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로 건너뛰기
검색
헤럴드경제 언론사 이미지

[데스크칼럼] 스테이블코인, 기회 앞에 선 한국

헤럴드경제 이정환
원문보기

[데스크칼럼] 스테이블코인, 기회 앞에 선 한국

서울맑음 / -3.9 °

글로벌 디지털 자산의 파고 속에서 스테이블코인은 이미 실험 단계를 넘어 일상 금융의 영역으로 진입했다. 달러에 연동된 USDT와 USDC는 글로벌 결제와 송금, 디파이(DeFi)의 ‘혈관’ 역할을 하고 있고, 각국 정부 역시 스테이블코인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현실로 받아들이고 있다.

문제는 우리다. 세계 최고 수준의 IT 인프라와 금융 소비자 저변을 갖췄음에도 스테이블코인 논의는 늘 ‘안개 속을 걷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미국의 정책은 명확하다. ‘규제 속 허용’이라는 실용 노선이다. 연방 차원의 스테이블코인 법제화 논의가 본격화됐고, 준비자산 100% 보유, 발행 주체의 책임 명확화 등 ‘명분과 실리’를 동시에 챙기려 한다. 덕분에 달러 스테이블코인은 사실상 ‘디지털 기축통화’로 자리 잡았다. 이같은 미국의 전략은 단순하다. ‘통제하되, 시장을 키운다’는 것이다.

유럽연합(EU)은 미카(MiCA) 규제를 통해 스테이블코인을 제도권에 편입시켰다. 엄격하지만 예측 가능하다. 발행 요건, 공시, 이용자 보호가 촘촘하다. 혁신 속도는 다소 느릴 수 있으나 제도적 안정성은 확보했다. 이는 완급조절(緩急調節)의 전형이다. 시장에 ‘하지 말라’가 아니라 ‘이렇게 하라’고 말한다.

일본은 더 적극적이다. 은행·신탁회사 중심의 엔화 스테이블코인을 허용했고, 실제 발행과 실증이 이어지고 있다. 엔화 국제화라는 국가 전략과 맞닿아 있다. 싱가포르 역시 규제 샌드박스를 통해 민간 스테이블코인을 시험하며 아시아 금융 허브의 지위를 강화 중이다. 이들 국가는 공통적으로 선제대응을 택했다.

반면 우리의 스테이블코인 관련 정책들은 어떠한가. 원화 스테이블코인은 여전히 ‘검토 중’이다. 외환 관리, 통화 주권, 금융 안정성이라는 이유가 반복된다. 물론 이같은 우려는 타당하다. 그러나 문제는 방향성 부재다. 안 된다는 이유만 있고, 된다면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로드맵은 없다.


결과적으로 국내 이용자들은 해외 달러 스테이블코인으로 이동하고, 통화 주권은 오히려 외부로 유출된다.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우울 수도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디지털 자산 이용률 세계 최상위권이다. 결제·송금·투자 경험이 풍부한 소비자, 뛰어난 핀테크 기술, 은행 시스템까지 갖췄다. 그럼에도 제도만 멈춰 서 있다. 블록체인 육성을 외치지만, 핵심 인프라인 스테이블코인에서는 발을 빼고 있다.

이제 선택의 시간이다. 무작정 허용도, 무조건 봉쇄도 답이 아니다. 준비자산 규제, 발행 주체의 책임 강화, 사용처 제한 등으로 리스크를 관리하면서 단계적으로 허용해야 한다. 스테이블코인은 막을 대상이 아니라 설계할 대상이다.


글로벌 금융 질서는 이미 디지털로 재편 중이다. 우리가 계속 망설인다면, 미래의 결제와 금융 인프라는 남이 만든 규칙을 따르게 될 것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결단이다. 호시우보(虎視牛步)처럼 신중하되, 분명히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스테이블코인은 위기가 아니라, 선택의 문제다. 그리고 선택을 미루는 순간, 기회는 다른 나라의 몫이 된다.

이정환 금융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