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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북한이 MDL 침범해도…사격 자제하라는 국방부

중앙일보 이유정.이철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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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북한이 MDL 침범해도…사격 자제하라는 국방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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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23년 북한군이 GP를 철거했던 장소에 경계호를 조성하고 고사총(무반동총)을 배치한 모습. 국방부=뉴스1

지난 2023년 북한군이 GP를 철거했던 장소에 경계호를 조성하고 고사총(무반동총)을 배치한 모습. 국방부=뉴스1


국방부가 북한군이 군사분계선(MDL)을 넘어 남측 관할 지역을 침범, 경고 사격을 하기에 앞서 "사격이 반드시 필요한 지 상황 평가부터 면밀히 하라"는 방침을 군에 내린 것으로 나타났다. 군은 이를 사실상의 '경고사격 자제' 지시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18일 복수의 소식통에 따르면 국방부 고위 관계자는 지난 10월 말부터 최소 두 차례 합동참모본부 지하의 지휘통제실을 찾아 "전방 작업 중인 북한군의 MDL 침범 시 경고사격을 할 때는 남북 간 충돌로 이어지지 않게끔 상황평가를 면밀히 하라"고 강조했다. 유사시가 아닌데 합참이 아닌 국방부 관계자가 작전 중인 합참 통제실을 찾은 것 자체가 다소 이례적이다.

비무장지대(DMZ) 내에서 상황이 발생했을 때 군의 작전수행 절차는 경고방송→경고사격→조준사격 순서다. 100~50m 등 기준선을 정해 북한군의 남하 정도에 따라 순차 대응하는 게 원칙이다. 경고방송을 해도 계속 남하하면 K6 중기관총(구경 12.7㎜)으로 미리 정한 표적지를 향해 경고사격을 하게 된다. 경고사격 뒤에도 계속 남하해 일정 거리 안에 들어오면 이를 저지하기 위한 조준사격도 가능하다.

국방부 고위 관계자의 발언은 사실상 이런 우리 군의 대응 절차를 점검하라는 취지로 읽힌다. 사격을 결정하기에 앞서 '상황 평가'를 강화하라고 지시한 셈이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한 소식통은 “누가 들어도 경고사격을 자제하란 취지였다”고 말했다. 작전수행절차나 교전수칙을 바꾸라는 직접적인 명령은 아니지만, 사실상 경고사격을 줄이란 지시로 받아들였다는 얘기다.

안규백 국방부 장관 역시 내부 회의에서 “MDL 침범 대응 시 기존처럼 기계적으로 대응하지 말고 상황에 따라 판단하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이 역시 기존 절차에 따른 경고사격은 자제하란 취지로 이해됐다는 게 회의 참석자들의 전언이다. 또 다른 소식통은 “국방부보다 윗선의 지침으로 이해했다”고 전했다.


실제 이런 방침이 하달된 뒤 북한군이 MDL을 침범했을 때 전방 부대에서 경고 사격을 위한 상황평가 단계에 상당한 시간을 소요하고 있다고 한다. MDL 침범은 주권 침해로 이어질 수 있는 도발 행위인데, 이를 저지하기 위한 경고사격을 결정하기까지 ‘주관적 요건’ 평가가 기존보다 길어졌다는 뜻이다.

원칙적 대응을 중시하는 합참 내에서는 우려스러운 목소리도 감지된다. 경고사격 자제는 곧 '말로 타일러 돌려보내라'는 뜻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 예비역 장성은 "명시적인 자제 명령은 없었다 해도 최전방을 맡고 있는 지상작전사령부 예하 전방 부대로선 소극적 대응을 할 수 밖에 없다"면서 "기존 절차대로 경고사격을 했다가 문제가 생길 경우 전방 부대가 모든 책임을 지게 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적대적 두 국가 관계’ 선언에 따라 지난해 4월 이후 MDL 부근에선 북한군의 침범 사례가 늘고 있는 중이라 이런 방침에 더 우려가 제기되는 분위기다. 도발의 의도가 없는 경우도 있지만, 군은 항상 북측의 기습 공격 내지는 기만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경계 작전을 펼 수 밖에 없다. 합참에 따르면 북측 작업 인원 대다수는 삽·곡괭이 등의 작업 도구만 소지한 비무장 상태지만, 작업 현장 사전 탐지를 위한 인원은 개인 화기로 무장하고 있다. 올해 4월 8일 강원 고성 지역에서 소총 등으로 무장한 북한 병력 약 20명이 MDL을 넘어 진입, 한 때 긴장된 분위기가 조성된 것도 그래서다.


특히 남북 간 우발적 충돌 등 사고를 막기 위해 국방부가 남북 군사회담을 지난달 17일 제안했지만, 북한은 이를 의도적으로 무시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국방부의 사실상 경고사격 자제 지침은 아군의 대응 수위 만 낮춘 격이 될 수 있다. 대북 유화 정책을 펴기 위한 사전 정지 작업 아니냐는 말도 군 안팎에서 나온다.

앞서 올해 8월 북한은 담화를 통해 군의 경고사격을 “엄중 도발”로 규정하며 반발하기도 했다. 총참모부 부총참모장 고정철 육군 중장 명의 담화에서 북한은 “한국군 호전광들이 남쪽 국경선 부근에서 우리 군인들에게 10여발의 경고사격을 가하는 엄중한 도발을 했다”면서 “방해 행위가 지속될 경우 군사적 도발로 간주, 상응한 대응을 할 것”이라고 위협했다.

이와 관련, 국회 국방위원회 강대식 국민의힘 의원에 따르면 북한군은 지난달 1일부터 23일까지 총 10차례 MDL을 침범했는데, 경고 사격을 한 건 여섯 차례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네 차례는 경고방송만으로 북한군을 퇴각 시켰다. 11월 이전 발생한 6차례의 MDL 침범 사례 땐 모두 ‘경고방송-경고사격‘을 진행했다. 다만 합참은 "경고방송 만으로 북한군이 퇴거했기 때문"이라며 정상적인 절차를 따랐다는 입장이다.


북한군은 이달 들어선 동계훈련을 위해 전방 작업을 사실상 중단했는데, 내년 3월 무렵 전방작업을 재개한다면 MDL 침범이 잦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철재 국방선임기자, 이유정 기자 uu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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