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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교포 이상일 감독의 질문[정덕현의 끄덕끄덕]

이데일리 최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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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교포 이상일 감독의 질문[정덕현의 끄덕끄덕]

서울맑음 / 1.0 °
혈통과 재능의 모순 그린 일본영화 '국보'
내부인과 외부인의 경계선에 물음표 던져
재일교포의 삶, 다문화 가정의 아이들
달라진 사회, 우린 함께 걸을 수 있을까
[정덕현 문화평론가]아내의 직장동료로부터 입양해 강아지를 키운 적이 있다. 이름은 별이.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가 한창 인기 있을 때 와서 그렇게 지었다. 별이는 8년간 우리와 함께 지내다가 혈관육종으로 먼저 저 별로 떠났다. 별이와 함께 지내는 일은 쉽지 않았다. 아파트에서 키워야 했고 거실 한편에 별이의 자리를 내줘야 했다. 배변훈련도 해야 했고 매일 산책도 시켜줘야 했으며 낯선 사람이 올 때도 짖지 않게 사회성 훈련도 해야 했다. 가족여행을 가는 것도 쉽지 않았다. 반려견이 함께할 수 있는 숙소가 있다면 모를까. 가족 중 누구 한 명은 포기하고 별이와 있어야 했다.

반려견과 지내는 것 자체가 서툴러 제대로 먹이지 못한 탓에 수의사 선생님에게 꾸중을 듣기도 했고 경계심 탓에 자주 짖어 아파트 이웃들의 눈치를 보기도 했다. 이빨이 나자 가려워서인지 얼굴이 닿는 벽지는 모두 뜯어놨고 가구와 소파도 갉아 놓기 일쑤였다. 비용도 만만찮았다. 의료보험 적용이 안 돼 사람 병원비의 열 배나 되는 비용을 쓰기도 했다. 아내는 출근하고 아이들은 학교에 가고 나면 별이와 함께 지내는 건 필자의 몫이 됐다. 그렇게 8년 동안 지내며 정이 들었지만 속절없이 먼저 저 별로 떠났다. 필자는 그 후로 다른 강아지를 키운 적이 없다. 누군가를 집안에 들인다는 게 얼마나 많은 걸 내줘야 하고 책임 또한 따른다는 걸 알게 됐기 때문이다.

이상일 감독의 영화 ‘국보’를 보면서 엉뚱하게도 별이가 떠올랐다. 일본의 전통문화인 가부키를 소재로 한 이 영화가 외부인과 내부인의 경계를 다루고 있고 예술이 어떻게 그 경계를 뛰어넘는가를 보여주고 있어서였을 것이다.

이 영화에는 가부키에 천부적인 재능을 지녔지만 야쿠자의 피를 이어받은 기쿠오(요시자와 료 분)와 가부키 명문가의 후계자인 슌스케(요코하마 류세이 분)가 등장한다. 아버지가 눈앞에서 살해당하고 갈 곳 없어진 기쿠오는 가부키 명문가로 들어와 슌스케와 함께 최고의 온나가타(여성의 역할을 하는 배우)가 되기 위해 경쟁한다. 재능이 남달라 스승조차 자식인 슌스케가 아닌 기쿠오에게 이름을 물려주려 할 정도지만 외부인이 뚫고 들어가기 어려운 가부키의 세계는 기쿠오에게 깊은 절망감을 준다. 가부키는 가문의 후계자가 선대의 이름을 물려받는 보수적인 전통을 갖고 있다.

“내겐 나를 지켜줄 피가 없어. 할 수만 있다면 네 피를 컵에 담아 벌컥벌컥 마시고 싶어.” 슌스케 대신 스승의 선택을 받아 무대에 서게 되지만 긴장감에 손을 덜덜 떨며 분장을 하지 못하는 기쿠오는 슌스케에게 그렇게 토로한다. 그 토로에는 아마도 재일교포로 살아왔던 이상일 감독의 마음이 담겼을 것이다. 한국인의 피를 갖고 있지만 일본인으로 살아온 그가 내부인과 외부인 사이의 경계인으로서 지녔을 소회가 기쿠오의 절망감에서 고스란히 느껴진다.

‘국보’는 기쿠오의 입장에서 외부인이 내부로 들어가기가 얼마나 힘겨운 일인가를 그리고 있지만 정반대로 슌스케의 입장에서 내부인이 외부인을 받아들이는 일 또한 얼마나 쉽지 않은가를 보여준다. 자신이 온당히 누릴 수 있었던 것들을 나눠야 하고 때론 빼앗기는 상실감도 겪을 수 있다. 내 것의 일부를 내줘야 가능한 일이다. 특히 기쿠오와 슌스케는 경쟁하지만 함께 자라며 더할 나위 없는 우정을 나눈 사이다. 그러니 현실이 만들어내는 상실감은 그 우정을 위태롭게 할 정도로 더더욱 크지 않겠는가.


재일교포 이상일 감독의 영화 ‘국보’의 한 장면(사진=NEW)

재일교포 이상일 감독의 영화 ‘국보’의 한 장면(사진=NEW)


‘국보’가 보여주는 내부인과 외부인의 관점은 현재의 우리 사회에도 고스란히 적용된다. 출생률이 갈수록 떨어져 고령화 사회가 되고 있는 한국은 갈수록 외국인 거주자들이 늘고 있다. 장기여행객들도 있지만 이곳에 정착한 근로자들이 많고 그로 인해 다문화 가정도 부쩍 늘었다. 이제 TV에서 방영되는 오디션 프로그램을 봐도 다문화 가정에서 자라난 아이들이 적지 않다. 예를 들어 최근 종영한 음악 예능 프로그램 ‘우리들의 발라드’에는 다문화 가정에서 자란 이지훈과 제레미가 출연했다. 그만큼 다문화 가정이 이제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니라는 걸 이들은 말해준다. 실제로 최근 지방에는 한때 지역 소멸 위기까지 거론됐지만 외국인 근로자들이 들어오면서 새롭게 살아나고 있는 곳이 적지 않다. 이제 외부인을 들이는 일은 선택이 아닌 생존의 문제로도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달라진 시대에 우리는 외부인에 그만큼 관대하고 포용적일까. 사회면을 종종 장식하는 외국인 근로자 차별(나아가 폭력까지)에 대한 기사들을 보면 그렇지만은 않은 듯하다. 외부인을 들인다는 건 내부인의 나눔과 배려, 책임이 따르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중문화 안에서 나타나는 양상은 고무적이다. 이들에 대한 편견 없는 환대가 엿보이기 때문이다. ‘우리들의 발라드’에서 이지훈은 대중의 사랑을 받아 전체 2위를 차지했고 제레미도 본선 2라운드, 3라운드에서 탈락했지만 계속 추가 합격해 세미파이널까지 올라갔다.

또 ‘국보’는 어떤가. 재일교포 감독이 만들었지만 1000만 관객을 돌파하며 역대 일본 실사영화 흥행 1위를 기록했다. 적어도 예술과 문화의 영역에 있어서는 내부인과 외부인의 경계가 과거보다는 흐릿해지고 있다는 증거다.


이제 다문화 사회에 접어든 우리는 어떤 마음으로 외부인들을 받아들여야 할까. ‘내겐 나를 지켜줄 피가 없다’며 벌벌 떨고 있는 기쿠오를 대신해 그 얼굴에 붉은 선을 그어 분장을 해준 슌스케의 마음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그건 마치 피를 나눠주는 것만 같은 행위가 아니었던가.

8년간 함께 지내다 먼저 떠난 별이가 여전히 그립다. 어느새 우리 가족의 일원이 됐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