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소영 논설위원 |
이번 갈등의 출발점이 된 다카이치 총리의 발언은 아베 신조 2기 내각이 2016년 제정한 안전보장법제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이 법제는 대만 주변에서 미군과 중국군이 무력 충돌하고, 그 여파가 일본의 존립을 위협하는 사태로 번질 경우 이를 ‘존립 위기 사태’로 규정할 수 있도록 했다. 중국군의 공격을 사실상 일본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해 집단적 자위권을 제한적으로 인정한 제도적 장치다.
■
전략적 모호성 깬 다카이치 발언
중국 전방위 압박 속 장기화 양상
사드의 기억, 시험대에 선 한국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지난 9일 총리 관저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
제정 당시 일본 사회의 반발은 거셌다. 학계와 시민단체들은 “해외에서의 무력 행사를 금지한 헌법 9조에 정면으로 배치된다”며 연일 반대 시위를 벌였다. 주변국들 역시 우려의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이런 국내외 여론을 의식해 아베 전 총리는 물론, 이후 스가 요시히데, 기시다 후미오, 이시바 시게루 등 역대 총리들은 이 법제의 구체적 적용 사례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이른바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해온 것이다.
다카이치 총리는 이 관행을 깨뜨렸다. 그의 발언은 일본이 군사력 증강과 평화헌법 개정을 통해 ‘전쟁 가능한 보통국가’를 넘어 안보 대국으로 나아가려는 흐름과 맞닿아 있다. 중국이 다카이치 총리의 발언을 단순한 외교적 수사가 아니라 정책 노선 변화의 신호로 받아들이는 이유다. “대만 문제는 중국의 핵심이익 중에서도 핵심”이라는 중국의 입장은 변함이 없다. 특히 시진핑 국가주석의 4기 집권을 앞두고 대만해협의 긴장이 고조되는 시점이라는 점에서, 중국의 반응은 더욱 민감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출구 전략이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다카이치 총리가 중국 외교의 금기를 몰랐을 리 없다. 아베 전 총리의 정책 노선을 계승한 그는 ‘강한 일본’ 재건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대만 유사시 발언 이후 보여준 단호한 지도자 이미지는 다수 국민, 특히 젊은 층의 지지를 끌어냈다. 예상보다 높은 지지율을 발판으로 국회 해산과 총선을 통해 여소야대 구도를 뒤집을 수 있다는 관측까지 나온다. 국내 정치적으로 이득이 되는 상황에서 쉽게 물러서기 어려운 구조다.
다카이치 내각의 대중(對中) 전략 부재 역시 사태 장기화에 힘을 싣고 있다. 과거 중·일 갈등이 고조될 때마다 일본에는 비공식적 화해 채널이 작동해왔다. 아베 총리 시절 야스쿠니 신사 참배로 갈등이 불거졌을 때는 후쿠다 야스오 전 총리나 니카이 도시히로 전 자민당 간사장이 중국을 찾아 관계 복원에 나섰다. 바로 전 이시바 정권에서도 모리야마 히로시 전 간사장이 두 차례 중국을 방문했다. 그러나 다카이치 정권 들어서는 이런 파이프라인이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오랜 연립 정권 파트너였던 공명당의 이탈 역시 악재로 꼽힌다. 공명당 창설자인 고(故) 이케다 다이사쿠 창가학회 명예회장은 중·일 국교 정상화에 기여한 인물이다. 1990년대 이후 공명당은 정기적으로 중국을 방문하며 끈끈한 교류를 이어왔다. 이들의 이탈은 일본 대중 외교에서 하나의 완충 장치가 사라졌음을 의미한다.
중국의 대일 압박은 이미 전방위로 확산하고 있다. 일본 단체 관광 금지와 일본 방문 자제령으로 시작된 조치는 군사분야로 이어졌다. 지난 6일 중국군 항공모함 함재기가 오키나와 인근 공해상에서 일본 자위대 전투기에 ‘레이더 조준’을 했고, 9일에는 중국과 러시아 폭격기가 도쿄 방향으로 비행하는 연합훈련까지 감행했다.
지난 9일 일본 인근 해상 상공에서 공동 비행 중인 중국 J-16 전투기(왼쪽)와 러시아 Tu-95 폭격기. AFP=연합뉴스 |
과거 중·일 갈등의 궤적을 돌아보면 이번 사태 역시 단기간에 끝나기는 어려워 보인다. 2001년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계기로 악화된 중국 내 반일 감정은 2005년 역사 교과서 문제로 전국적인 반일 시위로 번졌다. 2012년 일본의 센카쿠열도 국유화 선언은 대규모 시위와 일본 제품 불매운동으로 치달았다. 이후 2년 넘는 냉각기를 거치고 나서야 정부 간 대화 채널이 재가동됐다.
이를 지켜보는 한국의 마음은 절대 편치 않다. 중국이 그리는 큰 그림 속에 한국 역시 포함돼 있다는 불편한 현실 때문이다. 2016년 사드(THAAD) 배치를 계기로 2017년 시작된 한한령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이런 가운데 최근 대만은 한국의 전자입국신고서에 대만이 ‘중국(대만)’으로 표기된 데 대해 항의했다. 사실상 한국에 입장 표명을 요구한 셈이다. 대만해협을 둘러싼 긴장은 이제 일본을 넘어, 한국을 향해 다가오고 있다.
박소영 논설위원
▶ 중앙일보 / '페이스북' 친구추가
▶ 넌 뉴스를 찾아봐? 난 뉴스가 찾아와!
ⓒ중앙일보(https://www.joongang.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