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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귀가 친근함 표현? 신태용이 배운 '야만의 시대'는 끝났다

중앙일보 박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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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귀가 친근함 표현? 신태용이 배운 '야만의 시대'는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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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승현(오른쪽)의 뺨을 때리는 신태용 전 울산HD 감독. [중앙포토]

정승현(오른쪽)의 뺨을 때리는 신태용 전 울산HD 감독. [중앙포토]



신태용(55) 전 울산HD 감독 경질은 논쟁적인 사건이었다. 기득권 고참 선수들의 ‘감독 쫓아내기’ 하극상이냐, 폭력 감독의 구시대적 일탈이냐를 두고 축구계가 갈렸다. 신 전 감독은 여러 매체에 “난 ‘바지 감독’이었다”며 선수들의 항명이 있었다고 주장했다.

중앙일보가 지난 14일 공개한 동영상을 통해 실체를 알 수 있었다. 지난 8월 팀과의 상견례 때 신 전 감독이 정승현 선수의 뺨을 치는 장면이었다. 영상에서 신 전 감독은 선수들과 한 명씩 악수를 나눴다. 정승현 차례가 되자 미소를 지으며 오른 손바닥으로 얼굴을 쳤다. ‘짝’ 소리가 났다. 정승현의 고개가 살짝 돌아갔다.

신 전 감독은 폭행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승현이가 기분 나빴다면 미안하게 생각한다”면서도 “폭행과 폭언이 있었다면 감독을 안 한다”고 했다. 축구협회에서 징계 절차를 밟게 되면 소송도 불사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신태용 전 울산 HD 감독. 연합뉴스

신태용 전 울산 HD 감독. 연합뉴스



신 전 감독은 ‘야만의 시대’를 살았다. 군부정권과 88올림픽 성적 지상주의가 맞물렸던 폭력적인 1980년대 중고교에서 운동을 했다. 프로축구 성남 일화에서 뛸 때는 최고의 명장으로 불렸으나 폭행으로 불명예 퇴진한 박종환 감독의 영향도 받았을 것이다.

신 전 감독은 국내외 여러 팀에서 친근감의 표현으로 폭력적인 행동을 했다. 별문제가 없었다. 신 전 감독이 4년간 지휘봉을 잡은 인도네시아 매체 ‘볼라 스포츠’는 16일 "신 감독이 폭행 논란에 휩싸여 한국에서 화제다. 인도네시아 국가대표 선수들은 이미 이런 일에 익숙해 웃어넘겼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따귀를 때려 친근감을 표현하는 시대는 지났다. 인도네시아에서 선수들이 웃어넘긴 건 신감독의 화려한 성적 때문일 것이다. 그에게 폭력은 언제라도 터질 수 있는 폭탄이었다고 본다.


신 전 감독이 울산 부임 후 65일간 가한 폭행과 폭언은 최소 5건 이상 구단에 보고됐다. 선수 발을 밟고 눈을 감게 한 뒤 귀에 호각을 불며 “귀머거리냐”고 했고, 정강이를 걷어찼다고 한다. 울산 구단은 이를 심각하게 받아들여 어렵게 영입한 부임 2~3주밖에 안 된 감독에게 경고 공문을 보냈고, 시즌 중 경질했다.



체육철학자 김정효 서울대 연구교수는 “선수는 처음에는 감독의 행동이 애매했다가 그 행위가 유사하게 반복되는 걸 보면서 폭행으로 확정한 것으로 여겨진다”고 말했다. 이어 “신 감독의 처신은 구시대적 관습의 신체화가 부른 불명예스러운 사건”이라며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을 언급했다. “늘 해오던 대로 행하는 것이 악이 될 수 있다. 악은 거대한 악마의 형상으로 나타나는 게 아니라 일상을 무비판적으로 살아갈 때, 이성적 사고 없이 매너리즘에 젖어 행위할 때 언제든 우리 주변에 있다.”

신태용은 한국 축구의 귀중한 자원이다. 한국과 인도네시아 대표팀 감독으로 훌륭한 능력을 보여줬다. 거친 세상을 살았으니 폭력이 익숙하고 당연할 것이다. 그러나 바뀐 세상에 적응하지 못하면 더 이상 나아갈 수가 없다. 진심으로 사과하고 더욱 멋진 감독으로 거듭나길 빈다.

박린 기자 rpark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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