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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로라 빛나는 밤, 우주에선 ‘초대형 교통사고’가?···인공위성 연쇄 충돌 시나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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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로라 빛나는 밤, 우주에선 ‘초대형 교통사고’가?···인공위성 연쇄 충돌 시나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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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캐나다 연구진, 태양폭풍 ‘위성 영향’ 분석
‘전기 알갱이’ 탓 방향 교란·항법장비 손상 우려
충돌로 파편 다량 생성…‘케슬러 증후군’ 가능성
위성·우주선 추가 발사 불가능, 최악 땐 인류 고립
지구 궤도에서 인공위성들이 연쇄 충돌하는 상상도. 충돌로 생긴 다량의 파편이 지구 궤도를 가득 메우면 인류는 위성이나 발사체를 더는 쏠 수 없게 된다. 일러스트 | NEWS IMAGE

지구 궤도에서 인공위성들이 연쇄 충돌하는 상상도. 충돌로 생긴 다량의 파편이 지구 궤도를 가득 메우면 인류는 위성이나 발사체를 더는 쏠 수 없게 된다. 일러스트 | NEWS IMAGE


#고도 약 500㎞ 지구궤도. 발아래에는 파란 지구가, 저 멀리에는 칠흑같이 어두운 우주가 보인다. 특별한 풍경에 넋을 빼앗길 법한 이곳에서 우주비행사들은 웬일인지 진땀을 흘리고 있다. 이들의 손에는 공구가 들려 있다.

우주비행사들이 지구궤도에 둥둥 뜬 채 애를 쓰는 이유는 버스 크기의 천체 관측장비 ‘허블우주망원경’ 수리 때문이다. 몇 가지 난관에도 수리 작업은 큰 무리 없이 이어진다. 이제 조금만 더 노력하면 허블망원경은 더 좋은 성능으로 우주를 관측하게 된다.

그렇게 긴장이 풀어지려는 순간, 미국 항공우주국(NASA) 지상 관제소에서 “임무를 중단하라”는 긴급 무전이 날아든다. 러시아가 자국 인공위성을 폐기하겠다며 미사일을 쐈고, 그때 발생한 잔해가 주변 위성들을 연쇄적으로 파괴하면서 알루미늄과 티타늄 등 금속 파편이 다량 발생한 것이다. 지구궤도에서 생긴 파편은 한자리에 가만히 있지 않는다. 빠르게 돈다. 무려 초속 7~8㎞, 자동 소총 탄환 속도의 약 8배로 지구궤도를 휩쓸고 지나간다.

결국 재앙이 닥친다. 지구궤도에 떠 있던 우주비행사와 우주왕복선이 파편을 뒤집어쓴다. 대규모 인명피해가 생기고, 우주왕복선은 대파된다. 미국 공상과학(SF) 영화 <그래비티> 도입부다.

이 장면은 상상이다. 지구궤도에서 이런 일이 벌어진 적은 없다. 하지만 앞으로도 그럴지는 의문이라는 시각이 미국 프린스턴대와 캐나다 브리티시 컬럼비아대 공동 연구진에 의해 제기됐다. 이런 걱정의 이유는 <그래비티>에서처럼 미사일이 아니다. 바로 태양이다.

전기 알갱이 뿜는 ‘태양폭풍’


최근 논문 사전 공개 사이트 ‘아카이브’에 실린 연구진 분석은 ‘태양폭풍’이 가진 위험한 속성과 위성의 관계에 초점을 맞춘다. 태양폭풍이란 태양 표면에서 발생한 폭발에서 기인하는 천체 현상이다. 폭발 여파로 전자나 양성자 같은 눈에 보이지 않는 초소형 ‘전기 알갱이’가 태양에서 우주로 비바람처럼 방출된다. 이 때문에 태양폭풍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태양폭풍이 지구로 날아들면 생기는 대표적 현상은 오로라다. 극지방 하늘을 알록달록하게 만든다. 문제는 태양폭풍이 하늘을 예쁘게 만드는 일만 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지구 자기장을 교란해 인간이 생산하지 않은, ‘쓸데없는 전기’를 만든다.

