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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美, 주당 14원에 지분 14.5% 확보 가능···"핵심 정보인데 비공개" [시그널]

서울경제 이덕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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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美, 주당 14원에 지분 14.5% 확보 가능···"핵심 정보인데 비공개" [시그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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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사 지분 10% 넘겨준 데 이어
사업법인 지분 인수 권리 부여해
투자 성사 때는 미국 정부 '잭팟'
이 기사는 2025년 12월 17일 17:16 자본시장 나침반 '시그널(Signal)' 에 표출됐습니다.



고려아연이 미국에 11조 원 규모의 투자를 집행하며 미국 정부에 현지 사업 법인의 지분 다량을 직접 인수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했다. 이는 고려아연의 본사 지분을 미국 전쟁부(국방부)가 최대주주로 있는 미국 합작법인(JV)에 넘겨주는 것과는 별개로, 미 국방부가 현지에서 제련 사업을 직접 운영하는 고려아연 사업 법인의 지분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출자 구조는 고려아연 경영과 투자 판단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주요 내용이지만 공시되지 않았다. 미국 정부는 별다른 리스크 없이 우리나라의 핵심 기술을 활용할 수 있는 ‘꽃놀이패’를 쥐게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17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고려아연은 미국에서 제련 사업을 담당할 법인 크루시블메탈즈유한회사(Crucible Metals, LLC)의 지분 다량을 인수할 수 있는 권리(워런트)를 미 국방부에 부여했다. 양측이 합의한 1주당 인수가는 0.01달러(약 14원)다. 이 가격으로 14.5%의 지분을 확보할 수 있고 제련소 기업가치가 150억 달러(약 22조 원)로 평가되면 추가로 20%의 지분을 매입할 수 있다. 고려아연은 미국 국방부가 지분 40.1%를 가진 현지 법인 크루시블JV유한회사(Crucible JV, LLC)에 크루시블메탈즈가 인허가 서비스를 대행하는 대가로 1억 달러(약 1480억 원)의 수수료를 지급하는 계약도 맺었다.

크루시블메탈즈유한회사는 고려아연이 최근 신규 설립한 기업으로 미국에서 총 10조 9000억 원 규모의 제련 사업을 직접 운영하는 역할을 맡는다. 세계 최대 제련소인 울산 온산제련소에 필적하는 규모를 갖추고 핵심 광물 13종을 연간 54만 톤 생산할 예정이다.

고려아연은 대규모 미국 투자에 이례적인 출자 구조를 짰다. 우선 크루시블JV에 2조 8578억 원 규모의 제3자배정 유상증자를 실시해 자금을 모은 뒤, 고려아연의 자체 자금 8617억 원을 더해 별도의 미국 투자 지주 법인 크루시블메탈즈홀딩스유한회사(Crucible Metals Holdings, LLC)에 출자하기로 했다. 현지 사업 법인인 크루시블메탈즈는 이 자금을 지주 법인으로부터 받고 미국 정부·은행에 6조 9206억 원을 차입한 뒤 3093억 원 규모의 보조금을 받아 10조 9480억 원 규모의 투자 자금을 마련하는 계획을 세웠다.

IB 업계는 이런 구조를 두고 ‘우회 출자’라는 지적을 제기했다. 크루시블JV는 제련 사업과는 무관하고 현지 정부가 지분 다수를 가진 기업인데, 이 기업에 제3자배정 유상증자를 실시해 고려아연 지분 10.25%를 넘겨주게 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고려아연은 현재 최대주주인 영풍·MBK파트너스와 주요 주주 최윤범 회장 측이 경영권 분쟁을 벌이고 있어 지분 약 10%만으로도 경영권 향방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캐스팅보트’ 행사가 가능하다. IB 업계 관계자는 “지분율 다툼에서 밀리는 최 회장 측이 경영권을 지키기 위해 외국 정부에 지분을 넘겼다는 의혹을 배제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고려아연이 본사 지분을 비롯해 현지 사업 법인 지분 인수권마저 미국 측에 부여한 것으로 확인되면서 투자 구조를 둘러싼 논란은 더욱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산업통상부의 안보 심사에도 변수가 늘어났다. 고려아연은 15일 미국 투자 계획 관련 공시를 내면서 워런트 관련 내용을 포함하지 않았다. 약 11조 원을 투입하는 사업의 지분 다량을 외국 정부가 1주당 14원에 가질 수 있는 내용을 공시에 누락한 것이다. 금융감독원은 공시 내용을 들여다본 뒤 공시 정정 명령 여부를 판단할 방침이다. 금감원이 별다른 제재를 하지 않으면 유상증자 신주 납입은 이달 26일 완료된다. 고려아연의 주주명부 폐쇄일은 이달 30일로 미국 JV가 내년 고려아연 주주총회에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다.


미국 정부는 고려아연과의 계약으로 꽃놀이패를 쥐게 됐다. 고려아연의 미국 사업이 성공한다면 미국 정부는 워런트를 행사해 현지 사업 법인 지분을 다량 보유할 수 있다. 미국 사업이 실패하더라도 미국 정부는 자금 전액을 회수할 가능성이 높다. 현지 사업 법인인 크루시블메탈즈가 미국 정부·은행에 차입하는 6조 9206억 원과 미국 상무부에서 받는 보조금 3093억 원에 대해 고려아연 본사가 연대보증을 서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투자로 고려아연은 8조 3900억 원의 새로운 채무보증을 떠안은 반면 미국 정부는 별다른 리스크 없이 현지 투자·생산·고용과 지분 확보 권한이라는 막대한 과실을 얻었다.

고려아연 관계자는 “고려아연은 투자자 보호를 위해 필요한 범위에서 법률적 검토를 거쳐 공시했다”며 “워런트는 미국 정부의 출자와 지원금과 비교하면 합리적인 수준”이라고 말했다.



이덕연 기자 gravity@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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