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세 국립발레단 시작…5년마다 후원단체 늘려
올해엔 74년 만에 출범한 국립극단 후원회 동참
2014년부터 연극학교 운영해 배우들 양성
“민간 후원 탄탄하면 공연도 사랑받을 것”
올해엔 74년 만에 출범한 국립극단 후원회 동참
2014년부터 연극학교 운영해 배우들 양성
“민간 후원 탄탄하면 공연도 사랑받을 것”
배우 김수로는 “50세가 된 기념으로 공연예술계에 일조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출발, 5년마다 새로운 곳에 후원하겠다는 구상을 세웠다. 55세가 된 올해는 그가 자신의 뿌리라고 말하는 연극계를 지원하기 위해 국립극단 최초의 배우 후원자가 됐다. 이상섭 기자 |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제가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 김구, 안중근 선생님이긴 해요. (웃음)”
거창하게 과장하거나 비장하게 의지를 비친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도 무심히 툭 던지는 말들은 독립 열사처럼 흔들리지 않는 심지처럼 굳건했다.
정극은 기본, ‘감’ 찾는 게 그렇게나 어렵다는 코미디부터 신파까지 자유자재로 오간다. ‘꼭짓점 댄스’로 한 시대를 풍미했고, 개그맨들 기죽일 입담으로 예능에서도 훨훨 난다. 유쾌한 줄로만 알았던 배우 김수로의 이름 앞엔 언제부터인가 다른 수식어가 따라온다. 공연계의 ‘키다리 아저씨’다. 자신의 ‘뿌리’라고 말하는 연극판에 수십억 원을 쏟아붓고, 6년째 국립예술단체의 후원자로 이름이 새겼다. 올해엔 국립극단 최초의 ‘배우 후원자’가 됐다.
최근 서울 명동예술극장의 후원회 라운지에서 만난 그는 “사람들은 돈이 엄청나게 많아서 후원한다고 생각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고 손을 젓는다. 잠시 말을 고르던 그는, 오랜 신념을 곱씹듯 이렇게 말했다.
“제가 하는 건 미미하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전 ‘30%의 법칙’을 지켜요. 제가 번 돈의 30%는 무조건나를 위해 쓰자고요. 물론 그게 연극이기도 하지만, (후원, 지원에) 가진 걸 다 쏟는 것도 아니에요. (웃음) 제게 후원은 돈의 문제가 아니라 삶의 태도이자 습관이에요.”
50세에 국립발레단, 이번엔 국립극단…김수로의 ‘후원 로드맵’
50세, 55세, 60세…. 그에게는 일종의 ‘후원 로드맵’이 있었다. “50세가 된 기념으로 공연예술계에 일조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출발, 5년마다 새로운 곳에 후원하겠다는 구상이었다.
“불모지(연극)는 이미 하고 있으니, 가장 활활 타는 곳을 밀어주고 싶어 저만의 후보를 정하고 국립예술단체들의 공연을 쭉 보기 시작했어요. 그때 발레가 보이더라고요.”
한국 발레는 지난 2020년 코로나로 세상이 멈췄을 때, 놀랍도록 성장했다. 그는 “당시 ‘잘 되는 장르를 밀어줘 넓은 세상으로 더 많이 향하면 위상이 달라지겠다’는 생각에 작게나마 후원하게 됐다”고 말했다.
5년이 지나 쉰다섯이 된 그는 자신의 ‘텃밭’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고 했다. 때마침 지난해 국립극단 후원회가 출범, 5년 주기 로드맵의 두 번째 프로젝트는 자연스럽게 극단으로 향했다.
국립극단 최초의 배우 후원자로 최근 열린 ‘후원회의 밤’에 참석한 김수로 [국립극단 제공] |
“사실 작년에 국립극단에 전화를 걸어 후원하겠다고 했더니 계좌를 안 주더라고요. (웃음) 별별 생각을 다 했어요. 후원한다는데 난 왜 안주지, 혹시 배우가 후원하겠다는 걸 불편하게 생각하나, 그런 생각도 들었죠.”
실제로 그랬다. 국립극단엔 배우 후원자가 없었기에 전화를 받고도 미적거렸다. 오랜 시간 한국 연극계의 근간이자 자부심으로 자리해 온 국립극단을 향한 연극인들의 마음이 각별한 만큼 국립극단도 마찬가지였다. 연극 예술인은 월급과 같은 안정적인 수입원이 보장된 직업군이 아니기에, 국립극단의 후원회 기금의 일부는 연극 예술인들의 창작 활동을 지원한다. 그러니 이들에게 ‘배우’는 도움을 주는 대상이지 받아야 할 대상은 아닌 것이다.
