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무기 더 발전 여지… 긴장 완화 시급”
“돈로 독트린은 먼로 독트린 계승 아냐”
“대만 정책 창의적 모호성 약화 부적절”
“트럼프, 美 안보이익·大전략 이해 부족”
1990년대 중반 ‘제네바 합의’를 성사시켜 1차 북핵 위기의 봉합을 이끈 로버트 갈루치(79) 미국 조지타운대 명예교수가 이제 비핵화 대신 군비 통제가 미 대북(對北) 정책의 단기 목표가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러시아와의 관계를 강화한 북한의 핵무기 역량이 앞으로 더 나아질 여지가 큰 상황에서 오랫동안 북미 대화가 단절된 한반도의 현실을 고려한 조언이다. 갈루치 교수는 1994년 1차 북핵 위기 당시 미국 국무부 북핵 특사를 지낸 인물이다. 대북 협상과 대화를 강조하는 대표적 미국 내 온건파로 꼽힌다.
11일(현지시간) 본보와의 화상 인터뷰에서 갈루치 교수는 ‘5일 공개된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국가안보전략(NSS)에 북한 비핵화가 보이지 않는 것을 어떻게 봐야 하느냐’는 질문에 “국무부에서 20년 넘게 일한 나로서는 대화가 싸움보다 낫다고 믿을 수밖에 없다”며 “가능하다면 북한 대표들과의 비핵화 관련 실무 대화가 시작되기를 바란다”고 일단 전제했다.
그러려면 더는 미국이 비핵화를 당장 추진할 목표로 삼아서는 안 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이유는 대략 두 가지다. 우선 9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대미(對美) 대화 의지를 표명하며 제의한 조건 중 하나가 미국의 비핵화 집념 포기였다. 그를 대화 테이블로 끌어내려면 전략적으로라도 후퇴가 불가피하다. 다른 하나는 북한의 핵 능력이다. 갈루치 교수는 북한의 무기 역량에 대해 “이미 규모가 크고 다양하고 정교하다”고 평가하며 “우크라이나에서의 북한 역할(참전과 무기 제공)을 감안할 때 러시아의 도움으로 앞으로 더 발전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돈로 독트린은 먼로 독트린 계승 아냐”
“대만 정책 창의적 모호성 약화 부적절”
“트럼프, 美 안보이익·大전략 이해 부족”
로버트 갈루치 미국 조지타운대 명예교수가 11일 본보와 화상 인터뷰를 하고 있다. 1994년 1차 북핵 위기 당시 미국 국무부 북핵 특사를 지낸 그는 비핵화 대신 군비 통제가 미국 대북 정책의 단기 목표가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줌 화면 캡처 |
1990년대 중반 ‘제네바 합의’를 성사시켜 1차 북핵 위기의 봉합을 이끈 로버트 갈루치(79) 미국 조지타운대 명예교수가 이제 비핵화 대신 군비 통제가 미 대북(對北) 정책의 단기 목표가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러시아와의 관계를 강화한 북한의 핵무기 역량이 앞으로 더 나아질 여지가 큰 상황에서 오랫동안 북미 대화가 단절된 한반도의 현실을 고려한 조언이다. 갈루치 교수는 1994년 1차 북핵 위기 당시 미국 국무부 북핵 특사를 지낸 인물이다. 대북 협상과 대화를 강조하는 대표적 미국 내 온건파로 꼽힌다.
“분쟁 가능성부터 줄여야”
11일(현지시간) 본보와의 화상 인터뷰에서 갈루치 교수는 ‘5일 공개된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국가안보전략(NSS)에 북한 비핵화가 보이지 않는 것을 어떻게 봐야 하느냐’는 질문에 “국무부에서 20년 넘게 일한 나로서는 대화가 싸움보다 낫다고 믿을 수밖에 없다”며 “가능하다면 북한 대표들과의 비핵화 관련 실무 대화가 시작되기를 바란다”고 일단 전제했다.
그러려면 더는 미국이 비핵화를 당장 추진할 목표로 삼아서는 안 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이유는 대략 두 가지다. 우선 9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대미(對美) 대화 의지를 표명하며 제의한 조건 중 하나가 미국의 비핵화 집념 포기였다. 그를 대화 테이블로 끌어내려면 전략적으로라도 후퇴가 불가피하다. 다른 하나는 북한의 핵 능력이다. 갈루치 교수는 북한의 무기 역량에 대해 “이미 규모가 크고 다양하고 정교하다”고 평가하며 “우크라이나에서의 북한 역할(참전과 무기 제공)을 감안할 때 러시아의 도움으로 앞으로 더 발전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런 만큼 “북미 간 대화를 진전시키고 긴장을 줄일 수 있는 영역을 찾아내는 게 단기간에 미국이 추구할 목표가 돼야 한다”고 그는 강조했다. 그는 이달 3일 한국국제교류재단(KF)과 미국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가 워싱턴에서 함께 연 연례 포럼에 패널로 참석해 “한미는 북한의 핵 지휘 통제가 어떤 식으로 작동하는지도 모른다. 북한의 오판과 핵무기 오작동을 막는 게 급선무”라고 짚기도 했다.
