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로 건너뛰기
검색
매일경제 언론사 이미지

“어머니 기저귀 갈다가 끔찍한 상상을”…간병하던 효자, 어느새 ‘신불자’

매일경제 차창희 기자(charming91@mk.co.kr)
원문보기

“어머니 기저귀 갈다가 끔찍한 상상을”…간병하던 효자, 어느새 ‘신불자’

속보
트럼프미디어 42% 폭등…원자력 TAE 테크와 합병
가족 간병인 평균 10년 매달려
월 수백만원 간병비에 생활고
경제·심리적 파산 겪으며 갈등


요양원.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 없음. [연합뉴스]

요양원.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 없음. [연합뉴스]


“효심으로 버텼는데, 통장이 비어버렸습니다.”

전남의 한 도시에서 인지능력이 떨어진 모친을 홀로 돌보고 있는 장남 김수철 씨(64·가명)는 ‘간병파산’으로 고통을 받고 있다. 김씨는 3년 전 홀로 계신 모친 A씨(89)가 중증 치매 판정을 받으면서 인생이 뒤바뀌었다. 처음에는 요양보호사를 썼지만, 해 질 녘이 되면 A씨의 불안 증세와 폭언이 심해져 요양보호사들이 줄줄이 그만뒀다. 고심하던 김씨는 결국 본인이 직접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취득해 A씨를 돌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퇴직금과 모아둔 돈은 간병비와 생활비로 빠르게 소진됐다. 한국의 각종 질환 간병비는 월평균 370만원에 달한다. 이는 65세 이상 가구 중위소득의 1.7배에 달하는 액수로, 김씨와 같은 은퇴자들이 감당하기 어렵다. 24시간 A씨 곁을 지켜야 하니 재취업은 꿈도 꿀 수 없고, 심리적 한계에 다다르고 있다는 게 그의 한탄이다.

치매환자에 대한 돌봄 공백이 여전한 가운데 가족들이 돌봄 부담을 떠안으면서 경제적·정신적 부담이 커지고 있다. 특히 노인이 노인을 간병하는 ‘노노(老老) 간병’이 사회적 문제로 부상하고 있다. 노노간병으로 인한 갈등이 확산되고 간병살인까지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학대 피해노인 중 치매 환자 비율

학대 피해노인 중 치매 환자 비율


17일 보건복지부의 ‘노인 학대 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전체 노인 학대 피해자 중 치매 진단을 받았거나, 의심되는 경우는 1721명(24%)에 달했다. 학대받은 노인 4명 중 1명은 치매 노인이라는 뜻이다. 간병 학대의 주원인은 고령화와 간병 부담 증가다. 특히 간병 피로와 간병 스트레스가 간병인의 심리적·신체적 부담을 가중해 간병살인까지 이어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

경찰대 치안정책연구소에 따르면 사적 간병비는 최대 연간 8조원까지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치매 노인들은 평균 5.1개의 만성질환을 가지고 있다. 또 가족 간병인들은 평균 9.4년 이상 간병을 전담하고 있다.


오랜 기간 지속되는 간병으로 인해 경제력을 상실한 보호자가 결국 돌봄 비용을 감당하지 못해 빈곤층으로 추락하는 간병파산이 늘어나는 이유다. 특히 미래에 대한 희망이 사라질 때 ‘함께 생을 포기하고 싶다’는 극단적 선택까지 고려하게 된다.

정재훈 고려대 의대 예방의학교실 교수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치매 노인을 돌보는 가족 중 45.8%가 “심각한 부담을 경험했다”고 밝혔다. 간병 가족의 33%는 자살 충동을 경험했고, 78%가 직장생활에 지장이 있다고 답했다.

실제 올해 중반엔 치매와 지병이 있는 친형의 목을 졸라 살해한 혐의로 60대 동생이 재판에 넘겨진 바 있다. 치매를 앓는 아내를 둔기로 내려친 70대 남성이 살인미수 혐의로 경찰에 붙잡히기도 했다.


형사재판에서 선고가 확정된 간병살인 사건은 2007년 7건에서 2020년 30건으로 급증했다. 아직 국가 공인 간병살인에 대한 통계는 없다. 가해자의 극단적 선택으로 공소권 없음 처리됐거나, 수사·재판 과정에서 간병 요인이 배제된 경우를 포함하면 고령화에 따른 간병살인 사례는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김성희 치안정책연구소 실장은 “포괄간호서비스 제도 등 간병과 간호가 통합될 수 있는 공적 의료 시스템의 확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