하지만 충무로 스타이자 매체 배우이면서 10여년 전에 연극계로 돌아온 김수로는 마침내 ‘후원회’에 이름을 올릴 수 있게 됐다.
두 번째 후원 역시 국립예술단체로 정한 데엔 이유가 있다. 그는 “국립 단체는 ‘우리나라 예술의 척추’”라며 “나라의 예술이 건강해야 가지도 잘 뻗어 나간다. 이곳이 무너지면 다 무너지기에 국립단체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사실 그는 오래전부터 공연예술계의 숨은 ‘기부 천사’였다. 연극계에선 “연극과 연극계에 대한 애정이 엄청나 묵묵히 보이지 않게 지원하는 일들이 많은데 알려지지 않았다”고 말한다. 김수로는 세간에 오르내리기보단 스스로 옳다고 생각한 일을 그저 묵묵히 해왔다. 다만 최근엔 자신을 계기로 자연스러운 후원 문화가 만들어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나서게 됐다.
“어떤 경우엔 어디에, 어떻게 후원하고 기부해야 할지 모르는 경우도 있더라고요. 영화나 TV에 나와 조금이라도 알려진 제가 마중물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후배 배우들도 ‘어? 수로 형도 하는데 나도 해볼까?’ 하고 관심을 갖지 않을까 싶었죠. BTS가 잘 되니 K-팝이 살듯, 성공한 배우들이 다시 연극의 뿌리에 물을 줘야죠.”
국립극단 후원회 기금 조성에 동참한 배우 김수로. 이상섭 기자 |
12년째 사비 털어 연극학교…“실타래 풀어주자는 심정으로 시작”
그의 후원 성과 중 하나는 지난 2014년 설립된 김수로의 ‘연극학교’다. 전국 연극영화과 학생들을 선발해 3개월간 트레이닝을 시킨 뒤, 공연까지 올린 프로젝트다. 김수로는 해마다 1억5000만원씩, 자비를 탈탈 털어 연극학교에 심혈을 기울였다. 덕분에 학생들은 업계 베테랑에게 무료로 배우고, 무대까지 설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됐다.
“당시 전국 대학에 연극영화과가 153개나 되더라고요. 제가 신입생이었던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전국 대학에 7개 정도밖에 없었어요. 공급은 폭발적으로 증가했는데, 졸업한 아이들이 갈 수 있는 곳은 예전과 같더라구요.”
연극계를 떠받칠 신예들이 재능을 펼칠 무대가 없다는 안타까움에 김수로는 가만히 두고 볼 수 없었다. 그는 “졸업과 동시에 백수가 되는 이 아이들에게 프로들이 반교육 형태의 가르침을 주고, 무대를 만들어주면 어떨까 싶었다”고 했다.
그는 무대의 경험이 배우로의 꿈을 지피는 도화선이 되고, 이 무대를 통해 눈에 띄어 새로운 곳으로 항해할 수 있는 발판이 되리라 봤다. 이에 김수로는 연극계에서 활동하는 스태프를 초빙하고, 최고 수준의 선생님들을 모셔 와 학생들의 내일에 모든 것을 걸었다. 영국왕립연극학교(RADA) 출신의 강민재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배우 박중훈·박건형 등 매체와 무대를 오가는 대선배들이 특강과 지도를 해주고, 성종완·신유청 등 스타 연출가들이 새싹들의 무대를 올렸다.
지난달 브로드웨이에서 쇼케이스를 가진 배우 김수로가 제작한 연극 ‘랭보’의 현지 배우들 [김수로 인스타그램] |
김수로의 연극학교가 이토록 오래 지속되리라고는 누구도 예상치 못했다. 그는 “처음엔 3년만 하려고 했는데 1기 공연이 끝나고 학생들이 서로 부둥켜안고 우는 모습을 보니 이건 내가 평생 해야 할 일이라고 깨달다”고 말했다.
