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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대통령 이번 한번이 아니다"…환단고기에 치떠는 학계, 왜

중앙일보 강혜란.하남현.최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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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대통령 이번 한번이 아니다"…환단고기에 치떠는 학계,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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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원 기자

김주원 기자


이재명 대통령이 동북아역사재단 업무보고에서 언급한 『환단고기(桓檀古記)』와 ‘환빠 논쟁’에 역사학계가 들끓고 있다. 주류 학계는 대통령의 언급을 계기로 합동 성명까지 내며 이른바 ‘유사역사학’ 타도에 꽁꽁 뭉치는 모양새다.

한국고대사학회 등 역사·고고학계 48개 학회는 지난 17일 “명백한 위서인 『환단고기』를 바탕으로 한 ‘사이비역사’는 부정선거론만큼이나 터무니없는 주장”이라며 “이재명 정부와 여야 정치권은 ‘사이비역사’에 대해 명확하게 선을 긋고 단호한 입장을 취하라”는 성명을 냈다. 앞서 12일 이 대통령은 생중계 업무보고 중 박지향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에게 “역사 교육과 관련해 ‘환빠’(환단고기 신봉자) 논쟁이 있죠?” “환단고기는 문헌이 아닌가” 등의 발언을 했다. 대통령실이 이틀 뒤 “대통령의 환단고기 관련 발언은 이 주장에 동의하거나 이에 대한 연구나 검토를 지시한 것이 아니다”라고 진화했음에도 성명은 ‘어떠한 정부 지원도 하지 말라’고 선제 요구했다. 한국고대사학회 여호규 회장은 18일 통화에서 “검증되지 않은 역사가 공공 영역으로 들어와선 곤란하다”며 “이들이 정치세력화해 정책에 영향을 미칠 위험성을 경고한 것”이라고 말했다.

역사·고고학계가 발 빠른 강경 대응에 나선 건 2014~2017년 격렬했던 이른바 ‘한국 고대사 논쟁’ 당시의 트라우마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환단고기를 추종하거나 이 같은 ‘국뽕’ 고대사에 경도된 재야 역사 단체들 때문에 주류 학계의 고대사 관련 연구·사업이 여러 차례 좌초됐기 때문이다. 동북아역사재단의 ‘동북아역사지도 사업’ 폐기가 대표적이다. 2008년 중국·일본의 한국사 왜곡에 대응하기 위해 추진된 사업은 박근혜 정부 때인 2015년 일부 국회의원과 재야 학자들이 “식민사관에 입각했다”고 비판하면서 이듬해 중단됐다. 재단이 2007년부터 하버드대 한국학연구소와 함께 추진하던 ‘한국 고대사 프로젝트’도 비슷한 이유로 중단됐다.



“환단고기는 사이비, 정부 입장 밝혀라”

전남과 전북·광주광역시 등이 24억원을 들여 집필한 ‘전라도 천년사’나 경남 김해시가 2017년부터 7년간 집필한 ‘김해시사-가야사편’도 『일본서기』 인용을 문제 삼아 출간이 보류되거나 축소 발행됐다. 2023년 경남 합천 ‘가야고분군’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때도 일부 문구를 문제 삼아 결국 수정시켰다.

익명을 요구한 역사학 교수는 “취미로, 사적으로 역사 공부를 하는 이들이 기존 학계를 ‘식민사학’ ‘강단사학’으로 공격하고, 오랜 연구 성과와 합의물을 농락하는 현실”이라면서 “그간 근대사 관련 ‘뉴라이트 역사학’의 문제가 부각되긴 했지만 고대사에서 ‘국뽕’을 자극하는 민족주의 유사역사학의 폐해도 엄청나다”고 말했다.

“사이비 학자, 기관장 자리까지 노려”

나아가 이 대통령의 ‘환단고기’ 거론이 일회성 발언이 아닐 수 있다는 게 학계의 우려다. 앞서 이 대통령이 대선후보 신분이던 지난 5월 더불어민주당과 ‘전국역사단체협의회’(역단협)가 국회의원회관에서 정책 협약식을 가진 것 등이 근거다. 이재범 전 국사편찬위원에 따르면 “역단협은 『환단고기』를 진서라고 인정하는 사람이 많은 대표적인 단체”다. 역단협은 지난 8월엔 국회의원회관에서 ‘역사 바로 세우기 범국민 전진대회’를 열어 대통령 공약 가운데 하나이던 ‘학교 역사 교육 강화 및 역사 연구 기관 운영의 정상화’ 실천을 촉구하기도 했다. 이들 주장 중엔 ‘정부는 역사 기관들을 전면적으로 개혁하고, 청문회를 거쳐 기관장의 역사의식을 검증하는 것을 법제화’하란 것도 있었다. 한 역사학자는 “정상적인 검증 절차로는 연구 기금을 딸 수 없는 사이비 학자들이 기관장 자리까지 노리고 있다”면서 “이번에 박지향 이사장이 타깃이 된 것도 ‘뉴라이트’로 분류되는 박 이사장을 코너에 몰아 궁극적으로는 동북아역사재단을 접수하려는 의도일지 모른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이른바 유사역사학자들이 각종 저술·유튜브·방송 등을 통해 대중의 역사 인식을 넓혀 왔던 점을 지적하면서 주류 학계와 대중 간의 괴리가 지금 같은 구도를 낳았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또 정치평론가 신율 명지대 교수는 “『환단고기』처럼 학계가 일관되게 위서라고 평가 내린 것에 정치권이 목소리를 얹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면서 “학술 논쟁은 전문가에게 맡기고 정치인은 학계의 결론을 존중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환단고기』=환국·배달국·단군조선 순으로 한민족 고대국가의 역사를 서술한 책. 이에 따르면, 우리 민족의 활동 무대는 한반도뿐 아니라 유라시아 대륙까지 아우르며, 세계 4대 문명의 기원이 우리 민족의 이동 경로와 연결된다. 1911년 계연수라는 인물이 썼다는 주장도 있지만, 1979년 이유립이 간행한 ‘위서(僞書)’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강혜란·하남현·최민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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