좁은 도심 주거환경에 첨단 기술이 ‘구원 투수’
가구 이동과 벽체 이동까지
로봇이나 사물인터넷(IoT) 등 기술+주거 접목 시도
가구 이동과 벽체 이동까지
로봇이나 사물인터넷(IoT) 등 기술+주거 접목 시도
지난 17일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 스테이지핸즈 쇼룸에서 이동형 침대 ‘씰리’가 천정으로 이동하고 있다. |
서울 아파트의 평(3.3㎡)당 분양가는 지난달 최초로 5000만원을 넘어섰다. ‘넉넉한’ 주거 공간을 확보하는 것은 형편이 여유로운 이들에게도 쉽지 않은 일이 됐다. 좁은 도심의 주거난 해소는 서울을 비롯한 전 세계 대도시가 풀어야 할 난제이기도 하다.
최근 좁은 집을 넓게 활용하기 위해 가구 이동은 물론 벽체도 움직이게 하는 기술이 등장하고 있다. 침대도 천정에 붙게 만드는 ‘상상’도 현실화되고 있다. 공간이 두배 넓어지는 셈이다. 대형 건설사들은 최근 로봇이나 사물인터넷(IoT) 등 기술을 주거에 접목하는 시도를 하고 있다. 첨단 기술로 ‘15평’ 아파트에서 ‘25평’처럼 살 수 있을까.
원룸을 3개 공간으로 변신시키는 비결
지난 17일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의 스테이지핸즈 쇼룸. 대여섯 평 남짓 되는 공간에 침대와 장식장이 놓여 있다.
스마트폰을 열어 버튼을 누르면 퀸사이즈 침대가 서서히 위로 이동해 천정에 붙는다. 침대가 놓였던 공간이 거실로 변하는 데 30초가 채 안 걸린다.
침대 아래는 소파를 둘 수도, 펼쳐서 책상이나 식탁으로 사용 가능한 모듈 가구를 놓을 수도 있다. 침실을 작업실 또는 거실로 바꿔가며 쓰게 되는 것이다. 공간이 두배로 늘어나는 셈이다.
침대 옆 ‘벽면’도 움직인다. 벽체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수납장이다. 버튼을 누르니 수납장이 후퇴하면서 침실 혹은 거실이 확 넓어졌다.
뒤편에는 옷장과 수납공간이 있다. 물건을 꺼내거나 옷을 갈아입을 때는 ‘벽’을 잠시 이동시켜 옷방으로 쓸 수 있다. 구성하기에 따라 주방이나 식료품 창고를 두는 것도 가능하다.
스테이지핸즈는 2022년 설립된 로봇 가구 스타트업 로보톰의 브랜드다. 천정으로 이동하는 ‘씰리(Ceily)’와 레일을 따라 이동하는 수납장 ‘월리(Wally)’가 대표 제품이다.
20억원 넘는 아파트에도 ‘내 공간’이 없다
침대를 내리고 수납장을 이동하자 원룸이 침실과 옷방으로 나눠졌다. 최미랑 기자 |
건축을 전공한 두 공동창업자는 코로나19 팬데믹 때 ‘집이 감옥 같다’ 느끼면서 제품 개발에 나셨다고 한다.
침대나 옷장처럼 무거운 가구를 손쉽게 옮기도록 하는 데는 생각보다 기술력이 많이 필요하다. 우선 이동 때 진동이나 소음이 발생해선 안 된다. 이동 중에 사고가 나지 않도록 안전 문제도 확실히 해결해야 한다.
월리와 씰리는 곳곳에 센서가 부착돼 이동 중 사람이나 사물이 감지되면 곧바로 멈춘다. 수동으로도 작동할 수 있는데, 수평이나 균형이 맞지 않으면 스스로 오차를 보정해 제자리를 찾도록 설계됐다. 일반 가구처럼 간단히 설치할 수 있는 것도 장점이다.
다만 일반 가구의 3~4배 이상 되는 고가라는 점이 부담스러운 면이 있다. 침대의 경우 벽체에 시공해야 해 자가가 아니면 사실상 설치가 어렵다는 제약도 있다.
