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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란으로 가득 찬 ‘인권의날’[금주의 B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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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란으로 가득 찬 ‘인권의날’[금주의 B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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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서울 중구 안중근 의사 기념관에서 열린 인권의날 기념행사에 참석하던 안창호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이 국가인권위원회 바로잡기 공동행동에 가로막혀 있다. 이준헌 기자

10일 서울 중구 안중근 의사 기념관에서 열린 인권의날 기념행사에 참석하던 안창호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이 국가인권위원회 바로잡기 공동행동에 가로막혀 있다. 이준헌 기자


인권을 말하는 자리는 대개 소란스럽다. 침묵이 문제일 때도 있지만, 말이 넘쳐 본질을 가릴 때도 있다. 지난 10일, 제77회 인권의날 기념식이 열린 그날, 나는 이 소란의 한가운데에 서 있었다.

국가인권위원회 바로잡기 운동본부 회원들이 안창호 인권위원장의 행사장 입장을 막아섰다. 계엄 사태 앞에서 인권위가 제 역할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며. 안 위원장은 취임 이전부터 차별금지법 제정과 성소수자 인권 문제에 대해 일관되게 보수적인 견해를 밝혀왔다. 인권의 가치를 훼손해왔다고 여겨지는 인물이 인권상을 수여하는 장면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분노가 낯설지 않다.

그러나 질문은 남는다. 상을 거부할 권리는 누구의 것인가. 그것은 수상자의 선택이다. 다른 사람들이 시상식을 막을 권리는 없다. 항의와 표현은 민주주의의 권리지만, 봉쇄와 저지는 또 다른 인권침해다. 인권을 말하는 방식이 인권을 훼손하는 순간, 명분은 흔들린다.

곧이어 맞불 집회가 이어졌다. 안 위원장 지지자들이 마이크를 들었다. 고성 위에 고성이 쌓였고, 행사 진행은 거듭 미뤄졌다. 안 위원장이 진입을 시도할 때마다 이들은 주변을 에워싸고 상대편을 밀어냈다. 안 위원장이 자리를 뜨면 다시 자리를 잡고, 스피커의 출력을 높였다. 지지자들은 안 위원장을 치켜세우며 윤석열 전 대통령의 인권에 대해 말했다.

충격은 반동을 부르고, 반동은 다시 더 큰 소음을 낳는다. 인권의날은 그렇게 소리의 전쟁터가 됐다. 지난 인권의날은 하나의 역설로 내게 남겨졌다. 인권을 둘러싼 논쟁이, 가장 인권답지 않은 방식으로 펼쳐졌기 때문이다.

사진·글 이준헌 기자 heo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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