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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을 잠식하는 ‘번아웃’ [유레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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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을 잠식하는 ‘번아웃’ [유레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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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욱 화백

김재욱 화백


‘번아웃’(burnout)은 1974년 미국 임상 심리학자 허버트 프로이덴버거가 학술지에 발표한 논문에서 개념화한 용어다. 그는 뉴욕의 무료 진료소에서 일하며, 자신을 비롯한 자원봉사자들이 정서적 고갈 상태에 이르게 된 과정을 관찰했다. 마약 중독자의 혈관을 묘사할 때 쓰이던 속어를 차용해 ‘직원(staff) 번아웃’에 대해 기술했다. 헌신적이고 책임감 강한 사람들이 최소한의 보상만 받으며 장시간 일하다가 발생한 극도의 피로감과 무기력함을 의미했다. 이후 1980년대 들어선 미국의 신자유주의 정책 기조 아래 좌절한 노동자의 상태를 보여주는 핵심 용어로 쓰였다.



공식적으로 번아웃은 질병이 아니고 증후군으로 분류된다. 세계보건기구(WHO)는 2019년 국제질병분류 11차 개정안에서 번아웃을 건강 상태에 영향을 주는 ‘직업 관련 현상’(Occupational Phenomenon)으로 규정했다. 그 개념은 직장 내에서 적절하게 관리되지 못한 만성적 스트레스로 정의됐다. 신체·정신적 피로감으로 의욕이 상실되고 일에 대해 냉소적 태도를 갖게 되며, 결과적으로 업무 효율 저하로 이어지는 양상을 보인다는 것이다.



번아웃의 원인은 복합적이다. 과중한 업무량이나 상사·동료와의 갈등은 물론이고 낮은 직무 만족도나 불공정한 처우 등이 가속화시키는 요인으로 꼽힌다. 2022년 세계보건기구가 직장 내 정신 건강 가이드라인을 낸 것은 번아웃을 개인의 문제로 돌려선 안된다는 함의를 담고 있다.



지난 16일 국가데이터처가 발간한 ‘청년 삶의 질 2025 보고서’를 보면, 지난해 19~34살 청년의 32.2%가 번아웃을 경험했다. 최근 1년간 업무와 학업, 취업 준비 등으로 스스로 번아웃 됐다고 느낀 적이 있다고 응답한 비중이다. 직장인을 중심으로 나타나던 번아웃은 대학생과 취업준비생 집단에서도 빈번하게 보인다. 실제로 25~29살의 번아웃 경험률(34.8%)이 30대 초반 청년들보다 더 높게 나타난다. 번아웃을 겪은 이유로 ‘업무 과중, 업무에 대한 회의’(34%)보다 ‘진로 불안’(39.1%)을 더 많이 꼽았다는 점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양질의 일자리 부족에서 비롯된 문제다.



번아웃의 심각성을 고려하면 정신질환으로 진단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적잖은 인구가 겪고 있고 그에 따른 사회·경제적 비용이 큰데다 우울증이나 불안장애 등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스웨덴을 비롯한 일부 유럽 국가들은 번아웃을 ‘소진 장애’로 진단한다. 번아웃이 직업병으로 인정되면 그에 따른 유급 휴가와 수당을 받기도 한다. 국가데이터처 보고서에서도 번아웃 경험률과 청년 자살률을 나란히 언급했다. 청년층에서 지난 10년간(2015~2024) 자살률 증가 폭이 가장 큰 연령 구간도 25~29살이다.



황보연 논설위원 whyn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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