창업 초기에는 좁은 공간에서도 ‘자기 공간’을 누리기를 원하는 1인 가구 등을 주요 대상으로 생각했다고 했으나 현재 서울 강남 등지의 중소형 아파트 거주자나 임대사업자들 문의가 가장 많다고 한다.
강희진 로보톰 공동대표는 “단위면적당 가격이 비싼 아파트일수록 거주자들께서 공간 활용을 더 잘하고 싶어 하는 것 같다”며 “20억원이 넘는 30평대 아파트에 살지만 실질적 자기 공간은 거의 없다며 문의를 주신 50대 남성 고객도 있었다”라고 말했다.
획일화된 아파트에서 탈피한 ‘넥스트홈’
침대를 내리고 수납장을 이동하자 원룸이 침실과 옷방으로 나눠졌다. 최미랑 기자 |
대형 건설사들도 개인 맞춤화 전략의 하나로 비슷한 문제를 연구해왔다. 삼성물산 건설부문(이하 삼성물산)이 올해 발표한 차세대 주거 기술 ‘넥스트홈’에도 이동 가능한 벽체와 가구는 포함돼 있다.
넥스트홈은 아파트 내부를 그동안의 획일적 구조에서 사용자 취향과 생활 패턴에 따른 맞춤형으로 자유롭게 구성할 수 있도록 하는 게 핵심이다. 삼성물산은 2023년 넥스트홈의 청사진을 발표한 후 2년간의 연구개발을 거쳐 지난 9월 세부 내용을 공개했다.
각종 배관을 바닥 하부 공간에 설치하는 게 삼성물산이 넥스트홈을 통해 제시하는 주요 기술 중 하나다. 이렇게 하면 물을 쓰는 욕실이나 주방을 집안 어디에든 설치할 수 있게 된다. 기존의 보편적 건설 기법 상으론 배관 설비 때문에 위치가 고정됐다.
여기에 모듈형 조립식 벽 ‘넥스트 월’과 이동이 가능한 ‘넥스트 퍼니처’를 더하면 공간 구성이 지금보다 훨씬 다채로워진다는 게 삼성물산의 구상이다.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에 설치된 네스트홈 테스트베드(실증공간)에서 직접 체험해 보니, 특수 모터를 활용한 전동식 벽 또는 가구가 양손으로 살짝 힘주어 밀면 쉽게 움직였다. 소음이나 진동도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내장 배터리를 활용하는 방식이어서 별도의 전원은 연결하지 않아도 된다.
삼성물산은 올해 시공권을 확보한 서울 서초 신반포4차와 개포우성7차 등에 이동형 가구인 넥스트퍼니처를 적용한다는 계획이다.
인공지능 더해 개인 맞춤형 공간으로
현대건설은 2022년부터 ‘H트랜스포밍 월&퍼니처’라는 명칭으로 이동형 가구를 선보이고 자사 아파트에 유상 옵션으로 제공하고 있다. 버튼을 누르면 벽체를 이동시켜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낼 수 있고, 벽체 매립형 가구를 추가해 침대 등을 설치하는 것도 가능하다.
예컨대 거실 벽을 이동시키고 벽면에 매립된 1인용 책상을 펼치면 사무실이 되고, 벽면에 매립된 침대를 펼치면 손님방을 마련할 수 있도록 하는 식이다. 하루는 오피스가 되고 하루는 게스트룸이 되는 셈이다.
업계에선 앞으로 인공지능(AI) 기술을 접목해 가구나 생활공간이 더욱 개인화될 것으로 보고 기술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강 대표는 “앞으로 가구가 사용자 활동을 파악해 조명, 온도, 가구배치 등을 자동으로 조절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고, 더 나아가면 가구와 벽체가 사용자 필요에 맞게 스스로 움직이는 것까지 가능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H트랜스포밍 월&퍼니처Ⅲ’ 시스템으로 거실 벽을 이동해 매립된 가구를 꺼내 활용하는 이미지. 현대건설 제공 |
최미랑 기자 ra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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