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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무역 질서 '디커플링' 넘어 '전면 재편' 중"

서울경제 박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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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무역 질서 '디커플링' 넘어 '전면 재편'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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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상의 국제통상위원회 개최


글로벌 통상 질서가 세계무역기구(WTO) 체제 출범 30년 만에 구조적 대전환기를 맞고 있다는 진단이 나왔다. 인공지능(AI)과 반도체 등 첨단 산업을 중심으로 한 ‘투자 메가딜’이 공급망 지도를 다시 그리는 상황에서 기업들의 생존 전략 역시 ‘저비용’에서 ‘저리스크’로 급선회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대한상공회의소는 17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대한상의 국제통상위원회’를 열고 한미 관세협상 타결 이후의 통상환경을 점검하는 한편 내년 새로운 통상 질서에 대한 대응책을 논의했다고 밝혔다.이날 회의에는 이계인 국제통상위원장(포스코인터내셔널 대표이사)을 비롯해 박일준 대한상의 상근부회장, 양서진 SK하이닉스 부사장, 김동욱 현대자동차 부사장, 김경일 한화 전무, 이덕희 HD현대 상무 등 국내 주요 기업 대표와 임원진이 대거 참석했다.

이 위원장은 인사말을 통해 “올해는 불확실성이 컸던 해였으나 정부와 기업의 긴밀한 협력으로 리스크에 대응해 왔다”며 “최근 한미 관세 합의 공식화로 예측 가능성은 회복세에 접어들었다”고 평가했다. 다만 이 위원장은 “여전히 철강 등 일부 품목의 고율 관세 부담과 글로벌 보호주의 확산은 해결 과제”라고 지적하며 “미국의 정책 변화와 공급망 안보 이슈가 본격화되는 2026년은 통상 질서의 중요한 분기점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주제 발표에 나선 성정민 맥킨지앤드컴퍼니 글로벌연구소장은 현재의 무역·투자 질서에 대해 “단순한 디커플링(탈동조화)이 아니라 ‘전면 재편(Reconfiguration)’ 단계에 진입했다”고 정의했다. 성 소장은 “AI·반도체·배터리 분야의 초대형 투자 메가딜이 생산 거점을 재구성하고 있다”며 “미국이 한국과 대만의 반도체 투자를 블랙홀처럼 흡수하는 반면, 한국의 대중국 투자는 팬데믹 이후 급감하는 등 공급망 이동이 현실화됐다”고 분석했다. 이어 그는 “이제 기업 경쟁력은 ‘어디서 싸게 만드느냐’가 아니라 ‘어디에 투자해야 리스크를 줄이느냐’에 달렸다”며 지정학적 리스크를 고려한 투자 포트폴리오 재설계를 주문했다. 김수동 산업연구원 글로벌경쟁전략연구단장은 “내년은 미국의 고율 관세와 비관세장벽, 유럽연합(EU)의 탄소국경조정제도(CBAM)가 동시에 작동하는 시기가 될 것”이라며 “특히 철강, 화학, 배터리, 자동차 등 국내 주력 제조업에 복합적인 부담이 가중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김 단장은 이에 대한 해법으로 △신흥시장 중심의 시장 다변화 △R&D 기반 기술 초격차 확보 △해외 인증 및 환경 규제 대응 체계 구축을 제시했다. 그는 “환경 규제 대응은 이제 비용 문제가 아닌 시장 접근의 필수 조건”이라며 “대응 수준에 따라 향후 수출과 투자 성과가 극명하게 갈릴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날 회의에 참석한 기업 관계자들은 현장에서 체감하는 공급망 애로사항을 토로하며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을 요청했다. 한 기업 임원은 “중국의 희토류 수출 허가 지연 등으로 원자재 공급망 리스크가 피부로 와닿고 있다”며 “자원 무기화에 대비한 중장기적 확보 전략과 외교적 대응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참석자는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조달 요건과 현지화 기준이 강화돼 진입 장벽이 높아지고 있다”면서 “멕시코 등 제3국의 관세 인상 움직임에 대해서도 범정부 차원의 외교적 방어막이 필요하다”고 건의했다.

윤철민 대한상의 국제통상본부장은 “현재의 통상환경 변화는 단기 변수가 아닌 장기적이고 구조적인 흐름”이라며 “금융·규제·공급망 전반에서 민관 협력을 강화해 기업들이 현장에서 필요로 하는 실질적인 지원을 확대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박성호 기자 junpar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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