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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수 칼럼] 헌정·민주·민생의 흑역사, ‘용산시대’가 저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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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수 칼럼] 헌정·민주·민생의 흑역사, ‘용산시대’가 저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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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직 대통령 윤석열과 부인 김건희씨가 2023년 1월12일 용산 대통령실을 찾은 칠곡 할머니들이 남긴 방명록에 답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전직 대통령 윤석열과 부인 김건희씨가 2023년 1월12일 용산 대통령실을 찾은 칠곡 할머니들이 남긴 방명록에 답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1주일째다. 대통령실이 청와대로 이사 중이다. 비서실·브리핑룸은 성탄절, 대통령 관저는 설 전까지 옮긴단다. 2022년 5월, 윤석열이 용산 국방부에 집무실을 터 잡은 지 3년7개월 만이다. “구중궁궐 벗어나 국민과 더 소통하겠다.” 다 본 대로, 그 말은 식언이 됐다. 북악산 자락에 돌아간 대통령실은 한 시대의 종언을 뜻한다. 머잖아 ‘BH’(Blue House)로, ‘청(靑)’으로 다시 불릴 게다. 역사는 저 용산시대를 뭐라 적을까.

난세다. 저토록 술·욕설·무속에 전 대통령이 없었다. 이념을 국가지향점 삼고, 검찰권·감사권을 저리 사유화하고, 비상대권을 2년 넘게 벼른 ‘반헌법·반민주’ 대통령도 없었다. “오직 국민 뜻에 따르겠다.” “참모 뒤에 숨지 않겠다.” “정부 잘못은 솔직하게 고백하겠다.” 실소(失笑) 터지지만, 집권 첫날 윤석열이 한 말이다. 바로, 김건희는 대통령놀이를 시작했다. 취임식에 위법자들(도이치모터스·통일교·명태균·건진법사) 특별초대하고, 청탁과 명품을 주고받고, 대통령급 비화폰 쓰고, 법무장관에게 본인 수사를 챙겨 물었다. 특검 말대로, 법 밖에 존재한 ‘V0’였다. 명태균 비유대로, 장님무사 어깨 위에 탄 주술사였다. 그러다 군과 비상입법부를 앞세워 절대권력을 쥐려 한 게 12·3 내란이다.

짓밟은 게 민주주의·헌법뿐인가. 윤석열 집권 3년(2022년 5월10일~2025년 4월4일)간 경제성장률은 분기당 0.35%였다. 내수·투자·수출 다 얼었다. 불경기 속 부자감세로 세수펑크만 100조원에 달한다. 지금 들통나고 바로잡히는 국정이 한둘인가. 주먹구구 추계라는 ‘의대 증원 2000명’, 법원이 제동 건 ‘2인 방통위의 YTN 민영화’, 놀림감 된 ‘부산엑스포·동해 유전’, 5세 취학 혼란의 시작은 윤석열의 입이었다. 참사는 이태원·오송·예천·새만금(잼버리)이 닮았다. 관재였고, 아래만 벌받고, 국가는 없었다. 돌아보는 국정 평가는 에누리없다. 인공지능(AI)·재생에너지 뒷전이고, 연구인력 생태계도 헝클었다. 민생·미래 다 ‘윤석열=암흑기’였다.

해서, 이맘때다. 교수신문 올해의 사자성어는 윤석열을 직격했다. 숱한 참사 나 몰라라 한 2022년 “잘못하고도 고치지 않는다”(過而不改·과이불개) 했고, 김건희 디올백을 덮으려 한 2023년 “이로움 보며 의로움을 잊는다”(見利忘義·견리망의) 했다. 시국선언 봇물 터진 2024년 내란 직전엔 “제멋대로 권력 부리며 함부로 날뛴다”(跳粱跋扈·도량발호) 했다. 소 귀에 경 읽기였다. 그 경고뿐인가. 2024년 4·10 총선 참패 후 “나부터 달라지겠다” 한 윤석열은 이내 부정선거라고 표변했다. 보수 논객도 ‘김건희 법정 세우라’ 아우성친 그해 10월엔 “돌 던지면 맞고 가겠다”며 북에 무인기를 보내기 시작했다. 철면피 윤석열 말을 끝없이 소환하는 이유가 있다. 누굴 탓할 건가. 그는 전두환보다 못한 ‘최악의 대통령’이었다(11월28일 갤럽).

세 특검이 12월에 장정을 마친다. 하나, 내란 단죄는 한덕수(1월21일)-김건희(1월28일)-윤석열·김용현·이상민(2월) 순서로 해를 넘긴다. 지귀연 재판부의 윤석열 구속 취소와 ‘만담·침대’ 재판이 뒤바뀐 선고와 시간 지체를 불러왔다. 관용없이, 역사의 형사법정은 철퇴를 내려야 한다. 다들 내다보듯, 그 철퇴 무게가 사법의 존재 의미와 앞날을 가를 것이다. 내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직선거리 5.8㎞. 용산과 청와대는 단순한 공간 이동이 아니다. 청와대 가는 산책로에 작은 현수막이 걸렸다. ‘광장의 빛으로, 다시 청와대’. 열한 자의 글씨는 그 겨울 내란에 맞선 여의도·한남동·남태령·광화문광장을 새기고, 새 나라를 원하는 시민 열망을 품었다. 삿되고 그릇되다 친위쿠데타·전쟁까지 획책한 불의의 시대가 끝났다는 선언이리라. 왕을 꿈꾼 자와 왕비처럼 살던 자의 용산과 단절하라는 명령이리라. 이 나라 국정과 숫자는 이제 ‘이재명의 기록’이라는 경구이리라. 그 기억·바람·다짐대로, 국정도 정치도 공직사회도 다 ‘정상국가’로 돌아가야 한다.


을사년이 저문다. ‘을씨년스럽다’ 한 역사 속 그해처럼, 2025년 푸른뱀의 해도 다사다난했다. 대통령이 바뀌고 통상전쟁에 맘 졸이고 산불·수마가 할퀴었다. 그 롤러코스터의 끝자락, 이 땅은 3분기 성장률·혼인율·합계출산율이 반등하고 경주 APEC이 국격을 올린 ‘희망의 싹’도 틔웠다. 결국, 1년이 다 흘러 흘러 깨닫는다. 빛이 어둠을 막고, 진실이 거짓을 이겼다. 그걸 헌법 속에서 걸어나온 시민이 해냈다. 그 주권자 이름으로, 저 용산의 흑역사를 오롯이 기록하고, 민주·민족·민생의 새봄을 열어야 한다.

이기수 편집인·논설주간

이기수 편집인·논설주간

이기수 편집인·논설주간 ksl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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