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로 건너뛰기
검색
한겨레 언론사 이미지

‘까마귀 청소부’ 판타지가 알려준 것 [남종영의 인간의 그늘에서]

한겨레
원문보기

‘까마귀 청소부’ 판타지가 알려준 것 [남종영의 인간의 그늘에서]

서울맑음 / -0.8 °
담배꽁초를 주워 와 땅콩과 바꾸는 까마귀. 코비드 클리닝 유튜브 갈무리

담배꽁초를 주워 와 땅콩과 바꾸는 까마귀. 코비드 클리닝 유튜브 갈무리




남종영 | 카이스트 인류세연구센터 객원연구위원



최근 소셜미디어 알고리즘을 타고 ‘스웨덴 까마귀 청소부’ 기사와 영상이 퍼졌다. 스톡홀름 근처의 소도시 쇠데르텔리에에서는 야생 까마귀가 길거리에 버려진 담배꽁초를 물어와 기계에 넣으면, 기계가 이를 인식해 보상으로 땅콩 더미를 내어준다. 인간이 어질러 놓은 쓰레기를 영리한 동물이 대신 치워주는 모습에 사람들은 환호했다. 경제적 논리도 그럴싸하다. 사람이 기계를 쓰거나 손으로 꽁초 하나를 줍는 비용은 약 2크로나(약 320원)지만, 까마귀에게 시키면 20외레(약 32원)면 충분하다는 것이다.



훈련 방식은 미국의 심리학자 스키너가 주창한 행동주의 심리학, 즉 ‘조작적 조건 형성’을 사용했다. 기계 근처에 가면 먹이를 주고, 그다음엔 물체를 물어 오면 주고, 마지막엔 담배꽁초를 넣어야만 주는 식으로 단계를 높였다. 이론적으로는 완벽하다.



그렇다고, 수천마리의 야생 까마귀를 가르치는 게 가능하단 말인가? 좀 이상해서 자세히 살펴보니, 일단 최근 떠도는 기사는 2022년 스타트업 ‘코비드 클리닝’이 까마귀 청소부 프로젝트를 개시하겠다며 내놓은 것의 재탕이었다. 더 놀라운 사실도 발견할 수 있었다. 이 업체는 불과 두달 전인 지난 10월3일 파산했다. 대대적으로 홍보한 것과 달리 사업을 시작하지도 못하고 조용히 문을 닫았다.



까마귀 청소부 뉴스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08년 미국의 해커 조슈아 클라인은 테드(TED) 강연에서 ‘까마귀 자판기’를 소개하며 세계적인 스타가 됐다. 그는 야생 까마귀가 동전을 주워 오면 거리가 깨끗해질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그가 보여준 영상은 실내에서 기르던 사육 까마귀를 이용한 연출이었음이 밝혀졌다. 클라인의 말을 믿고 기사를 쓴 뉴욕타임스도 정정 보도를 냈다.



2017년에는 네덜란드 스타트업 ‘크라우디드 시티’가 비슷한 아이디어로 언론의 주목을 받았지만, “자원 부족과 까마귀 생태에 미칠 영향을 확신할 수 없다”며 프로젝트를 중단했다. 2018년 프랑스의 한 테마파크는 소수의 사육 까마귀를 이용한 점에서 달랐다. 이 아이디어는 몇년마다 좀비처럼 부활해 언론을 탄다.



왜 까마귀 청소부 아이디어는 성공하지 못할까. 첫째는 동기의 지속성 문제다. 야생 까마귀는 배가 부르면 더 이상 노동하지 않는다. 땅콩이 넘쳐나는 순간 기계는 무용지물이 된다. 둘째, 담배꽁초 필터는 비소, 납, 니코틴, 미세플라스틱이 있다. 야생 까마귀를 유해 폐기물 처리에 동원하는 것은 윤리적 논란을 부를 수밖에 없다.



역사적으로 인간과 야생동물의 성공적인 협력 사례가 존재한다. 지금도 브라질 라구나의 어부들은 돌고래가 물고기 떼를 몰아오면 그물을 던져 사냥감을 나누고, 탄자니아의 하드자족은 꿀잡이새를 길잡이 삼아 벌꿀을 채취하고 밀랍을 나눈다. 이들은 까마귀 청소부와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인간과 돌고래, 꿀잡이새의 협력은 자연 속에서 오랜 시간 ‘몸과 몸의 대면’을 통해 형성된 상호 신뢰의 프로토콜이다. 반면 까마귀 청소부는 자연의 메커니즘에서 아주 일부를 떼어 개방된 ‘스키너 심리 상자’에 넣은 것일 뿐이다. 개체마다 복잡하고 다양한 삶의 세계를 갖는 야생동물에게 보상을 주는 방식으로 조작하기란 쉽지 않다.



그런데도 우리가 끊임없이 실패하는 이 뉴스에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똑똑한 동물이 인간이 저지른 실수를 해결해 준다는 ‘매력적인 판타지’가 우리의 죄책감을 덜어주기 때문일 것이다. 프로젝트 초기, 스웨덴의 한 공무원은 이런 말을 남겼다. “우리는 까마귀에게 꽁초 줍는 법을 가르칠 순 있지만, 사람들에게 꽁초를 버리지 말라고 가르칠 순 없는 것 같다.”



우리는 자신을 바꾸는 대신 누군가의 힘을 빌려 해결하려 든다. 하지만 가장 확실한 방법은 첨단 기술이나 똑똑한 까마귀를 이용하는 게 아니라 흡연자가 쓰레기통에 꽁초를 버리는 것이다. 꿈 깨시라! 기후·환경 위기 시대에 우리의 죄를 사하고 우리를 구원할 메시아는 없다. 인간이 만든 문제는 인간이 풀어야 한다는 평범한 진리를 실패한 까마귀 청소부가 보여준다.



윤석열? 김건희? 내란사태 최악의 빌런은 누구 ▶

내란 종식 그날까지, 다시 빛의 혁명 ▶스토리 보기

▶▶한겨레 뉴스레터 모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