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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택미분양 문제에 대한 새로운 접근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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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택미분양 문제에 대한 새로운 접근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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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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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정부는 지난 10월 강력한 주택시장 안정화정책을 발표했다. 규제 지역을 확대하고 규제지역 내에서 대출을 받아서 주택을 사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게 만든 정책이다. 일각에서 '부동산 쿠데타'로 부를만큼 강력한 시장 개입이다.

그런데 주택가격 상승 만큼 정부와 언론의 관심을 못 받고 있지만, 우리나라 주택시장의 또 다른 심각한 현안은 미분양 문제이다. 10월말 기준 전국 미분양주택은 6만9,069가구이고 이 중 준공 후 미분양주택은 2만8,080가구에 달한다. 미분양주택은 전국적으로 분포해 있고 좀처럼 줄지 않고 있다. 악성이라 학 수 있는 준공후미분양은 늘어나는 추세다.

미분양의 원인은 크게 구조적인 요인과 경기적 요인으로 구분할 수 있다. 인구 감소로 인한 주택수요 감소, 공급된 주택의 품질 문제 등 구조적 요인으로 미분양이 발생할 수 있다. 이러한 요인이 심각할 때는 공급자가 손해를 감수할 정도로 과감하게 할인해서 재분양하더라도 미분양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

그러나 많은 경우 경기적 측면이 더 중요한 원인으로 작용한다. 주택경기가 호전되면 결국은 분양이 될 수 있다. 그런데 주택시장 경기순환은 일반 경기순환에 비해 진폭이 크며 지역간 편차가 크게 두드러진다는 특징이 있다. 주택경기 침체기에 지방 주택시장은 일반적으로 수도권에 비해 훨씬 더 충격이 크게 나타난다. 경기회복기에도 지방은 회복 속도가 느리다. 지방건설사들은 그 충격으로 도산하고, 지역경제는 침체된다.

정부는 그동안 토지주택공사(LH)를 통한 직매입. 구조조정(CR)리츠 활용, 환매조건부 매입 등 정책을 동원해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실적은 미미한 실정이다.

LH의 미분양주택 매입은 8,000가구를 목표로 했지만 최근까지도 하나도 계약된 것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CR리츠 활용 미분양주택 매입은 9월20일 기준 991가구에 그쳐 전체 미분양 물량에 비해 그 규모가 미미하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환매조건부(RP) 매입은 준공전 미분양주택을 분양가보다 낮은 가격(예로 반값)으로 매입한 후 일정 기간 내에 이자를 더한 가격으로 주택을 다시 사갈 수 있도록 한 것이지만, 유동성이 부족한 건설사들에게 다소 도움이 되는 정도일 것이다.


경기적 미분양문제 해소를 위해 도입된 지금까지의 정책은 공급자에 대한 지원에 집중돼 있다. 지방 건설사들에게 산소마스크를 씌어 어려운 시기를 버틸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다. 하지만 투입되는 예산에 비해 실효성이 크지 않은 것이 문제이다. 그 와중에 지역 경제가 곪아가고 있다. 따라서 재정효율성을 높이는 한편 매수심리 진작을 통해 보다 근본적으로 미분양을 해소할 수 있는 대책이 필요해 보인다.

이와 관련, 최근 학계에서 논의되는 주택매수청구권을 활용하는 방안이 주목된다. 미분양주택을 재분양할 때 수분양자에게 매수청구권, 즉 미래 일정 시점에 재분양가격으로 사줄 것을 청구할 수 있는 권리를 함께 붙여서 분양하는 것이다. 만약 수분양자가 2년이나 3년 살아본 후 가격이 하락하거나 집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 재분양가격으로 팔수 있는 권리를 가진다면 죽어 있는 주택수요가 살아나면서 미분양 문제가 상당 부분 해소될 수 있을 것이다. 정부는 그러한 청구권을 파는 주체에 대해 출자확약을 하는 역할을 통해 거래 신뢰를 제고하고 안정적인 제도 운용을 위한 버팀목 역할을 한다. 따라서 당장 재정을 투입할 필요도 없다. 재정 투입을 최소화하면서 소기의 정책적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것이다.

정부는 제도를 만들고 약속 정도만 하고 민간이 움직일 수 있는 판만 깔아주면 된다. 정책 당국이 상상력을 발휘하여 실효성 높고 정책 비용을 최소화하는 대안을 마련하는데 적극 나설 것을 기대해본다.

채희율 경기대 경제학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