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호근 본사 칼럼니스트, 한림대 도헌학술원 원장·석좌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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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곤한 시절 따스한 연대의 추억
급속한 경제성장에 해체됐는데
정신적 허기증을 앓는 한국 사회
가죽 벗긴다는 개혁이 채워줄까
저 기억의 컷들은 1970년대 식(式)이다. 일인당 국민소득 대략 500달러 정도, 전세살이가 일반적이었고, 연탄 때는 온돌방에서 한 가족이 새우잠을 자던 때였다. 50년이 흐른 지금, 백열등은 근사한 거실등으로 바뀌었고, 자녀들은 난방이 따스한 자기 방에서 자며, 스마트폰에서 음악을 골라 홀로 듣는다. 20세기 기적으로 일컬어지는 한국의 경제성장이 빚어낸 부르주아 생활양식의 탄생이다.
단기간에 급조된 한국의 부르주아 세계에서 발원한 것이 이른바 K컬처다. 그 속에는 풍요와 궁핍의 정서가 묘하게 섞여 있는데, 세계인들이 열광하는 요소는 이 어정쩡한 교차의 매력일 것이다. 집주인을 경멸하지만 지하에 기식할 수밖에 없는 하층민의 어처구니없는 서사가 ‘기생충’이다. 서민 음식인 김밥과 떡볶이가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을 줄이야 짐작이라도 했을까. 치맥은 소고기 찌개와 막걸리로 잔칫상을 차렸던 궁핍한 기억의 진화다. ‘내일은 미쳐보자, 이 아파트로 와’. 밤새워 마시고 춤추자는 로제의 ‘아파트’는 물론 부모가 인생을 갈아 마련했거나 영끌한 아파트일 터, 그런들 상관없다. 데몬 헌터스의 ‘골든’도 기성세대에겐 그렇게 읽힌다. ‘숨는 건 끝이야, 우리의 시간이야, 두려움도 거짓도 없이’ 계속 업, 업! 하면 ‘나만의 자리를 찾는다’는 한국적 한(恨)의 절규다.
그런데, 업, 업하면 나만의 자리를 찾을 수 있을까, 이 급조된 부르주아 한국에서? 현실은 냉혹하다. 전체 가구의 35%가 나홀로 가구, 30대 70%가 미혼, 2030세대 30만 명이 취포자, 3명 중 하나가 번 아웃 상태란다. ‘골든’ 꿈을 배신하듯, 풍요한 사회가 ‘나만의 자리를 찾지 못’하도록 밀쳐 낸다. 성장은 일궜으나 패자와 경쟁 피로감을 위무할 정신적 자원이 고갈했다. 잊은 친구? SNS가 있는데 구태여 만나 상대적 박탈감을 되새길 필요가 있을까. 세상은 무한히 어렵고 인심은 각박해졌다.
일인당 국민소득 3만6000달러 시대, 기대 수준이 한없이 높아진 청년들은 더 나은 직장을 찾아 헤매고, 청소년들은 학원에 갇혀 살며, 동네 친구들과 골목을 쏘다니고 원정(遠程)을 모의하던 유년의 추억은 재현 불가능하다. 자녀의 시간 관리에 정신없는 부모 역시 ‘좋은 사회 만들기’라는 사회적 책무를 잊었다. 선진국이 이럴 거라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G10 선진국에서 유대와 연대의 원천이 사라졌다.
노동계급 문화사가인 영국의 톰슨(E P Thompson)은 골목에서 함께 놀았던 기억과 한방에서 생활했던 공동체 경험 속에 사회를 작동하는 연대감이 싹튼다고 말했다. 이것이 계급의식과 결합하면 적대감으로 변질하기는 한다. 중산층의 생활양식은 자가(自家)와 자기 방에서 서식한다. 개별화의 물질적 기반이다. 아파트의 전국 확산과 함께 중산층 이상 계층 성원 간 사회적 거리는 더 멀어졌다. 유럽에는 낯선 사람과 쟁점을 토론하는 시민교실이 일반화된 지 오래다. 한국에서 뭇사람들과 계급장 떼고 토론하는 자리는 없다. 결과는? 집단 양심의 고갈, 혹은 정신적 허기증의 증폭.
잘났든 못났든 모든 구성원이 소속감을 갖고 핵심 가치를 길러 나가는 사회가 선진국이다. 톨레랑스(프랑스), 도덕과 양심(독일), 자혜(영국) 같은 ‘마음의 습관’이 그런 것이다. 매사에 으름장을 놓는 정치권도 결국 복종해야 하는 최종 심급의 가치가 한국에서 발견되는가? 있다면, 과거를 뉘우치는 사람들에게 재기의 관용을 베풀 수 있을 것이고, 수백만 건의 인권 침해 다툼이 법원을 마비시키지도 않을 것이다. 눈부신 성장이 ‘후덕한 사회’를 만들 거라는 기대는 유독 한국에서 보기 좋게 빗나갔다. 여유롭기는커녕 초경쟁과 초격차 칸막이 사회에서 숨 돌릴 겨를이 없다.
지난 15일 이름도 근사한 ‘사회대개혁위원회’가 출범했다. 개혁(改革)이란 ‘가죽을 벗긴다’는 뜻임을 새삼 천명한 이재명 대통령의 의지를 실행하는 최상위 기구다. ‘광장 시민의 열망을 담아 새로운 길을 연다’고 했다. 극단 이념이 충돌하는 광장에서 이해와 관용의 시민 정신은 자취를 감췄다. 광장의 함성이 개별 시민의 공허와 고독을 달래주지 않는다. 오히려 텅 빈 사회를 응시하는 외로운 사람들을 말만 번드레한 정의의 골짜기로 몰아세우지는 않을까 우려가 앞선다. 그리하여 눈발이라도 날리면 조금은 위로가 될 것 같은 아, 홀로 맞는 세모.
송호근 본사 칼럼니스트·한림대 도헌학술원 원장,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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