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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칼럼]서울, 쓰레기 처리는 셀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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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칼럼]서울, 쓰레기 처리는 셀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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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밀집 지역이라 원자력발전소 입지로 적합하지 않다. 인구 밀집 지역은 사고 시 대피가 어렵고…” 2012년 부산 기장 고리1호기 사고 관련 기자회견에서 당시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 사장은 수도권에 원전을 세우면 안 되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동남권 주민들은 ‘우리는 위험해도 괜찮다는 말이냐’며 반발했지만 그뿐이었다.

대한민국 원전은 모두 비수도권에 있다. 경북과 전남, 울산, 부산 지역 주민들은 위험을 감내하며 전기를 만들고 그렇게 생산한 전기를 수도권으로 보낸다. 올해 1~7월 기준 전국 17개 시도 중 전력 자급률이 가장 높은 곳은 월성원전이 있는 경북(262.6%)이다. 반면 전국 전력량의 9%를 소비하는 서울의 전력 자급률은 7.5%에 그친다. 앞으로 수도권에 들어설 데이터센터를 감안하면 지역은 더 많은 전기를 올려 보내야 하고, 전기를 실어 나를 초고압 송전탑과 송전선을 지역에 더 만들어야 한다.

전기와 반대로 쓰레기는 지역에 몰린다. 충북 청주 북이면에 소각장들이 들어선 1999년 이후 10년간 주민 60명이 암으로 숨졌다. 2019~2021년 기후에너지환경부(당시 환경부)가 실시한 건강영향조사 결과 소각장 인근 주민의 여성 신장암과 남성 담낭암 발생률은 다른 지역에 비해 각각 2.79배, 2.63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주민 소변에서 검출된 카드뮴 농도는 성인 평균의 3.7~5.7배에 달했다. 북이면은 전국 폐기물의 약 7%를 태우는 곳이다. 수도권에서 다른 지역으로 옮겨져 처리되는 폐기물 중 충청권으로 간 폐기물량은 61.7%에 달한다.

수도권 생활폐기물 직매립 금지 제도가 시행되는 내년 1월부터 지역은 더 많은 쓰레기를 받아내야 한다. 공공소각장을 짓지 못한 정부는 급한 대로 민간 소각장에 처리를 맡기기로 했는데, 수도권 소재 민간 소각장에서 전량 소화하기 어렵다. ‘쓰레기의 외주화’ 관행대로 쓰레기의 상당량은 수도권 외 지역 민간 소각장으로 흘러갈 가능성이 높다. 환경단체가 “수도권 생활폐기물이 충북의 민간 소각시설로 몰려오는 상황을 결코 용납할 수 없다”는 성명을 낸 이유다.

정부는 생활폐기물을 배출한 지자체가 받아준 지자체에 반입협력금을 지급하도록 하고 있지만, 민간 소각장에서 처리하는 경우에는 이마저 받을 수 없다. 정부가 세운 폐기물 발생지 처리 원칙은 ‘수도권 쓰레기 대란’ 우려 앞에서 쉽게 허물어졌다.

전기와 쓰레기는 오가는 방향만 다를 뿐 구조는 같다. 수도권의 필요는 지역에서 가져오고, 부담은 지역으로 내려보낸다. 수도권 전력 공급을 위해 지역 원전은 수명을 연장하고, 지역은 낡은 원전의 위험을 떠안는다. 수도권 생활폐기물 직매립 금지로 지역에는 더 많은 쓰레기가 흘러들게 된다. 민간 소각장 처리라는 ‘미봉책’에 기대는 동안 수도권과 지역 간 감정의 골은 더 깊어진다.


지금처럼 더럽고, 불편하고, 위험한 시설을 지역으로 밀어내는 구조를 방치한다면 지역 간 불화는 정부에 대한 불신으로 번질 수밖에 없다. 지역은 언제까지 희생해야 하나. 쓰레기를 밀어넣으며 지역균형발전을 외쳐봐야 공허하게 들릴 뿐이다.

반기웅 정책사회부

반기웅 정책사회부

반기웅 정책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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