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베이 [AFP] |
[헤럴드경제=김보영 기자] 대만이 사상 최저 수준의 출산율을 기록하며 ‘출산 공포 시대’에 접어들었다는 분석이 나왔다.
12일 대만 TVBS방송은 “대만 출산율 하락, ‘출산 공포’ 확산”이라는 제목의 보도를 통해 대만 사회 전반에 확산되고 있는 저출산 위기감을 집중 조명했다.
전문가들은 출산율 급락의 주요 원인으로 젊은 세대의 결혼·출산 기피 현상을 지목하고 있다. 강닝병원의 윤창성 박사는 높은 주택 가격과 낮은 임금, 감당하기 어려운 육아 비용이 젊은 층의 결혼과 출산을 가로막고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 수치도 심각한 수준이다. 올해 11월 기준 대만의 월별 출생아 수는 8000~9000명 수준에 머물고 있으며, 연간 출생아 수는 12만 명을 넘지 못할 것으로 예상된다. 윤 박사는 이 추세가 이어질 경우 연간 출생아 수가 10만명 아래로 떨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대만 내무부에 따르면 올해 9월 출생아 수는 8603명으로, 전년 동기 대비 27% 감소했다. 올해 1~9월 누적 출생아 수는 8만1381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만6000명 이상 줄었다. 같은 달 사망자 수는 출생아 수를 약 7000명 웃돌았으며, 사망자가 출생아 수를 앞지르는 ‘자연 감소’ 현상은 57개월 연속 이어지고 있다.
국제 통계에서도 대만의 저출산 심각성은 두드러진다. 글로벌 출산율 조사기관 ‘버스게이지’는 대만의 올해 합계출산율이 지난해 0.88에서 0.74로 급락할 것으로 전망했다. 한국의 올해 출산율 전망치는 0.81로 세계 93개국 중 92위를 기록, 대만의 출산율은 한국보다 낮을 것으로 예측된다. 한국은 2020년부터 지난해까지 5년 연속 전 세계 최하위였으나 출산율이 2023년 0.72, 지난해 0.75로 소폭 반등했다.
대만 중앙연구원 사회학연구소의 양원산 교수는 대만 출산 적령기 여성(30~40세) 인구가 2015년부터 2025년 사이 약 20% 감소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출산 장려 정책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흐름을 되돌리기는 쉽지 않다”며 “인구 구조 안정을 위해 출산 보조금 확대와 함께 이민 정책을 함께 검토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저출산과 고령화는 노동 시장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노동권 옹호 단체인 대만노동전선의 양수웨이 대표는 노동력 감소로 인해 기업들이 인력난에 직면할 것이라며 우려를 표했다. 그는 저출산과 고령화라는 이중고가 노동 시장의 불균형을 초래하고 부양 부담을 가중시킬 수 있다고 경고했다.
대만의 최고 경제 계획 기관인 국가발전위원회는 현재 추세가 지속될 경우 2070년에는 대만 인구가 약 1700만 명으로 줄어들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이는 대만이 아시아에서 인구 감소 속도가 가장 빠른 국가 중 하나가 될 것이라는 의미다.
이 같은 인구 위기 속에서 대만 입법원은 지난 11일 생식 보조 기술 접근성을 확대하는 내용의 생식 보조 기술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이번 개정안은 18세 이상 미혼 여성과 동성 여성 커플에게도 시술을 허용하는 동시에, 이러한 시술을 통해 태어난 아이들의 법적 지위를 보장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현지 언론은 이번 개정이 심화되는 인구 위기 속에서 대만의 생식권 환경에 중대한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고 전망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