1기부터 12기까지 오는 동안 많을 때 200여명의 학생이 이곳을 거쳐갔다. 처음 3년간은 36~38명의 학생들이 지원했고, 지난해엔 20여명의 학생이 연극학교를 찾았다. 입학을 위한 경쟁률도 무려 10대1이나 된다. 넷플릭스 ‘오징어 게임’의 노재원(2기), 드라마 ‘사내맞선’, ‘선재 업고 튀어’의 서혜원(4기)이 연극학교 출신이다.
‘맨땅에 헤딩’한 김수로의 애정과 의지에 더해 그가 가는 길의 든든한 지원군도 있었다. 카카오, 컴투스, 두나무 등과 같은 민간 기업이 김수로에게 힘을 보탰다. 국민MC 유재석은 매년 1000만원씩 지원할 정도로 통큰 후원자다. 김수로는 “재석이가 ‘형이 그만둘 때까지 돕겠다’고 했다”면서 “정말 삶의 태도와 가치가 남다른 친구이자 개인적으로는 무척 고마운 동생”이라며 벅차했다.
김수로는 최근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직속 ‘문화예술정책자문위원회’ 연극 부문 자문위원으로 위촉됐다. 그는 “연락을 받고 사실 좀 감동받았다”고 했다. 지난 12년간 어떤 정권에서도 관심을 두지 않았던 연극학교에 마침내 시선이 가닿았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개인의 후원과 지원을 넘어 정책적 제언을 하는 자리에 서게 됐으나 그는 “민물에 사는 물고기가 바다에 가서 적응하려면 시간이 필요하듯, 지금은 경청하는 단계”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분명한 청사진을 갖고 있었다. 김수로가 말하는 연극계의 발전을 위한 핵심 과업은 ‘작가 발굴’이다.
연극 ‘시련’에 출연한 배우 김수로 [김수로 인스타그램] |
“K-콘텐츠가 세계를 호령하지만, 정작 그 뿌리인 연극계엔 창작 대본이 많지 않아요. 작가들은 생계 유지가 안 되니 다들 드라마나 웹툰으로 떠나거든요. 고선웅 연출님의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 같은 걸작이 1년에 하나씩은 나와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선 나라에서 작가들에게 명예와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해요. 창작의 산실인 작가를 키우는 게 첫 번째 과제입니다.”
뿐만 아니라 하루하루 근근이 이어가는 창작자와 스태프들의 안정적인 활동도 도모해야 한다. 그는 “돈은 배우가 벌지 스태프들은 벌지 못한다”며 “건강한 생태계가 유지되려면 더 많은 잠재적 관객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지금의 공연계는 철저한 양극화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그는 “국립단체나 스타 배우가 출연하는 작품만 잘돼선 안 된다”며 “1, 2, 3등의 격차를 줄여야 하는데, 현재는 격차가 너무나 크다”고 말한다. 그는 이어 “좋은 작품을 만들고도 알려지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작품의 홍보를 뒷받침해 줄 파이프라인이 시급하다”면서 “전문가와 대중의 시각이 어우러져 별점을 주는 매체나 유튜브 채널과의 연결로 콘텐츠를 알릴 수 있는 창구를 개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연극은 배우 연기의 원천이자 생태계 공급원…K-콘텐츠의 뿌리”
요즘이야 스타 배우들의 연극 무대 귀환이 흔해졌지만, 10여년 전엔 드문 일이었다. 그 무렵 김수로가 무대로 눈을 돌리고, 그러다 후배들의 현실을 바라보고, 직접 무대까지 만들어주기 위해 제작사 겸 엔터테인먼트사(더블케이 엔터테인먼트)까지 차린 데엔 ‘배우로의 갈증’이 있었다.
김수로는 “한창 ‘신사의 품격’(2012, SBS)으로 잘 되고 있었지만 지금 내 연기가 이게 맞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고 했다. 4전 5기 끝에 연극과에 진학해 무대로 연기를 배웠고, 영화배우로 승승장구한 그는 “나의 근본을 따져보니 연극이었다”며 “대한민국에서 대체 불가의 최상위 연기 수업은 그때도 지금도 연극이었고, 나를 먹고 살게 해준 처음이 연극이었다”고 했다. 그는 연극을 배우들의 ‘연기력의 원천’이자, 생태계의 ‘공급원’이라고 확신한다.
