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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 환헤지 본격화···'1500원 육박' 환율 잡기 총력전 [시그널]

서울경제 김병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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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 환헤지 본격화···'1500원 육박' 환율 잡기 총력전 [시그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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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도 환율 전망에 이견
외환보유액은 세계 9위 수준


국민연금이 원·달러 환율 수준을 낮추기 위해 이르면 이번 주 초부터 대규모 환 헤지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연말 종가 기준 환율이 기업과 금융기관 재무 건전성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만큼 정부와 한국은행이 특단의 단기 처방을 내놓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한은은 지난주 사상 처음으로 금융기관의 외화예금 초과 지급준비금에 이자를 지급하겠다고 밝히면서 공개적으로 외환스와프 확대 대비에 나섰다.

21일 외환시장에 따르면 원·달러 환율은 전날 새벽 야간 거래에서 1478원으로 거래를 마쳤다. 최근 환율은 달러 약세 흐름을 고려하면 이례적으로 높은 수준으로 평가된다. 환율은 17일 장중 1482.1원까지 치솟았다. 미국 관세 충격이 거셌던 올해 4월 9일(1487.6원) 이후 8개월여 만에 최고치다.

이미 지난달 말 원화의 실질실효환율은 87.1까지 하락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때인 2009년 4월 말(85.5) 이후 16년 7개월 만에 최저치다. 외환 당국은 올해 거주자 해외증권투자 규모가 사상 최대인 경상수지 흑자를 넘어 과도하게 불어나면서 환율을 끌어올린 것으로 보고 있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17일 물가 설명회에서 “내부적 요인으로 환율이 불필요하게 올라간 부분이 있다”며 “변동성뿐 아니라 레벨(수준)도 조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연말 종가는 기업과 금융기관 등의 내년 재무제표 작성 기준이 되기 때문에 관리가 더욱 필요한 상황이다. 외환 당국이 연말 환율 종가를 낮추기 위해 사력을 다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정부와 한은이 최근 선물환 포지션 제도 합리적 조정, 외화유동성 스트레스 테스트 부담 경감, 거주자 원화 용도 외화대출 허용 확대, 국민연금 관련 ‘뉴프레임워크’ 모색 등 가용 대책을 한꺼번에 쏟아낸 것도 연말 환율 안정이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정부와 한은의 총력 대응에도 환율이 좀처럼 하락하지 않는 가운데 외환시장 ‘큰 손’인 국민연금 역할론이 부상하고 있다. 국민연금이 한은과 외환스와프를 통해 대규모 환 헤지에 나설 경우 수급 불균형이 일시 해소되면서 환율이 단기적으로 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외환스와프는 국민연금이 한은에 원화를 맡기는 대신 달러를 가져가는 방식이다. 현물환 시장에서 달러를 매수하지 않기 때문에 환율 수요 압력을 줄이는 결과를 낳는다.

환 헤지는 신규 해외투자 시 한은에서 가져간 달러를 이용하거나 기존 투자 헤지 시 이 달러를 매도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시장에서 국민연금이 사실상 달러 매도 주체로 나서 결과적으로 환율을 떨어뜨리는 데 기여할 수 있다. 외환 당국은 지난주부터 국민연금 환 헤지 본격화를 공공연히 예고해왔다. 윤경수 한은 국제국장은 19일 기자들에게 “국민연금과 외환스와프가 일부 재개된 게 사실”이라며 “국민연금이 환 헤지를 유연하게 해서 그에 따른 스와프 물량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혔다.


한은이 내년 1월부터 6개월 간 금융기관의 외화예금 초과 지급준비금에 이자를 지급하겠다고 밝힌 것도 국민연금 환 헤지와 연계된 ‘사전 포석’으로 풀이된다. 대규모 환 헤지로 외환스와프 거래가 늘면 그만큼 한은이 보유한 달러가 줄면서 외환보유액이 감소하게 되는데, 해외보다 높은 이자를 주는 대신 금융기관 외화예금 지급준비금을 평소보다 더 많이 예치 받아 그 감소분을 메우려는 계산인 것이다.

한은이 환율 변동성을 낮추기 위한 자체 시장 개입(스무딩 오퍼레이션)도 병행하고 있는 만큼 시장 안팎에서는 당분간 외환보유액이 감소할 수 있다고 보는 분위기다. 여기에는 4월 국민연금과의 외환스와프 거래 확대로 외환보유액이 한 달 만에 50억 달러 가까이 줄어 시장 우려를 낳은 학습효과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10월 말 외환보유액은 4288억 2000만 달러로 세계 9위 수준이다. 11월 말 4306억 6000만 달러로 비교적 양호한 수준을 유지 중이다. 다만 국민연금은 환율 관리를 위해 본격적으로 환 헤지에 나서더라도 그 시기와 규모를 공개하지 않을 전망이다. 윤 국장은 이와 관련 “(지급준비금 이자 지급이) 외환스와프와 연계된 부분이 있다”면서도 “환 헤지를 어떻게 조절할지는 국민연금에서 결정할 것”이라며 말을 아꼈다.


전문가들의 연말 환율 전망은 다소 엇갈린다. 정부와 한은이 내놓은 각종 환율 안정책의 단기 효과를 서로 다르게 예상하기 때문이다. 서정훈 하나은행 수석연구위원은 “수출업체 달러 매도를 유도하고 국민연금 환 헤지로 현물환 시장 매수 수요를 줄이면 환율은 하락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반면 문정희 KB국민은행 이코노미스트는 “당국 노력이 강제적이거나 규제 등이 아니라 권고나 점검 사항이라는 점에서 시장 효과가 아직은 제한적”이라며 “연말 환율은 현재 수준인 1470원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면서 “대외 불확실성, 미국 증시 조정 등이 발생할 경우 위험 회피 영향에 환율이 1500원을 넘을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김병준 기자 econ_ju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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