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동혁 국민의힘 대표가 23일 ‘내란전담재판부 설치법안’에 반대하는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을 통한 합법적 의사진행 방해)를 24시간 만에 마무리했다. 제1야당 대표가 필리버스터에 나선 건 헌정 사상 처음으로, 장 대표는 필리버스터 최장 기록도 갈아치웠다.
장 대표는 전날 오전 11시 40분부터 시작한 필리버스터를 이날 오전 11시 40분에 마쳤다. 더불어민주당은 국회법에 따라 필리버스터 개시 24시간이 지난 뒤 무기명 투표를 통해 필리버스터를 강제로 종결했다. 필리버스터를 24시간 이어간 사례는 장 대표가 헌정 사상 처음이다. 종전 최장 기록은 17시간 12분(박수민 국민의힘 의원)이었다.
장 대표가 토론을 끝내자 본회의장을 지키던 국민의힘 의원들은 모두 기립해 박수를 보냈다.
장 대표가 이날 오전 5시쯤 필리버스터 최장 기록을 경신하자, 국민의힘 의원석에선 박수가 터져 나왔다. 장 대표 측 관계자는 “장 대표의 필리버스터 시간은 전 세계적으로 봐도 장기간”이라고 했다. 미국 상원 최장 기록은 1957년 공민권법에 반대하며 24시간 18분을 발언한 스트롬 서몬드 전 의원이 세웠다. 장 대표 입장에선 24시간 강제 종결 제도 탓에 사실상의 세계 최고 기록 달성을 18분 앞두고 토론을 끝낸 셈이다.
장 대표는 필리버스터 내내 내란전담재판부 설치가 사법부 독립을 훼손하고 야당 탄압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우려했다. 장 대표는 “(내란전담재판부는) 계엄을 내란으로 단정하고 결론을 꿰맞추기 위해 재판부를 입맛대로 골라 사건을 특정 재판부에 맡기겠다는 것”이라며 “법에 따라서 사법부를 장악하고 법에 의해서 국민의 삶을 파괴하고 법에 의해서 국민 인권을 짓밟는다면 그것이야말로 소리 없는 계엄”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법안이 통과되면 이재명 대통령이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해서 대통령으로서 헌법수호의 의지가 있다는 것을 드러내야 한다”고 말했다. 장 대표는 법원에서 15년 이상 재직한 부장판사 출신이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가 22일 국회 본회의에서 12·3 윤석열 비상계엄 등에 대한 전담재판부 설치 및 제보자 보호 등에 관한 특별법안(대안)에 대한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를 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
“위헌성을 최소화했다”는 민주당 주장도 반박했다. 장 대표는 “대놓고 앞문으로 들어가려다가 슬그머니 창문으로 기어들어간다고 해도 위헌이 합헌이 되지는 않는다”며 “똥을 물에 풀어도 된장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외부 인사가 참여하는 ‘내란재판부 추천위원회’를 없애고 서울중앙지법과 서울고법의 판사회의가 재판부 구성 기준을 마련하도록 하는 등 위헌 소지를 최대한 줄였다는 입장이다.
1957년 공민권법에 반대하며 24시간 18분 동안 필리버스터에 나섰던 스트롬 서몬드 전 미국 상원의원. 연합뉴스 |
국민의힘 의원들은 밤샘 토론에 나선 장 대표를 지원사격했다. 송언석 원내대표는 이날 오전 8시 의원들에게 “장 대표의 무제한 토론이 20시간 넘게 이어지고 있다”며 “경내외에 계시는 의원님들께서는 지금 즉시 본회의장으로 입장해서 장 대표에게 아낌없는 격려를 바란다”고 했다. 공지 직전 15명 안팎이던 본회의장 내 국민의힘 의원 수는 이후 25명 안팎으로 늘었다. 본회의장에 있던 국민의힘 의원들은 장 대표가 중간중간 말을 멈출 때마다 “화이팅” “힘내세요” 등 발언으로 응원에 나섰다.
강명구 국민의힘 의원은 이날 페이스북에 “홀로 마운드 위에 서서 9이닝을 지켜내는 에이스 선발투수의 고독함과 책임감을 보는 듯하다”며 “내가 장동혁이고, 우리가 장동혁”이라고 썼다. 친한계로 분류되는 김근식 전 국민의힘 비전전략실장도 SBS 라디오에서 “주말에 한 전 대표가 토크 콘서트를 하는 사이, 장 대표는 24시간 동안 필리버스터를 했다”며 “단식 투쟁의 효과를 낸 것으로 볼 만큼 굉장히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다만 친한계인 박정하 의원은 MBC 라디오에서 “어젯밤 늦게까지 본회의장에 있었는데 고생하고 안쓰럽고 수고한다는 마음은 든다”면서도 “(장) 대표가 3~4시간 정도 굵직하게 얘기하고 차라리 다른 일을 좀 더 고민하면 더 좋지 않았을까”라고 말했다.
김병주 민주당 3대특검 종합대응특위 위원장이 지난 8월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특위 전체회의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
민주당에선 장 대표의 필리버스터를 비판했다. 윤종군 민주당 의원은 페이스북에 “당신이 얘기하는 그 어떤 불신과 불만의 말들도 윤석열이 행한 악행에 손톱만큼도 미치지 못한다”며 “윤석열과의 단절, 내란 사죄 반성이 모든 것의 출발”이라고 적었다. 국무위원석에서 장 대표의 필리버스터를 끝까지 들은 정성호 법무부 장관도 페이스북에 “누구를 탓하기에 앞서 스스로를 돌아보며 어떤 게 국민을 위한 정치인지, 의회민주주의가 무엇인지 성찰해 보았으면 하는 허망한 기대를 해본다”고 썼다.
김병주 민주당 의원은 장 대표의 필리버스터가 시작 후 23시간을 넘겼을 무렵 우원식 국회의장에게 다가가 “(법안) 찬성토론도 국민에게 들을 기회를 줘야 한다”고 항의했다. 하지만 우 의장은 “토론 시간은 무제한”이라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국민의힘 의원들이 김 의원에게 “유튜브 쇼츠를 찍으려고 하나”라며 거세게 항의하자, 김 의원은 “(필리버스터) 내용이 가짜”라며 고성이 오가기도 했다.
박준규 기자 park.junkyu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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