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고성환 기자] 2025년 상대 전적 8전 8패, 이 정도면 악몽이나 다름없다. 다시 한번 안세영(23, 삼성생명)의 벽에 막힌 여자 단식 세계랭킹 2위 왕즈이(중국)이 눈물을 참지 못했다.
'세계랭킹 1위' 안세영은 21일(한국시간) 중국 항저우 올림픽스포츠센터에서 열린 세계배드민턴연맹(BWF) 월드투어 파이널스 2025 여자 단식 결승전에서 왕즈이를 게임스코어 2-1(21-13 18-21 21-10)로 제압하고 정상에 올랐다.
총 1시간 36분이 걸린 혈투였다. 안세영도 3세트 마지막 순간 매치 포인트를 눈앞에 두고 왼쪽 허벅지에 경련이 오기도 했지만, 투혼을 발휘해 올 시즌 11번째 우승을 획득했다. 이는 일본의 전설 모모타 겐토가 2019년 남자 단식에서 세운 단일 시즌 최다 우승 기록과 동률이다.
안세영은 올해 말레이시아 오픈을 시작으로 인도 오픈, 오를레앙 마스터스, 전영 오픈, 인도네시아 오픈, 일본 오픈, 중국 마스터스, 덴마크 오픈, 프랑스 오픈, 호주 오픈에서 차례로 우승하며 10관왕에 올랐다. 그리고 2025년 마지막 대회인 월드투어 파이널에서도 정상에 오르며 시즌 11승을 달성했다.
왕즈이와 맞대결은 결승전답게 쉽지만은 않았다. 1게임은 안세영의 흐름이었다. 그는 선취점을 내줬지만, 안정적인 수비와 정확한 공격 전개로 금세 주도권을 되찾았다. 인터벌 이후 더 격차를 벌린 안세영은 21-13으로 여유 있게 첫 게임을 가져왔다.
2게임은 달랐다. 코너에 몰린 왕즈이가 온 힘을 쏟아부으면서 초반부터 치고 나갔다. 안세영도 4-8로 끌려가다가 11-10으로 뒤집는 저력을 보여주기도 했지만, 연속 실점하며 먼저 게임 포인트를 내줬다. 결국 2게임은 왕즈이의 승리로 끝났다.
승부는 마지막 3게임에서 갈렸다. 안세영은 홈 코트의 이점을 안은 왕즈이를 상대로도 한 수 위의 집중력과 체력을 자랑하며 11-6로 휴식시간에 돌입했고, 연속 득점을 올리며 승기를 잡았다. 그는 20-10에서 허벅지 경력이 찾아오기도 했으나 14차례 랠리 끝에 마지막 포인트를 따내며 우승 트로피의 주인공이 됐다.
정말 모든 걸 쏟아냈지만, 이번에도 안세영을 넘지 못한 왕즈이다. 그는 지난해 월드투어 파이널 준결승에서 안세영을 떨어뜨린 뒤 우승한 강자다. 그러나 2025년엔 안세영을 8번 만나 8번 모두 패하며 고개를 떨궜다. 특히 8번 중 7번이 결승 무대였기에 더욱 아쉬움이 클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왕즈이는 매번 웃으며 안세영의 우승을 축하해줬고, 그에게 존경을 표했다. 하지만 이번 패배만큼은 너무나 쓰렸던 모양이다. 그는 먼저 시상식을 떠난 뒤 믹스트존에서 인터뷰 도중 눈물을 쏟고 말았다.
중국 '넷이즈'는 "왕즈이는 2025시즌 안세영을 상대로 8연패 징크스를 기록했다. 통산 상대 전적은 4승 16패다. 천적을 만난 왕즈이는 시상식에선 여전히 환한 미소를 지었지만, 인터뷰에선 눈물을 흘리며 통곡했다. 그는 3번째 게임에서 무너진 것에 대해 이야기하며 눈물을 참지 못했고, 등을 돌려 눈물을 닦았다. 잠시 쉰 뒤에야 겨우 마음을 추스르고 인터뷰를 진행했다"라고 전했다.
매체에 따르면 왕즈이는 "정말 너무 피곤했다. 3게임에서 열심히 싸우고 싶었지만, 체력과 에너지가 머리를 따라가지 못했다. 전체적인 템포가 떨어졌다. 안세영의 체력이 너무 좋았다. 긴 랠리에서 내 체력이 너무 많이 소모됐다. 나는 전략을 조금 바꾸려 최선을 다했지만, 그를 따라잡지 못했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또한 그는 "또 한 번 안세영에게 져서 정말 아쉽다. 하지만 나와 안세영 사이엔 체력과 디테일에서 차이가 있었다"라며 "홈에서 경기를 한다는 부담이 정말 컸다. 마지막 게임에서 체력이 부족했고, 운도 조금 아쉬웠다"라고 패배를 받아들였다.
이후 왕즈이는 BWF 공식 인터뷰에서 "내 전략은 성공한 부분도 있고, 긍정적인 부분도 있었다. 그러나 체력이 따라주지 않자 완전히 밀렸고, 안세영과 격차가 크게 벌어졌다. 그래도 올해는 내 기대를 뛰어넘는 한 해였다. 내년에도 최고 자리를 목표로 더욱 열심히 노력하겠다"라며 다음을 기약했다.
그는 '웨이보'를 통해서도 "2025년 국제 대회가 모두 막을 내렸다. 결승전에서 최고 시상대에 오르지 못해 아쉽지만, 홈그라운드의 열정적인 분위기 속에서 경기를 펼칠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소중한 경험이었다. 모두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여러분의 응원 소리를 모두 들었고, 기억하고 있다"라며 "앞으로도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며 계속해서 발전해 나가겠다. 내 여정은 멈추지 않을 거다. 다음 대회에서 다시 한번 최선을 다해 싸우겠다"라고 의지를 다졌다.
반대로 번번이 왕즈이를 무너뜨리며 역사에 길이 남을 한 해를 보낸 안세영이다. 그는 단일 시즌 11승이라는 대기록을 썼을 뿐만 아니라 이번 우승으로 상금 24만 달러(약 3억 5500만 원)를 획득했다. 그 결과 이번 시즌 상금 수입은 100만 달러(약 14억 8100만 원)를 넘겼다. 이 역시 배드민턴 역사상 최초의 업적이다.
단일 시즌 최고 승률 신기록도 새로 탄생했다. 안세영은 2025년 치른 77경기에서 73승 4패를 기록했다. 승률은 무려 94.80%에 달한다. 이 수치는 린단(2011년 92.75%), 리총웨이(2010년 92.75%)와 같은 중국의 전설들이 남긴 기록보다도 높다. 그럼에도 안세영은 "내가 완벽한 경기를 할 때가 내 전성기다. 아직 전성기는 오지 않았다"라며 여기서 만족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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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BWF, 대한배드민턴협회, 왕즈이 소셜 미디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