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개월만에 0.25%P 인상]
"금융완화 정도 계속 조정하겠다"
금리인상 기조 유지방침 밝혔지만
세계 금융시장 변동성 확대 우려
국가부채·부동산 대출 등 뇌관에
공격적 금리 올리기는 어려울 듯
"금융완화 정도 계속 조정하겠다"
금리인상 기조 유지방침 밝혔지만
세계 금융시장 변동성 확대 우려
국가부채·부동산 대출 등 뇌관에
공격적 금리 올리기는 어려울 듯
19일 기준금리를 0.75%로 0.25%포인트 인상한 일본은행은 내년에도 금리 인상 기조를 유지하겠다는 방침을 분명히 했다. 30년간 이어온 초저금리, 이로 인한 엔저(엔화 가치 약세)를 벗어나 본격적인 통화정책 정상화에 나서겠다는 선언이다. 우에다 가즈오 일본은행 총재는 이날 금융정책결정회의 이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계속해서 금융 완화 정도를 조정하겠다”며 인상 방침을 밝혔다. 그러면서도 “금리 인상 속도는 실질 금리나 금융기관의 대출 동향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나갈 것”이라며 속도 조절에 무게를 두는 모습이었다. 이를 두고 블룸버그통신은 “매파적(강한 금리 인상) 발언을 기대했던 이들에게는 실망감을, 신중한 접근을 바랐던 이들에게는 안도감을 줄 것”이라고 평가했다.
일본의 금리 인상 행보는 무엇보다 고물가 대응이 시급하기 때문이다. 이날 발표된 11월 일본의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전년 동월 대비 2.9% 상승해 일본은행의 목표치인 2%를 3년 8개월 연속 웃돌았다. 통화 당국은 고환율이 수입 물가를 밀어올려 인플레이션을 부추기고 있는 상황을 심각하게 보면서 반드시 해소해야 한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 우에다 총재가 이날 “이번 회의에서 다수의 위원들이 엔저가 물가에 미칠 부정적인 영향을 지적했다”고 강조한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다.
다행히 제반 환경이 받쳐주고 있다. 우선 미국의 관세 여파가 점차 수그러들고 있다. 이는 일본은행이 금리 정상화에 속도를 낼 수 있게 하는 주요 배경으로 꼽힌다. 11월 일본 수출은 1년 전에 비해 6.1% 증가했고, 특히 대미 수출(8.8% 상승)은 8개월 만에 플러스로 전환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관세 충격이 예상보다 미미하다는 것을 확인한 일본은행이 초저금리 정책에서 더 빠른 속도로 벗어나려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 내년에 주요 기업들이 예고한 대폭의 임금 인상이 인플레이션 고착화로 이어지는 것을 사전에 방지하는 차원도 있다.
일본의 초저금리 탈출로 글로벌 금융시장에도 변화가 예상된다. 금리 인상 가능성에 상승세를 기록하던 일본의 10년물 국채 금리는 이날 일본은행의 금리 인상 직후 2.02%까지 치솟아 1999년 이후 26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미국·독일 국채와 더불어 대표적인 안전 자산으로 꼽혀온 일본 국채가 더 높은 수익률까지 갖추게 된다면 채권 투자자들이 몰려들 수 있다. 이달 초 일본과 중국 장기 국채의 금리 역전 현상이 발생하자 ‘아시아 채권 시장 재편의 신호’라는 분석이 나오기도 했다. 실제로 일본 투자자들은 자국 초저금리 영향으로 중국 등 해외시장에 눈을 돌렸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지난해 일본 투자자들의 중국 채권 보유량은 1년 전보다 53% 증가했다. 시장에서는 이 같은 상황에서 자국 국채 금리가 높아지면 중국 대신 일본 국채를 대거 사들이는 포트폴리오 조정이 이뤄질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특히 값싼 엔화를 전제로 한 ‘엔캐리 트레이드’가 금리 인상으로 청산 압력을 받게 되면 시장 변동성을 키울 트리거로 작동할 수 있다는 점을 전문가들은 우려한다. 특히 최근 미국의 금리 인하 기조가 이어지며 양국 간 금리 차뿐 아니라 환차익 기대까지 축소돼 청산 위험은 더 커졌다. 단적으로 2023년 12월 미국(연 5.5%)과 일본(연 -0.1%)의 기준금리 차는 5.6%포인트에 달했지만 일본의 이번 인상으로 3%포인트로 좁혀졌다. 총 506조 6000억 엔(약 4803조 6820억 원)로 추산되는 엔캐리 트레이드 자금이 언제든 청산될 수 있는 상황에 놓인 셈이다. 한국은행 추산에 따르면 이 중 6.5%인 32조 7000억 엔이 금리 인상에 따른 청산 사정권으로 분석됐다. 엔캐리 트레이드 청산이 본격화하면 지난해 8월 한국을 비롯해 세계 증시가 급락했던 ‘검은 월요일’ 같은 충격에 휩싸일 수 있다.
다만 일본은행이 경제와 시장 상황을 봐가면서 금리를 올리겠다며 속도 조절을 시사한 만큼 일본발(發) 시장 충격이 제한적일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당초 중립금리를 1.0~2.5%로 밝혔던 우에다 총재는 이날 “중립금리를 사전에 특정하기 어렵다”며 시장을 안심시켰다. 최근 18조 3034억 엔(약 174조 원)에 달하는 대규모 추가경정예산안을 통과시키며 확장 재정을 밀어붙이고 있는 다카이치 사나에 정권과 엇박자가 날 경우 자칫 시장이 받을 충격을 고려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230%대인 정부 부채, 이달 기준 역대 최대 수준으로 불어난 부동산 대출 규모도 뇌관이다. 이러한 배경을 두고 김유미 키움증권 투자전략팀장은 “일본이 공격적으로 금리 인상에 나서기는 어려운 상황”이라고 짚었다. 금리 인상의 속도 조절로 엔화 가치의 상승 효과 역시 제한적일 수 있다고 닛케이는 전망했다. 이날 금리 인상에도 엔화는 장중 155엔대 안팎을 유지하며 엔화 매도 압력을 벗지 못했다. 이진경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단기적으로 엔화 약세가 지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조양준 기자 mryesandno@sedaily.com장문항 기자 jmh@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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