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마가 던지는 불편한 질문
노봉수 전 한국식품과학회장(서울여대 명예교수) |
최근 유전자변형식품(GMO) 완전표시제 도입과 관련해 논란이 거세다. 소비자의 알 권리를 존중하자는 취지는 충분히 공감할 만하다. 그러나 문제는 그 법적 기준과 과학적 정의가 과연 일관되고 합리적인가 하는 점이다. 이 논의를 보다 근본적으로 바라보기 위해 우리는 한 가지 불편한 사례 앞에 서게 된다. 바로 고구마다.
일반적으로 DNA는 부모로부터 자손에게 수직적으로 전달된다. 이는 인간이든 식물이든 미생물이든 마찬가지다. 그러나 생물학은 오래전부터 이 단순한 도식을 넘어서는 예외를 알려 왔다. 수평적 유전자 이동(Horizontal Gene Transfer, HGT)이라 불리는 현상이다. 박테리아나 바이러스는 플라스미드와 같은 유전자 조각을 매개로 전혀 다른 종의 생물에게 유전자를 전달할 수 있다. 이 현상은 생물 진화의 중요한 동력 중 하나로 작용해 왔다.
2015년 벨기에 헨트대학교 연구팀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섭취하는 고구마의 유전체를 분석한 결과 고구마에 박테리아에서 유래한 외래 유전자가 안정적으로 삽입됐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 연구는 미국립과학원회보(PNAS)에 발표되었으며 291개 이상의 샘플과 근연종 비교를 통해 신뢰성을 확보했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이 유전자 삽입은 인간이 고구마를 작물화하기 이전, 즉 자연 상태에서 이미 일어난 사건이었다.
이 외래 유전자는 아그로박테리움(Agrobacterium)이란 토양 세균에서 유래한 것으로, 식물 세포에 유전자를 전달하는 능력을 가진 균이다. 흥미롭게도 이 세균은 오늘날 인간이 유전자 재조합 작물(GMO)을 만들 때 사용하는 대표적인 도구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고구마는 인간의 개입 이전에 이미 '자연적으로 유전자가 삽입된 작물', 즉 천연 GMO라 할 수 있다.
더 중요한 점은 이 유전자 삽입이 고구마의 생존과 번성에 유리한 형질을 부여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사실이다. 재배가 쉽고 식용에 적합한 고구마의 특성은 이러한 유전자 삽입과 자연선택의 결과일 수 있다. 무작위로 삽입된 유전자 중에서 생존과 번식에 유리한 것만이 살아남았고, 그 결과 오늘날의 고구마가 우리 식탁에 오르게 된 것이다.
여기서 근본적인 질문이 제기된다. 만약 '외래 유전자가 삽입됐다'는 사실만으로 GMO 표시를 의무화해야 한다면 우리는 고구마를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 군고구마에도 GMO 표시를 붙여야 하는가. 더 나아가 수천 년 동안 육종이라는 이름으로 자연 교잡과 돌연변이, 무작위 유전자 재조합을 거쳐 만들어진 수많은 작물들 벼, 밀, 보리, 감자 등은 과연 GMO가 아닌가.
자연에서 일어나는 유전자 이동은 본질적으로 무작위적이다. 인간은 그 결과를 사전에 예측하거나 통제할 수 없다. 바람직하지 않은 형질을 가진 개체는 도태되고, 우연히 인간에게 유리한 특성을 지닌 개체만이 선택되어 오늘날까지 살아남았을 뿐이다. 이는 일종의 '유전자 난사'에 가까운 과정이다.
반면 현대의 GMO 기술은 특정 유전자를 특정 목적을 위해 특정 위치에 삽입하는 방식이다. 안전성 평가와 독성, 알레르기, 환경 영향에 대한 검증을 거친다. 총기 비유를 빌리자면 천연 GMO가 무차별 난사에 가깝다면 현대 GMO는 목표와 검증을 동반한 저격에 가깝다.
그럼에도 현행 GMO 표시 논의는 이러한 차이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 채 '인간이 개입했는가'라는 이분법적 기준에 머물러 있다. 과학적 위험성보다는 기술의 출처를 기준으로 규제하는 방식이다. 이로 인해 자연 진화의 산물은 아무 표시 없이 소비되지만 오히려 더 정밀하고 통제된 기술로 만들어진 작물은 과도한 경계의 대상이 된다.
노벨상 수상자들을 포함한 다수의 과학자들이 GMO의 안전성을 지지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들은 유전자 이동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그 결과와 검증 과정이 중요하다고 본다. 자연에서 무작위로 일어난 유전자 삽입을 우리는 수천 년 동안 아무 의심 없이 먹어 왔다. 그렇다면 왜 더 많은 정보를 알고 더 많은 검증을 거친 현대 GMO에 대해서만 특별한 낙인을 찍는가.
진화를 인정하지 않으면서 그 결과물만을 선택적으로 받아들이는 태도는 과학적 일관성을 잃기 쉽다. 만약 GMO 표시가 '유전자 이동의 존재'를 기준으로 한다면 우리는 고구마를 포함한 수많은 작물 앞에서 스스로 모순에 빠질 수밖에 없다.
GMO 표시 법률은 공포를 관리하는 법이 아니라 과학을 번역하는 법이어야 한다. 기술의 이름이 아니라, 위험의 실체를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고구마가 던지는 질문은 단순하다.
"우리는 무엇을 기준으로 안전을 판단하고 있는가."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한 채 만들어지는 법은 소비자를 보호하기보다 오히려 혼란에 빠뜨릴 가능성이 크다.
노봉수 전 한국식품과학회장(서울여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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