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들은 박조이가 간통을 해서 자살했다고 했고, 온 동네에 소문이 퍼졌다.
평산 부사는 그 사건을 빠르게 자살로 종결됐다.
어느날 귀신으로 찾아오는 박조이로 인해 평산의 민심이 흉흉해지자 정조는 재조사를 명하고 '박조이 타살사건'으로 결론난다.
이 사건은 과학수사를 했다는 점과, 정조가 가해자도 신경썼을 뿐만 아니라 피해자의 억울함이 없도록 하라고 명한 사건으로 유명하다.
소문은 빠르고 그럴싸하지만 진실을 아는 것은 오래 걸린다.
조선의 천재이자 법학자였던 다산 정약용은 송사에서 빠름보다 흠흠(欽欽)이 첫 번째 원칙이라고 한다.
판결을 조심하는 것보다 판결을 구성하는 제도는 더더욱 조심스럽게 다루어야 하는데, 최근 '사법개혁'이라는 이름으로 너무도 빠른 입법과정을 본다.
최근 사법개혁 논의는 조선시대 '박조이의 자살'처럼 주변인들의 말에서 시작했다.
이제까지 그 소문이 진실로 드러난 적이 있는가? 그렇지 않다.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더 심각하다.
법원행정처가 사법행정위원회로 대체되면 법관에 대한 인사와 행정이 정치권에 넘어가는 길이 될 것이고, 결국 힘 있는 자의 입맛에 맞는 판결을 쏟아낼 우려가 있다.
대법관 증원보다 시급한 것은 1심의 집중 심리이다.
국민의 송사는 1심과 관련이 있지 대법관의 수는 아니다.
계엄령이 선포된 때에도 지금이 왕조시대인지 혼란스러웠는데 내란재판부를 설치해야 한다고 하니 왕조의 역모사건을 취급하는 듯하다.
무엇이 이리 급한 것인지 모르겠다.
이제까지 사법개혁 논의의 특징은 형사에서는 '피해자의 억울함'이 빠져 있고, 일반에서는 '1심 사건에서의 집중심리'가 빠져 있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사법개혁에서 국민이 빠져 있기 때문이다.
목표점이 국민인지 아니면 정치인지 혼란스럽다.
다산은 판결은 세상에 공정을 실현하는 것이라고 한다.
죄수를 죽일 길을 찾는 것도, 살릴 길을 찾는 것도 공정은 아니지만 죽은 자는 다시 살릴 수 없기에 먼저 살릴 길을 찾으라고 한다.
역시 제도도 잘못 바꾸면 치명적이라 '현재까지'를 존중하면서 나은 길을 찾아야 한다.
오히려 이런 화두가 필요하다.
가해자의 인권을 존중하면서 피해자의 억울함을 해결할 수 있는 길은 무엇인가? 판결은 빠르면서도 실체적 진실을 밝혀낼 수 있는 시스템은 무엇인가? 대다수의 소송 당사자들이 목을 매는 1심은 어떤 구조를 가져야 시대에 맞는가? 즉 정치가 빠진, 국민이 우선되는 사법개혁을 말해야 할 때이다.
강진의 푸른 바다를 보면서 조선의 사법 핵심을 흠흠신서로 정리한 정약용의 말처럼 조심하고 조심하면서 사법개혁을 논해야 한다.
박조이의 죽음이 자살로 결론나는 빠름을 버리고 진실은 무엇인지, 약자들의 억울함이 없도록 재조사를 명한 정조의 흠흠이 필요한 때이다.
시대는 변하고 변한다.
그 변하는 시대에 맞게 사법도 변해야 하지만 정조와 다산의 '흠흠'이라는 원칙이 포함된 과정을 통해 약자였던, 피해자였던, 한맺힌 억울함을 죽어서도 호소하던 박조이가 원하는 사법개혁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김석민 법무사 사법개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