갈루치 교수가 비핵화 대신 제시한 당면 대북 현안은 군비 통제(arms control)다. 자칫 비핵화를 물 건너가게 할 수 있다는 이유로 한국 내 거부감이 상당한 해법이다. 그러나 두 목표가 양립 불가능하지 않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군비 통제는 분쟁 발생 가능성과 더불어 분쟁이 벌어졌을 때의 파괴성(destructiveness), 분쟁 대비에 들어가는 비용 등을 줄일 목적으로 고안된 메커니즘”이라며 “(기존 핵 강대국인 러시아나 중국뿐 아니라) 북한에 대해서도 이 메커니즘을 적용하는 게 미국은 물론 한국에도 큰 이익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먼로 독트린을 왜곡해 악용”
로버트 갈루치 미국 조지타운대 명예교수가 지난해 5월 28일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알렌관에서 본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
인터뷰는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새 NSS에 집중됐다. 해당 문서는 “먼로 독트린에 대한 ‘트럼프 추론(Trump corollary)’을 주장하고 시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제5대 미국 대통령 제임스 먼로 집권기 국무장관 존 퀸시 애덤스가 1823년 설계한 먼로 독트린은 서반구(남북 아메리카)가 미국의 세력권(sphere of influence)인 만큼 유럽 열강의 서반구 개입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선언이었다는 게 일반적 평가다. 미국 뉴욕포스트는 올 1월 트럼프 대통령 이름을 먼로 독트린에 합쳐 ‘돈로 독트린’이라는 조어를 만들기도 했다.
그러나 갈루치 교수는 두 독트린이 연결된다는 주장을 의심했다. “전통적인 미국 국가안보의 ‘대전략(grand strategy)’은 동맹과 협력해 유럽과 아시아에서의 패권 등장을 차단하는 것이었는데, 이번 NSS는 먼로 독트린의 세력권 개념을 가장 왜곡된(perverse) 방식으로 강조해 미국을 더 매파적이고(무력 사용 불사) 더 군림하는 국가로 만들려 시도한다”고 지적했다. 대표적 사례가 러시아 포용이다. 그는 “침략국 러시아를 옹호하고 피침략국 우크라이나에 영토 양보를 요구하는 트럼프의 태도는 기이하고 위협적”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2기 행정부는 최근 중남미 카리브해에 군사력을 집중해 좌파 성향인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정권의 퇴진을 압박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에 대해 갈루치 교수는 “먼로 독트린의 필연적 귀결로 볼 수 없다”며 “서반구를 지배하겠다는 더 거대한 열망의 표현이자 미국 내 마약 유입 차단을 위한 치명적 무력 사용의 정당화일 뿐”이라고 말했다.
혼란스러운 對중국·대만 접근
로버트 갈루치 미국 조지타운대 명예교수. 조지타운대 홈페이지 화면 캡처 |
트럼프 2기 전략의 대중(對中) 접근은 한마디로 “혼란스럽다”는 게 갈루치 교수 반응이었다. “전략 핵무기 개발을 본격화한 중국이 미국의 안보 위협임이 명확해졌지만 이번 전략에서는 이와 관련한 어떤 인식도 찾을 수 없다”고 그는 말했다. 반면 대만 관련 언급은 오히려 선명해졌다는 게 그의 평가다. 지금껏 미국은 중국이 무력으로 대만을 합병하려 할 경우 개입할지에 대해 모호한 입장을 취해 왔다. 중국이 함부로 행동하지 못하게 붙잡아 두기 위한 전략의 일환이었다.
갈루치 교수는 “이번 문서는 중국이 대만에 무력을 행사하면 우리가 행동할 것이라는 약속을 종전보다 더 분명히 하고 있다”며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기존 ‘창의적 모호함’이 건설적이었다고 나는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한국이 대만 유사시 개입 가능성을 흐릿한 상태로 놔두고 있는 것에 대해 “한국은 아직 창의적 모호함의 세계에 있는 것 같다”고 농담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동맹관(觀)도 갈루치 교수는 신랄하게 비판했다. 미국을 여태껏 동맹들에 일방적으로 선물을 주기만 해 온 피해자로 묘사했는데, 동맹 네트워크의 이익 공동체 성격을 이해하지 못한 결과라는 것이다. “딱 한 가지라면 미국의 안보 이익과 대전략에 대한 트럼프의 이해 부족을 난맥상의 원인으로 꼽고 싶다”고 그는 말했다.
워싱턴= 권경성 특파원 ficciones@hankookilbo.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