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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경춘추] 항암제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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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경춘추] 항암제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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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병준 현대바이오사이언스 사장

배병준 현대바이오사이언스 사장

암은 인류가 맞서야 할 가장 큰 질병이다. 암 환자가 겪는 고통은 개인을 넘어 가족의 삶까지 뒤흔들어 놓는다. 그러나 인류는 이 숙명적 고통에 굴복하지 않았다. 이제 암은 더 이상 '불치의 병'만은 아니다. 지난 반세기 동안 눈부시게 발전한 항암제는 수많은 생명을 구해 왔고, 동시에 인류 역사상 가장 큰 의료·산업적 가치를 창출해 왔다.

현대 항암 치료의 출발점은 194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질소머스터드가 림프종 치료에 사용되며 약물로 암을 치료하는 시대가 열렸다. 초기 화학항암제는 심각한 부작용을 동반했지만, 암이 더 이상 손쓸 수 없는 질병만은 아니라는 가능성을 처음으로 제시했다. 이 한계를 넘어선 것이 표적 항암제다. 치명적이던 만성골수성백혈병을 '치료 가능한 병'으로 전환시킨 글리벡, HER2 양성 유방암 치료의 기준을 다시 쓴 허셉틴은 대표적인 성공 사례다. 표적 치료는 항암 치료를 무차별 공격에서 정밀 의료의 시대로 전환시켰다. 2020년대 들어 항체-약물 접합체, 이른바 ADC는 항암제의 핵심 축으로 자리 잡았다. 항체의 정확성과 화학항암제의 강력한 독성을 결합한 '유도미사일형 항암제'로, 엔허투와 같은 ADC는 항암제 기술의 정점으로 평가받고 있다. 다음 전환점은 면역관문억제제의 등장이다. 암세포가 면역 반응을 억제하기 위해 활용하던 신호를 차단함으로써, 면역 체계가 본래의 공격 능력을 되찾도록 만든다. 키트루다는 일부 환자에게서 장기 생존, 나아가 완치에 가까운 결과를 보여주며 암 치료의 패러다임을 바꿨다.

앞으로의 항암 치료는 단일 약물 간 경쟁이 아니라 병용과 융합의 시대다. 종양 주변 환경이 치료 효과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는 인식 아래 항암제의 반응성을 높이기 위한 다양한 접근이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표적 치료와 ADC, 면역 치료를 조합하는 병용 전략이 임상 현장에서 빠르게 자리 잡고 있다. 여기에 mRNA 기반의 개인 맞춤 항암백신과 세포·유전자 치료까지 더해지며 항암제는 점차 하나의 '정밀한 치료 시스템'으로 진화하고 있다. 특히 환자별로 mRNA 기반 개인 맞춤 항암백신을 통해 면역 체계에 암의 특징을 먼저 인식시키고, 면역관문억제제로 그 반응을 증폭하는 이른바 '면역 기반 융합 전략'이 완치 가능성에 한 발 더 다가가고 있다.

이 같은 혁신은 제약·바이오 산업의 지형을 크게 확장시키고 있다. 키트루다는 연매출 209억달러를 기록하며 상징적인 블록버스터 의약품이 되었고, 글로벌 항암제 시장은 연평균 두 자릿수 성장세를 이어 가며 2028년 4000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항암제는 더 이상 단순한 치료제가 아니다. 항암제의 진화는 죽어 가는 생명을 되살리기 위한 인류의 집요한 도전이며, 동시에 산업적으로는 막대한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혁신의 또 다른 이름이다.

[배병준 현대바이오사이언스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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