이 전기는 송전선을 통해 변압기로 흘러든다. 존재하지 말아야 할 전기가 침입하면서 변압기는 망가지거나 기능 정지에 빠진다. 대규모 정전도 생길 수 있다. 1989년 캐나다 퀘벡주에서 그런 일이 있었다. 태양폭풍으로 전력망이 손상되면서 시민 600만명이 9시간 동안 전기 없는 세상에 직면했다.

연구진은 이번에 강력한 태양폭풍이 생길까 봐 노심초사해야 할 새로운 존재로 위성을 지목한 것이다. 생각해 보면 위성은 20세기 중반부터 발사됐다. 태양폭풍은 그때에도 있었다. 새삼스럽게 이제 와서 ‘경고’를 날린 이유는 뭘까. 최근 지구궤도를 도는 위성 개수가 많아져도 너무 많아졌기 때문이다.


공기저항 증가·항법장치 무력화


5~6년만 해도 위성 개수는 2000여기였다. 그런데 미국기업 스페이스X가 인터넷 서비스 ‘스타링크’를 구현하기 위해 쉴 새 없이 위성을 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현재는 1만3000여기에 이른다. 이렇게 많은 위성이 지구궤도를 채운 적은 인류 역사상 한 번도 없었다. 올해 유럽우주국(ESA)은 2030년이 되면 통신·관측 등의 임무를 띤 위성이 총 10만기나 지구궤도를 돌 것으로 전망했다.

지구궤도가 위성으로 붐비는 상황에서 강력한 태양폭풍이 지구로 날아든다면 어떤 일이 생길까. 우선 태양폭풍을 구성하는 전기 알갱이가 지구 대기를 파고들면서 열을 발생시킨다. 열 받은 대기는 오븐 속 빵처럼 부풀어 오른다.

원래는 진공이었던 위성 주변까지 대기가 올라오게 된다는 뜻이다. 이러면 위성은 갑자기 공기 저항에 직면한다. 기존 비행 속도와 방향을 유지하는 일이 불가능해진다. 비유하자면 트랙을 열심히 뛰는 육상선수에게 갑자기 관중들이 다가가 유니폼을 세게 잡아당기거나 어깨를 거칠게 밀치는 상황이 펼쳐지는 셈이다.


이런 긴급 상황이 벌어지면 위성은 자신의 동체에 내장된 항법 장치를 사용해 원래 궤도로 돌아오기 위해 애쓴다. 그런데 항법 장치에는 전자 부품이 다수 꽂혀 있다. 태양폭풍이 만든 전기 알갱이는 이런 전자 부품에 오작동을 유발할 공산이 크다. 뒤틀린 위성 궤도를 회복할 수 없게 된다. 가까운 간격에서 지구를 돌던 수많은 위성은 결국 제멋대로 움직이며 서로 충돌할 가능성이 커진다.

‘케슬러 증후군’ 오면 문명 퇴보


연구진에 따르면 위성끼리 부딪치는 일이 시작되면 ‘재앙’은 순식간에 벌어진다. 위성끼리 충돌은 물론, 위성 충돌 때 발생한 작은 파면이 멀쩡한 또 다른 위성을 때리는 일까지 생기며 연쇄적인 파괴가 일어난다. 이러면 파편 개수는 단기간에 폭증한다. 영화 <그래비티>보다 훨씬 더 심각한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지구 궤도가 파편으로 가득 차는 상황을 학술적으로 ‘케슬러 증후군’이라고 부른다. 케슬러 증후군이 나타나면 지구 밖으로 사람이나 물자를 보내기 어렵다. 지구궤도를 포위하듯 메운 파편과 충돌할 것을 각오하고 달이나 화성으로 우주선을 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위성을 추가 발사하는 일도 사실상 불가능하다. 본격 가동도 해보기 전에 지구궤도 전체를 꽉 메운 파편에 맞아 동체가 손상될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위성을 이용한 통신이나 관측은 대폭 축소되거나 중단된다. 지구 기술 문명은 퇴보가 불가피하다. 연구진은 “(대규모 위성 발사 등) 현재 인류가 지구 궤도에서 하는 활동이 향후 재앙적 결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며 “대책을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정호 기자 r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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