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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중의 핵 공포 70년… SLBM, 인류를 겨눈 침묵의 억지력 [무기로 읽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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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중의 핵 공포 70년… SLBM, 인류를 겨눈 침묵의 억지력 [무기로 읽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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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해군이 운용 중인 트라이던트II는 약 560발이 생산됐으며 현존하는 SLBM 가운데 가장 많은 수량을 자랑한다. 미국 해군 제공

미국 해군이 운용 중인 트라이던트II는 약 560발이 생산됐으며 현존하는 SLBM 가운데 가장 많은 수량을 자랑한다. 미국 해군 제공


전 세계 해양의 가장 깊은 곳에서 강대국들의 전략원잠(SSBN)은 오늘도 침묵 속 순찰을 이어가고 있다. 이 보이지 않는 전력은 핵탄두를 장착한 SLBM(Submarine-Launched Ballistic Missile), 즉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을 운용하며 지난 70년 전 세계적 핵전쟁을 억제해 온 가장 강력한 전략 자산이다.

대표적인 전략핵무기 체제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SLBM·전략폭격기가 꼽힌다. 이를 통틀어 트라이어드(Triad), 즉 '전략무기 3원'이라 부른다. 이 가운데 SLBM을 최초 개발한 나라는 미국이다. SLBM 개발은 냉전의 긴장이 고조되던 195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제2차 세계대전의 명장이자 당시 미 해군 작전사령관이었던 알레이 버크(Arleigh Burke) 제독은 소련의 기습적 핵 공격에 대응할 억지 수단 개발을 지시했다. 요구 조건은 명확했다. 신뢰할 수 있고, 탐지되지 않으며, 즉각 대응 가능한 핵전력이었다. 해결책은 잠수함에서 발사 가능한 탄도미사일이었다.

당시 록히드사(현 록히드마틴)가 개발을 담당했고, 폴라리스(Polaris) 미사일이 탄생했다. 1960년 1월 7일, 미국 최초의 전략원잠인 조지 워싱턴함은 잠항 상태에서 폴라리스 미사일을 성공적으로 발사했다. 폴라리스 미사일의 성공과 함께 미국 해군은 '41 for Freedom' 계획을 통해 41척의 전략원잠을 확보하는 구상을 추진했다. 1958년부터 1965년까지 이어진 이 대규모 전력 증강은 미·소 핵 경쟁의 균형추를 미국 쪽으로 기울게 만들었다.

미국 해군에서 FBM(Fleet Ballistic Missile), 즉 함대탄도미사일로 불리는 SLBM은 폴라리스를 시작으로 포세이돈을 거쳐 현재는 트라이던트II로 발전했다. 지난 60여 년간 6세대에 걸친 SLBM 개발이 이어졌으며, 사거리와 다탄두 능력, 핵 위력도 지속적으로 증대됐다. 미국 해군 전략원잠에서 운용되는 트라이던트II는 1990년 배치됐으며, 미국 해군뿐 아니라 영국 해군의 전략원잠에서도 사용된다. 약 560발이 제작된 트라이던트II는 현존하는 SLBM 가운데 가장 많은 수량을 자랑하며, 탑재된 핵탄두 수도 1,900여 발에 달한다. 미 공군이 운용 중인 ICBM인 미니트맨Ⅲ(약 800발)에 비해 두 배 이상 많은 수치다.

핵탄두의 위력은 종류에 따라 최소 5킬로톤(㏏)에서 최대 475㏏에 이르며, 최대 사거리는 약 1만2,000㎞로 알려져 있다. 사실상 ICBM급 사거리다. 명중률도 100m 이내의 원형공산오차를 갖춘 것으로 평가돼, 적의 핵미사일 사일로까지 직접 위협할 수 있다. 트라이던트II 미사일은 수명 연장 계획에 따라 트라이던트Ⅱ D5LE(D5 Life Extension)로 개량되고 있다. 지난 9월 23일(현지시간), 미국 해군은 플로리다 동부 해안에서 오하이오급 전략원잠을 통해 핵탄두를 탑재하지 않은 트라이던트Ⅱ D5LE 미사일의 예정된 시험 발사 4회를 성공적으로 실시했다고 밝혔다. 각종 전자 장비를 업그레이드한 트라이던트Ⅱ D5LE는 2040년대까지 운용될 예정이다.

미국의 SLBM은 우리나라와 같은 동맹국에 유사시 핵우산으로 제공된다. 2023년 7월 19일, 미국 해군 전략원잠 켄터키함은 42년 만에 부산에 기항했다. 1981년 로버트 리함 이후 처음으로, 북핵 위협에 대비해 미국 전략자산을 정례적으로 전개함으로써 도발을 억제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줬다. 우리도 세계 여덟 번째로 SLBM 개발에 성공한 국가다. 현무-4-4를 기반으로 SLBM 개발을 진행했으며, 2021년 도산안창호함에서 수중 시험 발사에 성공했다.


향후 한국형 원자력 추진 잠수함에 SLBM이 결합될 경우, 우리 군의 억제 체계는 질적으로 새로운 단계에 진입하게 된다. 수면 아래에서 70년간 이어져 온 침묵의 핵은 여전히, 그리고 앞으로도 국제 안보 질서를 떠받치는 가장 강력한 그림자로 남을 것이다.


김대영 군사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