국 무엇을 맡기고 무엇을 책임질지는 기술이 아니라 사람이 결정해야 한다. 문제는 많은 기업이 여전히 AI를 '툴 도입 과제'로만 접근하고 있다는 점이다.
2026년의 경쟁력은 AI 도입 여부가 아니라 AI에 무엇을 맡기고 무엇은 인간이 책임질지 설계하는 경영진의 선택에서 갈릴 것이며 지금 필요한 것은 의사결정 구조와 책임 체계의 재설계다.
교육과 인재 역시 같은 질문 앞에 서 있다. 학생 개개인의 속도와 관심사를 반영하는 AI 튜터는 교사를 대체하지 않고, 교사가 더 본질적인 역할에 집중하도록 돕는다. 하지만 여전히 교육정책과 평가 체계가 과거의 표준화된 학습과 평가 방식을 전제로 설계된다면 AI는 교육을 바꾸는 도구가 아니라 기존 구조를 보완하는 수단에 머물 수밖에 없다.
2026년 대한민국이 해결해야 할 과제는 기술 자체보다 그 기술을 설계하고 책임질 사람과 조직을 키우는 일이다. 결국 2026년 한국의 AI 경쟁력은 모델 성능이나 기술 속도에 있지 않다. AI를 인간 중심으로 재배치하고, 기술·비즈니스·사회 맥락을 함께 설계할 수 있는 르네상스형 인재를 얼마나 확보했는가에 달려 있다.
기업 경영진에게도 선택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AI 전략을 정보기술(IT) 부서의 과제로 남겨둘 것인가, 아니면 경영 의사결정의 중심으로 끌어올릴 것인가. 르네상스형 인재는 문제를 정의하고 맥락을 연결하며 AI를 조직의 일부로 작동하게 만드는 역할을 하며, 이 인재를 키우지 못한다면 기업은 더 많은 AI를 도입하더라도 경쟁력을 확보하기 어려울 것이다.
대한민국 AI의 미래는 기술 경쟁이 아니라 사람과 설계의 경쟁이며 AI는 이미 조직과 사회 안으로 들어왔다. 이제 남은 것은 이를 도입의 문제로 남길 것인지, 설계의 문제로 끌어올릴 것인지에 대한 선택이다.
우리는 AI와 일할 사회와 조직을 설계할 준비가 돼 있는가.
[오순영 AI미래포럼 공동의장·AWS 솔루션즈 아키텍트 매니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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