“전 연극계를 영화와 드라마로 인재를 수혈해 주는 저수지라고 생각해요. 박해수와 같은 배우들이 잘 된 것은 우연이 아니라 연극이라는 뿌리에서 자랐기 때문이에요. 연극이라는 K-콘텐츠의 뿌리가 튼튼해야 한국 대중문화 전체가 건강해진다고 생각해요. 만약 이 뿌리가 흔들린다면 청룡영화상은 그저 꽃미남 배우들만 앉아 있을 거예요.”
연극 ‘코메디아 델라르떼’의 김수로 박건형 [김수로 인스타그램] |
그의 시선은 일찌감치 세계로 향했다. 일 년에도 몇 번씩 미국, 영국을 오가며 브로드웨이와 웨스트엔드의 문을 두드리고, 제작자로서 한국 무대에 선보일 작품을 발굴하고 있다. 지난달엔 그가 제작한 연극 ‘랭보’의 쇼케이스를 위해 브로드웨이에 다녀왔다. 연극학교 학생들을 위해 최근엔 영국 왕립연극학교(RADA)와 업무협약(MOU)을 체결, 선진 연기 교육 시스템을 국내에 도입하고 있다. 이곳은 ‘양들의 침묵’의 앤서니 홉킨스, ‘해리포터’ 시리즈의 앨런 릭먼이 나온 학교다.
김수로는 “전 세계 톱 배우의 50%가 영국 출신이다. 그 힘은 교육에 있다”며 “우리나라는 연극영화과만 많지, 제대로 된 아카데미가 부족하다. 라다와 협업해 우리 학생들에게 진짜 선진 연기를 가르치고 싶었다”고 했다. 입시를 위한 연기가 아닌 배우로의 기본기를 강화하는 교육이다.
세계 무대를 두드리기 위해 그는 돈키호테처럼 무모하게 덤볐다. 세계적 연출가와 그의 작품을 한국에 올리는 것도 심혈을 기울이는 일이다. 라다 출신 연출가로, 흑인 줄리엣과 ‘스파이더맨’ 톰 홀랜드가 로미오로 나온 파격적인 ‘로미오와 줄리엣’과 키아누 리브스가 나온 ‘고도를 기다리며’를 연출한 제이미 로이드에게 3년 전 ‘갈매기’ 판권을 구매하고 싶다며 무작장 들이댄 것도 김수로다운 접근이었다.
배우 김수로는 “50세가 된 기념으로 공연예술계에 일조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출발, 5년마다 새로운 곳에 후원하겠다는 구상을 세웠다. 이상섭 기자 |
“‘나 3000만원밖에 없는데, 살 수 있어? 우리 연극학교 와서 연출 좀 해줄래?’ 하면서 들이댄 거죠. 당연히 안될 줄 알았는데, 그 프로듀서에게 연락이 왔어요. 그렇게 교류가 시작됐어요.”
런던 코벤트 가든에 위치한 돈마 웨어하우스가 올리고 영국의 국민 배우 데이비드 테넌트가 주연을 맡은 ‘맥베스’는 2027년 김수로가 한국에서 올린다. 헤드폰을 끼고 관람하는 ‘바이노럴 사운드’ 기술로 심리적 공포를 극대화한 작품으로, 실험성과 창발성의 최극단에 자리한 무대다. 현재는 ‘프랑켄슈타인’의 번역 작업을 하고 있다. 연극학교 12기 학생이나 졸업생을 위한 무대에서 올리기 위해 탄탄한 원작을 발굴해 온 것이다.
그가 작품을 고르는 기준은 명확하다. 김수로는 “젊은 배우들이 많이 설 수 있는 작품, 장르를 불문하고 지금 이 시대와 내게 질문을 던지는 작품을 무대에 올리고 있다”고 했다.
누군가는 김수로에게 “돈도 안 되는 일을 뭘 그렇게 열심히 하냐”고 말한다. 팬데믹 당시 파산 직전까지 갔던 그였지만 보증금을 빼고, 차를 바꿔가며 기꺼이 ‘키다리 아저씨’가 됐다. 그는 “남은 인생은 좋은 일을 하며 살고 싶다”며 “한편으론 이러한 일을 통해 나 역시 성장하고, 인생의 퍼즐을 완성하는 듯한 느낌”이라고 했다.
“코로나 때 산소포화도가 떨어져 구급차에 실려 가 9일 동안 누워있었어요. 그때 내 인생엔 뭐가 남지, 하며 하나둘 돌아보니 해마다 3개월씩 연극학교를 통해 세상에 나온 이 아이들이 남더라고요. 여한이 없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